내가 생각하는 술의 본질
브런치 작가가 되고 3개월이 지나서 이제야-
지난 해에 쓴 글로 저의 브런치를 시작해본다.
추석 전에 기가 막힌 칼럼 하나를 읽은 적이 있다.
온라인에서 워낙 큰 반향을 일으켜 아마 모르는 사람이 더 적을 것 같은 김영민 교수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위기 상황에서나 제기된다는 지인의 예를 들며 시작된 칼럼은 리드미컬하게 한숨에 쭉 읽혔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이 민감하고도 개인적인 질문을 하면 평소에 질문하지 않았던 근본적인 질문을 하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결혼은 언제 할 것이냐라는 질문에는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이렇게 정체성과 관련된 질문들은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을 떨쳐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이 칼럼을 읽은 사람들이 그제야 내가 익숙하게 지나쳤던 그 어떠한 것의 '무엇'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위기의 상황이나 악의 기운을 물리칠 때 말고 (...)
우리는 평소에 나 자신, 내가 하는 일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얼마나 자주 하며 얼마나 빨리 답할 수 있을까.
칼럼을 읽을 무렵, 칼럼이 나오기 전에 봤던 면접의 한 질문이 생각났다.
"술이란 무엇입니까"
주류 회사의 면접에서 한 번쯤 받을 법한 질문이긴 하다.
사실 면접에서 대답하기 매우 까다로운 류의 질문이 아마 이런 본질과 관련된 질문임에 틀림없다.
어떤 것도 답이 될 수 있고 어느 것도 답이 될 수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저 질문에 대해 답을 쉽게 가자면
영어로 번역했을 때 그저 what is alcohol?이라 생각하고
술에는 증류주와 발효주가 있는데 증류주가 만들어지는 방식은...이라고 말해도 틀린 답은 아니다.
나에게는 치료 약과 같은 것(실제로 옛날에는 약으로도 쓰였으니)이라는 주관적인 느낌을 이야기해도 크게 상관없을 지도 모른다.
면접 때 나는 오랫동안 술을 좋아해온 사람이고 공부한 사람이라 술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람, 공간, 문화를 모두 엮어 각각을 더욱 즐겁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매개체"
라고 어설프게 답변했지만 내가 술을 바라보는 것 그대로를 한 문장에 담아냈던 것 같다.
참 다행이었다.
내가 좋아하고 업으로 삼고 싶었던 것의 그 '무엇'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있어서.
실제로 그러했다.
술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는 사람들이 더 좋아지고,
그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면 공간이 더 즐거워졌고,
즐거운 사람들이 채운 즐거운 공간은 더욱 즐거운 문화가 되었다.
주류업에 종사하고 있는 지금,
면접 때 이런 질문을 받아 술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기회가 있어서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에 사소한 콘텐츠 하나를 올릴 때도,
행사를 기획할 때도,
사람들이 과연 즐거울 것인가,
즐거운 바이브를 전해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인가,
이들이 만드는 즐거운 문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인가.
를 생각하게 되니 일을 계획하고 실행할 때 필요한 가이드라인이 뚝딱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어려운 '왜'가 해결이 되었다.
내가 삼고 있는 업이 무엇인지 알면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가 조금 더 쉽게 그려지는 것 같았다.
술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술이 공간의 분위기를 더 즐겁게 만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술로 즐거운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
아주 직관적으로 간단하게 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업계, 직무 뽀쨕이인 나에게는 아직 3가지 숙제가 더 남아있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공간이란 무엇인가.
문화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답을 내릴 때 쯤이면 나는 반쯤 구루가 되어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