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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Apr 26. 2024

(퇴사 아니고 퇴직) 유일한 공식 외출, 독서 모임

퇴직일기

[유일한 공식 외출, 독서 모임에 나가다]



퇴직하고 나니 일상이 단조로워진다. 외출이라고 해봐야 아침 운동하러 나갔다 들어오는 것과 식료품 사러 마트에 들렀다 오는 것, 그리고 평생을 해 오고 있는 종교 활동 정도다. 그래도 하루는 금방 지나간다. 시간이 상대적이라고 하는데, 내게는 유난히 쏜살 같다. 따뜻한 햇살 아래 잠시 앉아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있다보면 어느새 아내가 환한 웃음을 띠며 퇴근하여 거실로 들어온다.



뭔가 활동할 거리를 찾아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네이버 밴드를 열심히 탐색했다. 내가 만든 독서 활동 밴드도 있지만 여긴 이제 지역별로 모이는 모임이 코로나 이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수원, 화성, 용인, 오산 정도에서 모여 책을 읽고 나누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네이버 밴드는 아주 유용한 앱이다. 독서와 수원으로 키워드를 넣었더니 꽤 많은 독서 모임이 검색되어 나온다.



사실 이미 터줏대감처럼 오랜 기간 수원 지역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밴드가 있긴 한데 그곳은 수요일 저녁과 일요일에만 모인다. 나는 수요 저녁 예배와 일요일 주일예배를 드리러 가야 하기 때문에 이 곳에는 가입만 하고 오프라인 모임 참석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간간이 독서 후기 같은 글을 올리곤 했지만 오프라인으로 얼굴을 보지 못하니 친밀감도 덜하고 내가 둥지를 틀기 힘든 곳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만든 독서모임 밴드는 정말 9년 가까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운영해왔다. 규칙을 만들고 회원을 정비하여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독서운동가로서의 삶을 아낌없이 투자하였는데 너무 힘에 부쳤다. 공동리더분께서 많이 도와주셨지만 직장생활과 병행하기가 많이 힘들었다. 고민 끝에 나와 자주 만나 얘기도 나눴던 분에게 리더를 받아줄 수 있는지 여쭈었다. 그 분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서울 혜화동에 서점을 열고 본격적으로 책과의 여행을 시작하신 분이었다. 다행히 그분이 맡아 주시겠다고 해서 나는 공동리더로 내려왔다. 지금 그 밴드는 오랜 세월 만들어진 탄탄한 기초 덕분에 스스로 잘 운영되고 있다. 다만 지역 모임이 없어 아쉬울 뿐이다.



검색한 지역 독서 모임들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책에 대한 얘기보다 좋은 글이나 명언들만 올라오는 밴드가 많다. 이런 곳은 넘긴다. 어떤 밴드는 리더만 열심히 글을 올리고 다른 분들은 반응이 없다. 이런 곳도 넘긴다. 내가 찾는 밴드는 살아 움직이는 밴드여야 했다. 그렇게 살피다 수원과 병점을 중심으로 격주로 모여 독서모임을 하는 밴드를 찾게 되었다. 토요일 오전에 모여 2시간 가량 정해진 도서에 대한 토론 모임을 하고 시간이 되는 분들은 점심을 먹고 헤어진다.



나는 가입한 그 때부터 가장 열심히 모임에 참석했다. 사실 나는 내성적이고 앞으로 나서서 무언가를 이끌고 하는 성격이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모르고 지나갈 정도로 초극내향성 사람이다. 그렇지만 책 이야기를 할 때는 달라진다. 사람이 편안해지고 분위기가 내게 익숙해지면 나는 그때부터 외향성을 조금 보인다. 이 모임은 첫 모임부터 편안했다. 만나기 전부터 밴드에서 채팅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밀감을 가진 게 큰 영향을 끼쳤다. 게다가 막 이사를 한 뒤여서 책장 정리하면서 책장에  다 꽃아넣지 못한 책도 몇 상자씩 가져가서 나눔을 많이 했다. 두 달 정도 지났는데 그 동안 한 번도 한 빠지고 참석한 사람은 리더님과 나뿐이다. 나는 어느새 터줏대감처럼 이곳 독서모임에 잘 스며들었다.



그 동안 읽고 함께 나눈 책은 총 5권이다.



내가 아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카를로 로벨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꾸뻬 씨의 행복여행 (프랑스아 를로르)


바디 (빌 브라이슨)


스토너 (존 윌리엄스)



빌 브라이슨의 <바디>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처럼 토론하기가 조금 버거운 책을 할 때는 참석자가 적고, <꾸뻬 씨의 행복 여행>처럼 조금 읽기 편한 책은 많이 모였다. 다음 주에는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 2권 짜리를 읽고 모인다. 현재 참여 신청자는 여섯 명이다. 딱 적당한 인원이다.



이제 격주로 모이는 독서토론 모임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외출 모임이 되었다. 늘 혼자 집에만 있다가 여러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의견을 주고 받을 때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같은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서로 얘기를 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다. 토론을 이끄는 리더님이 아주 차분하게 잘 진행해주고 있어 지금까지 큰 무리없이 잘 진행되어 왔다. 



다음 주 토요일에 만나서 얘기할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 책은 아직 많이 읽지 못했다. 앞부분 조금 읽었는데 역시나 그동안 내가 헤르만 헤세를 멀리 했던 그 어려움이 나를 딱 가로막았다. 그래도 헤르만 헤세가 이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니, 열심을 내어 읽어봐야겠다. 



퇴직 이후 나에게 찾아온 큰 즐거움. 내가 가장 잘 결정한 일 중 하나는 바로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그것이 또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준다. 책을 읽을 때 나는 엔돌핀이 솟아 오르고, 아픔이 치유된다.  책을 읽으면 나도 이런 글을 써야지 하는 욕망이 생긴다. 그리고 책 속에서 나와 다르지만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을 보면서 열심히 살아갈 이유를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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