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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Apr 10. 2024

(숲속의 빨간신호등) 2.따오의 숨바꼭질

생태환경동화

2. 따오의 숨바꼭질     


따오는 아침부터 리초와 숨바꼭질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침을 두둑하게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시작한 놀이가 어느새 점심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리초네 집은 조팝나무 덤불이 한쪽을, 밤나무가 다른 한쪽을 동그랗게 빙 둘러 싸고 있답니다. 사실 조팝나무 덤불 아래가 진짜 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잠도 자고 비가 오면 비를 피하기도 하거든요. 물론 덤불은 무서운 여우를 피해 숨기에도 그만입니다. 촘촘한 조팝나무와 울창한 밤나무 때문에 리초네 집은 동굴처럼 감추어져 있습니다. 아직 한 번도 여우에게 들킨 적이 없다는 사실만 보아도 얼마나 멋진 집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건 나무로 감추어진 집 안으로 살짝 들어섰을 때입니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수풀이 앞마당처럼 널찍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거기에서 리초와 따오는 숨바꼭질도 하고 간지럼 태우기도 하고 뒹굴기 놀이도 하지요. 게다가 덤불나무 쪽으로는 널찍한 바위가 주인인 양 따뜻한 햇살 아래 느긋하게 앉아 있습니다. 리초는 바위를 볼 때마다 마구 올라가 뛰어 놀고 싶어 근질거렸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마냥 뛰어노는 걸 좋아하잖아요. 하지만 어느 엄마나 다 그러듯이, 리초 엄마도 바위는 위험하다며 바위 위로 올라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리초와 따오는 하는 수없이 바위 아래에 앉아 시간 알아맞추기 놀이를 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바위 그림자가 어느 쪽으로 가 있는지를 보고 아침 때인지 점심 때인지 저녁 때인지를 알아맞히는 놀이입니다. 마당 중간에는 박달나무 한 그루가 우뚝 자태를 뽐내며 서 있습니다. 거긴 술래가 눈을 감기 딱 좋은 곳입니다. 


오늘도 따오는 아침 일찍부터 박달나무 아래에서 숨바꼭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리초가 얼마나 잘 숨던지 따오는 해가 하늘 중간에 걸리도록 도통 술래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조금 전에 리초가 킥킥대며 웃는 바람에 겨우 술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리초는 따오가 불쌍해서 봐 준거라고 말하지만 풀잎 때문에 간지러워 웃은 게 틀림없습니다. 술래에서 벗어난 따오는 소리 나지 않게 살금살금 숨을 곳을 찾았습니다. 


'음, 어디에 숨을까, 리초가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야 해…….'

얼마 만에 벗어난 술래인데 금방 잡힌다면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을 겁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따오는 여기에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 토끼풀밭에 가서 숨자. 거기라면 리초가 찾아내지 못할 거야.'

혼자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잔소리하는 리초 엄마도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게다가 따오는 이제 스스로 다 자란 청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렴. 언제까지 리초 엄마랑 같이 다닐 수는 없잖아요. 여우 정도는 무섭지 않습니다. 리초에게도 다 컸다고 큰소릴 땅땅 치고 다녔습니다. 


토끼풀밭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조팝나무 덤불을 통과해서 가면 빨리 갈 수는 있지만,  여우골과 가까운 참나무 숲을 지나야 합니다. 반대편 밤나무 숲으로 가면 안전하기는 하지만 에둘러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어쩌면 가다가 리초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오는 조팝나무쪽으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다 됐니?"

"아,……."

따오는 아니, 라고 대답하려다 얼른 입을 다물었습니다. 대답을 하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다 알려주는 것인데도, 따오는 번번이 대답을 했습니다. 이번에도 크게 대답할 뻔 했습니다. 따오는 입을 꼬옥 다물었습니다.


"따오야, 다 됐어?"

꿀꺽. 따오는 대답 대신 침을 삼켰습니다.


리초 수법은 뻔합니다. 처음에는 ‘다 됐니?’하며 그냥 물어보지요. 그러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따오야, 다 됐니?’하며 이름을 붙여 물어봅니다. 그러면 따오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대답을 해버리고 만답니다.  


따오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따오는 살금살금 조팝나무를 지나 참나무 숲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무섭고 떨리기는 했지만 도중에 되돌아 갈 수는 없었습니다. 다 자란 청년 숫사슴이라고 얼마나 많이 떠들고 다녔는데 여우가 무섭다고 다시 되돌아가 보세요. 그건 말도 안 되는 거랍니다. 어쨌든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앞만 보고 뛰다 보니 어느새 토끼풀밭입니다. 이제는 리초에게 들키지 않도록 숨기만 하면 됩니다. 리초는 꽃사슴답게 등에 흰 반점이 꽃처럼 박혀있습니다. 그러면 흰꽃과 섞여 정말 찾아내기가 힘들지요. 따오는 흔하고 흔한 연한 갈색 사슴입니다. 숨바꼭질을 할 때마다 갈색털로 태어나게 한 엄마가 원망스러워 한숨을 푹푹 내쉬곤 했지요.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꼭꼭 숨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리초에게 갈색 사슴도 쉽게 잡히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혼자서 토끼풀밭까지 왔잖아요. 


한참 숨을 곳을 찾고 있는데 멀리서 '엄마!'하며 엄마를 찾는 리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따오는 맥이 탁 풀렸습니다. 리초는 잘 놀다가도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어린 아이처럼 큰 소리로 울면서 엄마를 찾습니다. 리초가 숨바꼭질 놀이를 까맣게 잊어버린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조금 있으면 리초는 엄마랑 함께 따오를 찾으러 올 겁니다. 따오는 리초와 한 식구나 다름이 없습니다. 


리초와 따오의 두 엄마는 서로 약속을 했답니다. 만약 누가 먼저 죽게 되면 남아 있는 아이를 친자식처럼 서로 돌봐 주기로요. 그래서 따오는 리초네와 살게 되었습니다. 따오 엄마가 여우에게 잡혀버렸거든요. 따오는 리초네와 같이 생활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리초처럼 아무 때나 젖꼭지를 물 수도 없었습니다. 진짜 엄마처럼 함께 물장난을 칠 수도 없었고, 뒹구는 장난도 같이 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엔 너무 외로워 눈물이 찔끔찔끔 났지만 들키지 않으려고 혼자 삼켰습니다. 다행히 리초가 이것저것 잘 챙겨 주어 빨리 적응할 수 있었지만요. 이제는 리초랑 같이 지내는 게 참 좋습니다. 친남매보다 더 친해져버렸습니다. 가끔 리초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건 눈곱만큼도 생각하기 싫은 생각입니다. 


토끼풀밭에 오자 싱싱한 풀 냄새가 따오를 유혹했습니다. 

'잠깐 풀을 먹고 숨어도 되겠지. 리초가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야.'

따오는 그제서야 점심을 먹지 않은 게 생각났습니다. 점심은커녕 숨바꼭질만 하느라 간식도 먹지 못했네요. 갑자기 생각난 듯 창자들이 꼬르륵꼬르륵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들판 가득 하얗게 피어 있는 꽃들을 보고 있으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따오는 풀밭으로 껑충 뛰어들었습니다. 정신없이 토끼풀이랑 개미취, 개망초 풀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야!"

불쑥, 토끼 한 마리가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앵초 아주머니."

따오는 놀라지 않았습니다. 토끼풀밭에서는 토끼들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거든요. 화를 내며 얼굴을 내민 토끼는 따오를 보자 이내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호호호. 누군가 했더니 귀염둥이 따오였군. 내 이름도 다 외우고 말이야."

토끼의 긴 귀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거립니다. 따오는 낮게 엎드려 앵초 아주머니와 키를 맞추었습니다.


"그럼요. 저는 기억력이 좋아서 한 번 들으면 잘 잊어버리지 않아요. 적어도 리초보다는요."

"그래? 그렇다면 나중에 리초에게 진짜인지 확인해 봐야겠는 걸?"

앵초 아주머니가 중얼거리며 말했습니다.


앵초 아주머니는 말을 하면서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여우가 오는지 늘 살펴봐야 합니다. 앵초 아주머니는 얼마 전에도 자식을 잃었습니다.


"땅 위에서 다 큰 사슴이 풀쩍풀쩍 뛰니까 우리 새끼들이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어."

앵초 아주머니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습니다.

따오는 비실비실 웃으며 확인하듯 물었습니다.

"다 큰 사슴이라구요?"

"그럼, 태어나서 2개월 지났으면 다 컸지. 언제까지고 엄마 품을 맴돌 수는 없잖아? 우리 토끼들은 말야……."


따오는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앵초 아주머니의 토끼 자랑이 또 시작되었지만 그런 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다 큰 사슴. 다 큰 사슴.” 

따오는 같은 말을 되뇌이며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자신을 처음으로 다 큰 사슴으로 인정해 준 앵초 아주머니에게 폴짝 달려들어 뽀뽀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리초가 옆에서 같이 들어야 하는 건데 정말 아쉽습니다.


"그럼요. 그럼요. 아직 젖도 못 뗀 리초만 불쌍하죠. 혹시 나중에 리초를 만나면 이 얘길 꼭 해 주세요."

앵초 아주머니가 눈을 멀뚱거리며 되물었습니다.

"무슨 얘기?"

"제가 다 큰 사슴이라는 얘기요."

그러자 앵초 아주머니는 답답하다는 듯이, 또박또박 끊어서 말했습니다.

"내 얘긴, 다 큰 사슴이, 아기처럼 풀밭을, 뛰어 다녀서, 우리 아이들이, 잠을 못 잔다는 거야."

"그럼요. 다 큰 사슴이 그러면 안 되죠. 그리고 제가 다 큰 사슴이라는 말을 리초한테 꼭 해 주셔야 해요."

"그건 리초도 마찬가진 걸?"

"헤헤. 리초는 아직 엄마 젖도 못 뗐어요. 풀을 먹는 저하고는 수준이 다르죠."


따오는 갑자기 나무껍질이 생각났습니다. 

‘어른 사슴이 되면 이 정도 풀은 아무 것도 아니란다. 진짜 맛있는 것은 나무껍질이지. 그리고 나무껍질을 먹을 수 있어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야.’

리초 엄마가 풀 먹는 걸 가르쳐주면서 한 말입니다.

'그래. 정말 다 큰 사슴이라면 나무껍질는 먹을 수 있어야 해. 나무껍질을 먹으면 리초 엄마라도 내가 다 컸다는 걸 인정해야 할 걸.'

따오는 이제 자기가 다 큰 숫사슴이라는 걸 리초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얼마 전에 토끼 아저씨가 나무껍질 먹는 것을 본 게 떠올랐습니다. 얄라 아저씨는 앞 이빨로 나무껍질을 쭈욱 벗기고는 냠냠거리며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혹시 나무껍질 먹을 수 있으세요?“

따오는 아주 예의바르게 질문을 했습니다.

"나무껍질? 글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 걸."

앵초 아주머니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내사랑 얄라는 알고 있을 거야. 잠깐만 기다려 볼래?"


앵초 아주머니는 얄라 아저씨를 부를 때 꼭 '내사랑'이라고 앞에 붙였습니다. 얄라 아저씨가 그렇게 좋은가 봅니다. 앵초 아주머니가 아래로 내려가기가 무섭게 얄라 아저씨가 쑤욱 나타났습니다. 꼭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얄라 아저씨는 이슬방울이 아직 그대로 묻어 있는 토끼풀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습니다. 얄라 아저씨는 유독 젖은 풀을 좋아했습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젖은 풀을 먹었다고 입버릇처럼 자랑했습니다. 사실 토끼풀밭에서 젖은 풀을 먹을 수 있는 토끼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아니 토끼가 젖은 풀을 먹는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입니다. 토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마른 풀만 먹고 자라지요. 하나님께서 토끼를 만들 때 물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답니다. 젖은 풀은 오히려 토끼에게 해롭습니다. 얄라 아저씨는 어릴 때 젖은 풀을 먹는다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오히려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비가 오면 토끼들은 풀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비는 때로 며칠씩 계속해서 내리기도 하는데 그 때에는 마른 풀을 구하지 못해 굶어 죽기도 합니다. 그러니 다른 토끼들이 얄라 아저씨를 부러워할 수밖에요. 물론 부지런한 토끼들은 미리미리 풀을 뜯어 창고에 저장해 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얄라 아저씨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장대같이 퍼붓는 비 속을 헤집으며 물기 가득한 토끼풀을 먹는 용감한 토끼를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멋져요? 얄라 아저씨가 바로 그 상상 속의 토끼였습니다.   

   

"오호. 따오로군. 요즘 풀 먹는 법을 배운다더니 어때?"

"아주 맛있어요. 전혀 다른 맛이에요."

"그래그래. 하지만 토끼풀은 조금만 먹어야 한다. 우리한테는 공기처럼 소중한 풀이니까."

토끼 아저씨는 한쪽 눈을 찡긋 감았습니다.


"그래서 얘긴데요. 리초 엄마가"

그 때 토끼 아저씨가 따오의 말을 툭 잘랐습니다.

"리초 엄마, 리초 엄마. 내가 이런 말을 해서 될지 모르겠지만, 따오야. 이젠 그냥 '엄마'라고 부르는 게 어떻겠니? 널 그렇게 친자식처럼 생각하고 위해 주는데 말야."


따오는 갑작스런 얘기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죄, 죄송해요. 근데 그, 그게 잘 안 돼요. 몇 번 해 보려고 했는데, 입 안에서 뱅뱅 돌기만 해요."

따오는 어느새 말까지 더듬거렸습니다. 얄라 아저씨가 자기의 기다란 귀를 늘어뜨려 핥았습니다.


"나한테 죄송할 건 없고, 그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 거야. 우리 토끼들은 예의를 아주 소중히 여기거든."

"예, 저도 잘 알아요. 저희 사슴도 예의는 소중히 여긴답니다. 하지만 이건 예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 리초 엄마가 뭐랬다고?"

얄라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나무껍질도 먹을 수 있다고 했어요."

“암, 어른 사슴은 나무껍질도 잘 먹지.”

“그런데요. 얄라 아저씨도 나무껍질을 먹을 수 있나요?”

“나? 암. 잘 먹지. 하지만 아무 토끼나 다 나무껍질을 잘 먹을 수 있는 게 아냐. 나처럼 젖은 풀을 먹을 수 있는 토끼들이 특히 더 잘 먹지. 나는 말야.”

“그러면요. 먹을 수 있는 나무껍질이 어떤 건지 알려주세요."

따오는 얼른 얄라 아저씨의 말을 잘랐습니다. 토끼들은 한번 자랑을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모르거든요.


"오호. 따오가 이젠 나무껍질까지? 리초는 아직 엄마 젖도 못 뗐는데 말야."

얄라가 놀랍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습니다.

"저는 어른 사슴이나 마찬가지예요. 앵초 아주머니가 그랬어요. 저보고 다 컸다고요. 그리고 그걸 증명해보이고 싶어요.“


따오는 얄라 아저씨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내사랑 앵초가 그랬단 말이지? 좋아. 역시 숫사슴은 달라. 그래도 넌 아직 어리니까 부드러운 나무껍질이 좋겠지?"

"아니, 괜찮아요. 그보다는 맛있는 나무껍질이면 더 좋겠어요."

따오는 어른이 된 자기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얄라 아저씨가 답답했습니다. 얄라 아저씨는 귀를 다 닦고 이제 혀로 앞발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가만 있자. 음. 요 아래 연못가에 내려가면 먹을 만한 나무들이 조금 있지. 가래나무나 물푸레나무 껍질은 연하고 맛이 있어. 그리고 두릅나무도 맛있긴 한데 가시가 많아서 네가 먹긴 힘들 거야. 아주 무섭게 생겼거든. 나무껍질이 그렇게 무서운 건 나도 딱 질색이야. 그렇지만 진정한 숫사슴이 되려면 두릅나무 껍질 정도는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지금쯤이면 맛있고 부드러운 두릅나무 새순이 조금 남아있을 거야. "


"두릅나무라고요? 제가 바로 아저씨가 말한 바로 그 진정한 숫사슴이에요. 그러니 두릅나무 껍질도 문제없어요. 정말이라구요."

따오는 ‘진정한 숫사슴’이라는 말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진정한’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멋진 말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숫사슴’이 되기 위해 반드시 두릅나무 껍질을 먹으리라 다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따오는 황급히 인사를 하고 언덕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따오가 언던 아래로 사라지자 얄라 아저씨는 다시 젖은 토끼풀을 질겅거리며 토끼굴로 내려갔습니다. 


"허허. 따오 녀석, 참 맹랑하기도 하지."

"어느새 쑥 자란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도 따오처럼 쑥쑥 자라겠지요?"

"아무렴. 따오만 못 하겠소?"

 얄라 아저씨와 앵초 아주머니의 속닥거리는 소리가 토끼굴 밖으로 살금살금 새어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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