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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Apr 17. 2024

(숲속의 빨간 신호등)3.위험해 따오!

생태환경동화

3. 위험해따오!     

"흐흐흐. 오늘 드디어 저 녀석을 먹을 수 있겠군."

여우 싸리는 침을 잔뜩 흘렸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사슴은 고기가 부드럽기도 하지만 향긋한 맛도 참 좋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싸리입니다. 싸리는 리초와 따오가 태어나자 가족에게 부드러운 사슴 고기를 먹게 해 주겠다고 큰 소리를 땅땅 쳤습니다. 아빠 여우라면 사슴 새끼 정도는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우에 걸맞는 사냥꾼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아니, 아빠 여우가 되어 가지고 아기 사슴 하나 잡지 못한다면 그건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싸리는 따오가 태어난 지 두 달이 지나가도록 새끼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싸리는 지난 번 실수를 만회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란 걸 깨달았습니다. 멍청한 따오가 다 자란 숫사슴 마냥 혼자 돌아다니고 있지 뭡니까. 저렇게 작은 아기 사슴을 잡지 못한다면 여우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싸리는 따오가 참나무 숲을 지날 때부터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설마 했는데 정말 혼자입니다. 싸리는 토끼풀밭까지 단숨에 뒤쫓아왔습니다. 조심스럽게 몸을 숨긴 채 따오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숨조차도 몇 번에 나누어 가늘게 내쉬었습니다. 하지만 토끼풀밭에서 따오를 덮칠 수가 없었습니다. 따오는 눈치 빠르기로 소문난 앵초 토끼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잘못해서 욕심을 내다간 어렵게 뒤쫓은 따오를 놓칠 것이 분명했습니다. 따오가 갑자기 토끼와 헤어진 채 혼자 연못으로 가고 있습니다. 싸리의 입은 커다란 나뭇잎처럼 벌어졌습니다. 어느새 입 안 가득 침도 고였습니다. 벌써 부드러운 사슴 고기가 입 안에서 살살 녹아내리는 것 같습니다. 고기 먹는 걸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특히 사슴 고기는 먹어 보지 않으면 그 맛을 모릅니다. 싸리는 따오를 따라 스르르르 바람처럼 움직였습니다. 마침 바람이 따오 앞쪽에서 불어오고 있습니다. 

     

따오는 퐁퐁퐁 물이 샘솟는 연못가에서 노르스름한 껍질을 가진 작은 나무를 발견했습니다. 킁킁거려 보았지만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입으로 조심스레 껍질을 벗겨 보았습니다. 


퉤퉤. 

따오는 얼른 나무껍질을 뱉었습니다. 

'이렇게 쓴 걸 맛있다고 하다니.'

침을 몇 번 더 뱉어 보았지만 쓴 맛이 가시지 않습니다. 혀가 알싸해졌습니다. 따오는 습관처럼 고개를 들어 코를 내밀었습니다. 바람은 산 밑에서 불어오고 있습니다. 향긋한 꽃바람만 살랑살랑 코 앞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걱정이 되어 몇 번이나 냄새를 맡아 보았지만 여우 냄새는 나지 않았습니다. 따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토끼풀밭 쪽으로 돌려 여우가 있나 살펴보았습니다.


스사삭.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뭔가 재빠르게 숨는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따오는 눈을 크게 떴지만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설마 여우는 아니겠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앞다리가 후들후들 대나무 이파리처럼 흔들리는 것을 어쩔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 나뭇잎 하나가 땅으로 톡 떨어졌습니다. 

'휴우. 괜히 떨었네.'

따오는 이내 안심했습니다. 물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가시가 잔뜩 나 있는 나무가 보였습니다.


'옳지. 저게 두릅나무인가 보다. 가시가 있어서 내가 못 먹을 거라고?'

따오는 폴짝 뛰어 두릅나무 옆으로 갔습니다. 군데군데 돌멩이들이 땅 위로 튀어 나와 있어 하마터면 발목을 삘 뻔 했습니다. 두릅나무 껍질에는 정말 가시가 뾰족뾰족 나 있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가시가 많을 줄 몰랐습니다. 입술을 갖다 대는 게 겁이 날 지경입니다. 가지 중간에 푸릇푸릇한 새 순이 보였습니다.


‘일단 이거부터 먹어보자. 그러면 두릅나무 껍질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따오는 두릅 새순을 뜯어 먹었습니다. 약간 쓴 듯하면서도 독특한 향이 입 안으로 번졌습니다.


“야, 멋진 맛이다.”

따오는 나머지 남아 있는 두릅 새순을 찾아 모조리 먹어 치웠습니다. 아직 배가 고픈 따오는 자연스레 두릅나무 껍질에 눈이 갔습니다.

'먹을 수 있을까?'

'설마 먹지도 못할 걸 먹으라고 하지는 않았겠지.'

'아냐, 얄라 아저씨는 앞 이빨이 툭 튀어 나와 튼튼해 보였어.'

'그래도 진정한 숫사슴이 되려면 이 정도는 먹어야 해.'

고민하던 따오는 눈을 딱 감고 한 번만 먹어 보기로 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 먹다 힘들면 그만 두어도 창피를 당할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오는 겁이 나서 한쪽 눈을 감고 입술을 조심조심 나무 껍질에 갖다 댔습니다.


아야!

입술에서 피가 몽글몽글 솟아올랐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습니다. 따오는 눈을 꼭 감고 힘차게 껍질을 벗겼습니다. 껍질이 가시와 함께 주욱 벗겨졌습니다. 가시를 안으로 말아 조심조심 씹기 시작했습니다. 가시가 삐쳐 나와 입천장을 찔러 대었지만 꾹 참고 씹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향긋한 향이 입 안 가득 퍼졌습니다. 새순과는 또 다른 맛이었습니다.


"우아. 맛있다. 정말 맛있어."

따오는 입을 오물거리며 반대편 껍질을 벗기기 위해 살짝 몸을 돌렸습니다.


휘리릭. 

뭔가 급하게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따오는 조심조심 주위를 살폈습니다. 건너편 개망초 꽃잎이 살짝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따오는 눈을 바짝 뜨고 개망초 수풀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아무런 움직임도 없습니다. 그때 앞쪽 졸참나무 가지에 앉아 있던 청설모가 잣 하나를 아래로 톡 떨어트렸습니다.

'에이. 청설모잖아. 깜짝 놀랐네.'

따오는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두릅나무 껍질을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습니다.   

   

한 차례 바람이 불자 따오의 피 냄새가 싸리에게 후끈 전해졌습니다. 피 냄새를 맡은 여우는 너무 흥분해서 스스로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한참 동안 끙끙거렸습니다. 여우는 마지막 한 순간을 위해 발소리도 내지 않고 더욱 가까이, 조심조심 그리고 살금살금 따오에게 다가갔습니다.     


"연못으로 갔다구?"

엄마 사슴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엄마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 안 듣게 하려고 얼마나 열심히 따오를 위해 주었는데, 이렇게 말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다니. 엄마 사슴은 화가 나서 콧김을 킁킁 내며 앞발로 땅을 쿡쿡 찍었습니다. 바람이 불자 따오 냄새와 여우 냄새가 동시에 밀려 왔습니다.


"싸리가 가까이 있는 모양이다. 이를 어쩌지?"

엄마 사슴은 이제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하지 못했습니다.


"싸리라고요?"

리초가 되물었습니다.


"그래. 따오 엄마를 잡아먹은 못된 여우 녀석 말이야. 네가 태어난 뒤 계속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는 바로 그 여우놈이지."

리초 얼굴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무서운 여우가 따오를 덮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리초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설마 따오를 어떻게 한 건 아니겠죠?"

"아직은 아닌 것 같다. 피 냄새가 나지는 않거든."

"여우가 그렇게 영리해요?"

"보통 똑똑한 게 아니란다. 바람도 아주 잘 이용하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 틈을 절대 놓치지 않아. 따오 엄마가 잡힌 것도 정말 한 순간이었지."


엄마 사슴은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따오가 잘 때 풀숲에 혼자 놔둔 게 실수였어. 따오 엄마가 잠깐 물 마시러 갔는데 그걸 싸리가 알아차린 거야. 정말 귀신같은 놈이었지. 따오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도 정신없이 달려갔단다. 싸리 혼자 온 게 아니었어. 엄마 여우까지 합세해서 어린 따오에게 덤벼들었지. 따오는 여우가 온 것도 모른 채 엄마만 찾으며 울고 있었지. 정말 아슬아슬했단다. 따오 엄마는 죽기살기로 싸리에게 달려들었어. 뿔이 없는 데도 머리로 치받고 앞발 뒷발 마구 발길질을 해댔지. 따오 엄마는 제 정신이 아니었단다. 싸리는 금방 사태를 파악했지. 미친 것처럼 달려드는 어른 사슴 두 마리를 여우가 당해 낼 순 없거든. 그렇지만 그 때 따오 엄마는 다리를 다쳐 절룩거리게 되었단다. 나중에 그 때문에 결국 싸리에게 잡히고 말았지. 비가 하늘을 까맣게 뒤덮은 날이었어. 어떤 소리도, 냄새도 전혀 맡을 수 없었지. 사실 비가 오니까 여우가 돌아다니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건 따오 엄마의 잘못이기도 해. 얼마나 영리한 놈인데. 싸리 녀석, 그 뒤로 한 동안 나타나지 않더니만."

엄마는 가만히 서서 바람에 몸을 맡기고 냄새를 맡았습니다.


"쉿!"

엄마 사슴이 더욱 낮게 엎드렸습니다. 리초도 무릎을 낮추었습니다. 엄마 사슴은 기어가듯이 엉금엉금 연못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숨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뾰족한 가시들이 얼굴과 몸통을 여기저기 찔러댔지만 신음소리도 낼 수 없었습니다. 엄마 사슴은 입을 꾹 다문 채 앞만 보며 내려갔습니다. 따오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보니 따오는 정말 작았습니다. 여우라면 한 입에 덥석 물고도 남을 만큼 작았습니다. 리초는 몸이 오소소 떨렸습니다. 털이 하나하나 뻣뻣하게 일어섰습니다. 엄마 사슴은 몸을 바짝 엎드렸습니다. 여우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수풀 사이에 숨어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따오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나무껍질을 먹고 있었습니다. 엄마 사슴은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연못 뒤에 있는 수풀에서 바람 소리가 났습니다. 개망초 꽃은 엄마 사슴 키만큼 자라 있었습니다. 바람 때문인지 개망초 꽃이 약하게 흔들렸습니다. 엄마 사슴은 여우가 개망초 풀숲에 숨어 있다는 걸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따오가 있는 곳까지 멀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엄마 사슴은 더 이상 내려가는 걸 멈추었습니다. 더 내려가면 여우에게 들킬 수 있습니다. 엄마 사슴은 가빠지는 호흡을 가라앉히려 가늘게 숨을 내쉬었습니다. 개망초 꽃잎이 한 번 더 흔들렸습니다. 여우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는 것이 눈에 선히 보이는 듯합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엄마 사슴은 숨을 한 번 고른 뒤 억센 바람 소리로 짖기 시작했습니다.


퍼 퍼

퍼퍼퍼

따오를 향해 짧게 끊어지는 소리로 짖었습니다. 


따오는 깜짝 놀랐습니다. 엄마가 예전에 가르쳐 준 사슴들만 내는 위험 신호였습니다. 저렇게 짧게 짖을 땐 여우가 상당히 가까이 있다는 뜻입니다. 


'고개를 돌리면 안 돼. 침착. 침착'

따오는 마른 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심장이 쿵쿵쿵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미쳤지. 그깟 진정한 숫사슴이 뭐라고. 이깟 나무껍질이 뭐라고.'

숨이 가빠지기 시작합니다. 

'정신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

따오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눈을 부릅떴습니다. 콧등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습니다. 털이란 털은 몽땅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여우에게 잡혀 가도 정신만 차리면 반드시 살 수 있단다.'

엄마가 늘 해주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엄마.'

따오는 마음속으로 엄마를 불러 보았습니다.

'엄마, 지혜를 주세요.'


따오는 여우가 어디에 있는지 곁눈질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디에 숨어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아, 어느 쪽으로 도망가지 하지? 여우 있는 쪽으로 뛰어가면 안 되는데.'

따오는 다시 엄마를 생각했습니다. 따오는 고개를 아래로 숙인 채 오솔길 쪽으로 눈을 치켜떴습니다.

'아, 엄마!'

분명히 엄마입니다. 엄마가 오른쪽 오솔길에 서서 희미하게 웃고 있습니다.     


여우도 리초 엄마의 짧게 짖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런 젠장. 나도 모르게 언제 따라온 거야. 서둘러야겠군.'

여우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습니다. 단번에 뛰어 오를 수 있도록 앞 다리에 단단히 힘을 주었습니다.


"따오, 뛰어!"

엄마 사슴이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따오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솟구쳤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뒷발에 힘을 주고 탱탱한 나뭇가지처럼 몸을 튕겼습니다.


캬오!

여우도 동시에 뛰어 올랐습니다. 싸리는 계산해 둔 바위로 정확하게 몸을 날렸습니다. 한번에 뛰어 올라 따오를 잡기에는 조금 먼 거리였습니다. 바위를 도움받이로 발을 한 번 튕긴다면 정확하게 따오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따오는 본능적으로 엄마가 서 있던 곳으로 몸을 틀었습니다. 발이 땅에 떨어지면서 중심을 잡지 못해 약간 비틀거렸지만 쓰러질 틈도 없이 다시 뛰어 올랐습니다. 그러곤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태어나서 정말 꽁지가 빠지도록 뛰긴 처음이었습니다. 따오는 오솔길이 나 있는 쪽으로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으아악!

여우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습니다. 싸리는 물 속에 쓰러진 채 신음소리를 냈습니다. 싸리는 바위 아랫쪽에 이끼가 짙푸르게 나 있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오른 발이 그만 푸른 이끼를 살짝 밟고 말았습니다. 싸리는 철퍼덕 소리를 내며 미끄러졌습니다. 물 속에서 한참을 그냥 엎드려 있었습니다. 리초와 엄마 사슴이 같이 보고 있다는 걸 생각하니 창피한 생각에 빨리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여우 체면이 다 구겨져 버렸습니다. 숲 속에서는 소문이 빨리 퍼지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창피해서 어쩌지? 자식들을 무슨 낯으로 보지? 온갖 걱정이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우수수 소리내며 밀려왔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에 마냥 엎어져 있을 수는 없지. 모름지기 사내대장부라면 자기의 잘못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해.’ 

싸리는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나 몸을 흔들었습니다. 물방울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습니다. 옆구리도 욱식욱신 아프고, 다리도 시큰시큰 아프고, 콧물도 찔끔찔끔 나왔습니다. 


"따오, 고놈 참. 번개같이 빠르군. 어느새 다 커버렸지 뭐야!"

싸리는 리초 엄마가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에취! 아이고. 감기까지 걸린 모양이군. 훌쩍."

여우는 터덜터덜 절룩절룩 여우골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넘어지면서 다리가 접질렸는지 제대로 걷는 걷도 힘들었습니다. 뒤늦게 오솔길을 쳐다보았지만 따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싸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여우골로 돌아갔습니다.     


리초는 숨어 있는 동안 내내 웃음을 참느라 혼났습니다. 무서운 생각이 들기보다는 불쌍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 무서운 여우가 연못에 넘어져 있다니. 

"뭐가 그리 우습니? 하마터면 따오가 죽을 뻔 했는데."

엄마 사슴은 아직도 콩닥거리는지 가슴이 들쑥날쑥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에 리초는 숨바꼭질을 하던 박달나무 아래에서 따오를 만났습니다. 따오는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숨을 할딱거리고 있었습니다. 리초는 따오에게 다가가 앞발을 등 위에 살짝 얹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잡았어. 이젠 네가 술래야."


따오의 눈망울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보름달처럼 커졌습니다. 리초는 그런 따오를 보고 그만 우하하 웃고 말았습니다. 따오는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한 채 멍하니 리초를 쳐다보았습니다. 엄마 사슴이 따오를 보더니 그만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따오가 어땠냐구요? 입 밖으로는 먹다 남은 두릅나무 껍질이 몇 줄기 나와 있었고, 턱 아래로는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술래라는 말에 그만 얼이 빠져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꼴이라니. 리초는 떼굴떼굴 구르며 웃었습니다. 한참 있다 따오도 웃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잡히다니. 정말 억울해."


따오는 두릅나무 껍질을 천천히 씹기 시작했습니다. 향긋한 냄새가 입 안 가득 퍼졌습니다.

"피, 그래도 너는 이 맛, 모를 걸?"

따오는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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