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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May 28. 2024

(취미가 독서) 10. 책방 관련 책도 좋아한다

[10화. 독서가의 마지막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어린 시절, 내 꿈은 짜장면집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는 대충 눈치를 챘을 것이다. 짜장면집을 하는 여자와 결혼하면 짜장면을 무제한으로 실컷 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지극히 소박하면서도 서민적인 꿈이었다. 그런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짜장면 가게를 열면 되는데, 왜 짜장면집 여자와 결혼을 해야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빈대처럼 붙어 먹는 걸 좋아하는 못된 습성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꿈이 소설가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고 나는 문학이 아니라 공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잠시 방송통신대학 국문학과 입학을 했지만, 회사 일을 하면서 공부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어쨌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문학 동아리 활동도 하고 글 창작 연습을 하다가 등단이란 것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인이 되고, 동화작가가 되고 소설가도 되었다. 하지만 전업작가는 꿈을 꿀 수가 없었다. 아주 유명한 소설가나 작가가 아니고서는 책 한 권 내고 받는 인세로는 살아갈 방도가 없다. 그게 냉정한 현실이었다.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낸다고 해도 최저시급에 미치지 못하는 인세를 받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말한다. 꿈은 취미활동으로 하고, 직장을 현실로 인정하라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좋아하는 책,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를 읽어보면 그가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비참하고 험악한 세월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 잠시 그의 입을 빌려 보자.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쓰는 것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신들의 호의를 얻지 못하면 (거기에만 매달려 살아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있을진저),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비바람을 막아 줄 방 한 칸 없이 떠돌다가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일치감치 작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했고 각오도 되어 있었으니까, 불만은 없었다. 그 점에서는 정말 운이 좋았다. 물질적으로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었고, 내 앞에 가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겁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한 것은 재능- 나는 이것이 내 안에 있다고 느꼈다.-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어는 것, 그것뿐이었다.


작가들은 대부분 이중 생활을 하고 있다. 생계에 필요한 돈은 본업으로 벌고, 남는 시간을 최대한 쪼개어 글을 쓴다. 이른 아침이나 밤늦게, 주말이나 휴가 때. 윌리엄 칼러스 윌리엄스와 루이 페르디낭 셀린은 의사였다. 윌리스 스티븐스는 보험 회사에 다녔다. T.S.엘리어트는 한때 은행원이었고, 나중에는 출판업에 종사했다. 내가 아는 이들 가운데 프랑스 시인인 자크 뒤팽은 파리에서 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 시인인 윌리엄 브롱크는 40년이 넘도록 뉴욕 북부에서 가업인 석탄과 목재상을 경영했다. 돈 드릴로, 피터 캐리, 샐먼 루시디, 엘모어 레너드는 광고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교직에 몸담고 있는 작가도 많다. 교직은 오늘날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해결책일 것이다. (폴 오스터, <빵굽는 타자기> 중에서)


폴 오스터는 말하길, 신의 가호를 입지 않으면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 면에서 보면 작가라는 이름은 명예일 수도 있다. 글을 써서 돈을 번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유명한 샐먼 루시디를 포함해 대부분 작가들은 직장을 가진 채 부업으로 글을 써서 작가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김수영 시인도 닭을 치며 생계를 유지하지 않았던가.


내가 인세를 제일 많이 받은 책은 내 인생에서 세상에 맨 처음 내 이름 석자를 알린  자기계발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였다. 그때는 책값이 지금보다 훨씬 저렴했는데도, 초판 발생부수가 많았다. 출판사에서는 최고 대우라면서 책값의 10%를 인세로 나에게 지급했다. 그 이후로 낸 책들은 초판 발행부수가 계속 줄어들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환경동화 <삐욜라 숲의 고양이들>은 초판 발생부수가 겨우 1000부에 불과했다.


나는 나름 저작권료도 꽤 받았는데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에 실린 글 중 일부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각종 교과서에 인용되어 저작권료를 몇 년 동안 계속 받았다. 잊을만 하면 신탁한 곳을 통해 저작권료가 입금되고 또 잊을만 하면 통지서가 날아오곤 했다. 그래봤자 푼돈이다. 가장 많이 받았을 때가  30만원 정도였다. 그때 세 곳의 교과서에 인용되어 수십만 권이 전국에  발행되었는데도 저작권료는 30만 원 수준이었다. 또 어떤 글은 대학 수능 모의고사 문제의 지문으로 출제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출제하면서 저자인 나의 동의도 구하지 않았고 나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내 글이 해피캠퍼스 같은 곳에서 자기가 쓴 글처럼 편집해서 팔리고 있길래 검색을 하다가 찾아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렇게 국가적인 시험에 사용할 때는 저작권료를 아예 주지 않는다고 한다.


책을 읽어대는 수준과 글을 써대는 수준을 비교하면 글을 쓰는 수준이 훨씬 열악하다. 시간을 대비해도 그렇고 결과물을 대비해도 그렇다. 어떤 식이냐고 하면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나는 스무 권 정도의 책을 사서 읽는다. 그것도 선불로 먼저 책을 산다. 대입 논술 수업을 진행할 때도 그랬다. 방과후 대입 논술 강사로 잠시 활동할 때 한 달 수입이 100만원이라면 가르치기 위해 내가 사서 읽는 책값이 20만원을 차지했다. 인문학 열풍이 한참 거세게 불타 오를 때였는데, 나도 대입 논술 수업을 준비하면서 동양철학, 서양철학, 심리학, 역사 등 얄팍하게나마 내 독서의 지경을 넓힐 수 있었다.


페이스북 활동을 한참 할 때 독서 클럽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정말 독서 고수들이 즐비했다. 나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한 달에 10권에서 15권 내외로 책을 읽었는데 내 주변에서는 이 정도로 책을 읽어제끼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페이스북 세계로 들어오면 내 정도로는 어디 번데기 주름 하나 정도 내세울 수 있는 수준에 해당되었다. 벽돌책을 포함해서 스무 권, 서른 권씩을 읽어내는 사람이 몇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내용들은 노트에 필사까지 다 하면서 그렇게 독서를 했다. 물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분은 광고회사에서 근무하기에 늘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분이 부럽기도 했지만 책만 읽을 수는 없고 성과를 내야 하는 것이기에 어쩌면 책 읽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가 퇴직을 하면 무엇을 하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65세까지 직장을 다닐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그렇게 퇴직하고 나면 어떻게 노후 경제를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현실적이고도 실재적인 물음표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서점을 눈에 그리기 시작했다. 서점을 하면 일단 신간 도서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어차피 큰 서점은 못할 것이고 동네 서점을 한다고 가장하자.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좋아하는 장르 위주로 책을 구성할 것이다. 이거야말로 꿩먹고 알먹기가 아닌가.


그래서 10여 년 전부터 책방, 서점에 관련된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읽은 책들만 열 권, 스무 권이 훌쩍 넘었다. 어떤 책들을 읽어왔는지 목록들을 대충 훑어 보면 아래와 같다.


김소영의 <진작 할 걸 그랬어>

백창화와 김병록의 <작은 책방, 우리 책 좀 팝니다>

요조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배지영의 <환상의 동네서점>

이충열의 <작고 아름다운 동네 책방 이야기>

북노마드 편집의 <서점의 일>

이유미의 <자기만의 책방>


일본 서점에 대한 책들도 몇 권 있다.


아구쓰 카카시의 <어서 오세요. 책읽는 가게입니다>

우다 도코모의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다지리 히사코의 <다이다이 서점에서>


그리고 내게 치명적인 어퍼컷을 날린 책들.

황보농의 <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 이후북스 책방일기>

송은정의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내게 가장 큰 희망을 준 책은 <진작 할 걸 그랬어>였고, 가장 아픔을 준 책은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였다.


일본 서점에 대한 소개에서는 1평짜리 작은 서점, 일주일 동안 단 한 권의 책만 파는 서점 같은 특이점이 유별난 서점에 대한 소개가 눈길을 끌었다. 확실히 일본인은 생각하는 게 조금 남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서점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사실은, 책방을 해서는 결코 이익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익은 커녕 현상유지 조차 어렵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금방 답이 딱 나온다.


몇 권의 책을 팔아야 가게 임대료와 관리비를 낼 수 있는가. 한 달에 250권 이상은 팔 수 있어야 수익이 아니라 현상유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작은 동네서점에서 한 달에 250권을 팔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동네책방에서는 음료를 같이 판다. 주로 커피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함께 따기도 하고, 제빵 학원에 등록해서 빵 기술을 익히기도 한다. 나와 같이 책방을 연구하면서 <책과 책방의 미래>라는 책을 선물로 주었던 지인은 용감하게 서울에서 책방을 차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층 건물이 본인 건물이어서 임대료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와 빵을 팔지 않으면 현상 유지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은 월화수목금토 글쓰기 강좌, 독서모임 등 온갖 행사를 하면서 책방을 문화 공간으로 확장하여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동네서점은 책만 팔아서는 유지하기 힘들다.




아내에게 수없이 책방에 대한 꿈을 얘기했지만, 매우 초초초극극극 현실주의자인 아내는 콧방귀도 안 뀐다. 돈을 확실히 벌 수 있는 계획표를 가져와보라고 한다. 온갖 정보를 찾다보니 자기 집 거실을 책방으로 연 사람도 있었다. 임대료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해도 자기 집을 공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린 시절, 짜장면을 먹고 싶어 짜장면 집 딸과 결혼하려던 꿈이 이제는 서점을 열어 책을 실컷 읽겠다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둘 다 비현실적이다. 나는 나이를 먹어도 이렇게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 그래도 동네책방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만약 내가 생활고를 책임지지만 않는다면, 500만원 정도만 투자해서 한쪽에 작은 책방을 열고, 한쪽에서는 글쓰기 수업 하는 상상을 해본다. 지금 거실을 꽉 채우고 있는 책은 누구나 와서 그냥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책방을 해서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어쩌면 진짜 내 꿈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죽기 전에 책방 한 번 열어서, 책방주인이 되고 싶다.

책을 좋아하는 할아버지 책방.


그때까지 여전히 책을 읽을 만큼 눈도 좋아야 하고,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들을 만큼의 귀도 좋아야 하고, 책방 문을 열고 닫고, 책을 들어 옮겨 서가에 꽃을 만큼의 체력도 있어야 하고, 서가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왔다갔다 하며 무슨 책을 살지 고민하는 사람 옆으로 슬쩍 가서, 책을 추천해주는 큐레이션을 할 정도의 센스도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책을 사러 와서, 인생 이야기며, 책 이야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과연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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