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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May 21. 2024

(취미가 독서) 9. 세계문학 도전기

[9화. 도전하는 독서, 세계문학 깨부수기]



지난 번 8화의 "벽돌책 도전기"처럼 이번 9화 역시 도전에 관한 글이다. 독서가 취미인데 무슨 도전이 있고, 목표가 있겠는가 생각하겠지만, 취미는 자고로 도전할 때 더 재미를 느끼고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해진다.



회사 지인 중에 클라이밍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회사에서 온갖 힘든 사무에 몸과 마음이 걸레처럼 되었다가도 퇴근하고 나면 갑자기 슈퍼맨이라도 된 것처럼 클라이밍 센터로 달려가 그 힘든 산행을 도전한다. 그는 계속해서 난이도를 높인다. 낮은 단계를 성공하고 나면 좀더 어려운 코스를 도전하고, 그 코스를 성공하고 나면 다음 난이도를 정해서 성공할 때까지 줄기차게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그러니까 한 번의 성공을 위한 열 번 스무 번의 실패를 즐기는 셈이다. 맨날 어느 고난이도의 함정 앞에서 무너지고 말지만 다음 번에는 꼭 성공하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매서운 눈으로 클라이밍의 튀어나온 돌멩이들을 보면서 작전을 짠다. 여기서는 힘을 좀 덜 쓰고, 저쪽에서 최대한 힘을 끌어모아 온몸을 던진다. 하는 식으로 그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고 손바닥에 흰가루를 묻혀 미끄러지지 않도록 한 다음 힘차게 다시 똑같은 첫 길을 도전한다.



땀을 흘리는 것은 성취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다. 이기고 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우리는 어느 날에는 몸이 잘 풀려 이길 때가 있고, 또 어느 날은 이상하게 잘 안 풀려 질 때도 있다. 이기고 지는 것에 목숨을 걸면 안 된다. 클라이밍이든 등산이든 낚시든 혼자서 하는 취미는 상대가 없다. 산이 내 도전 대상이고 바다가 내 도전 대상이 된다면 그것은 너무 무모하다. 결국 혼자 하는 취미 생활에서 굳이 상대를 찾는다면 바로 거울 속에 비치는 자기 자신이다. 나와 똑같이 행동하는 나 자신이 바로 내가 겨루어 이기고 성취감을 느껴야 하는 대상이고 도전이다.



조선시대 말, 개항기 때 외국인 선교사들이 조선 땅을 밟았다. 그들은 취미생활 겸 운동 겸 테니스를 쳤다. 서로 왼쪽 오른쪽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며 상대가 보내는 공을 받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광경을 보던 조선의 신분 높은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종들에게 시키면 될 일을 왜 그러게 땀을 흘리며 뛰어 다니는고."



그저 우스개 소리로 치부할 수 있는 조선 말 개항기 때 이야기로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이 얘기 속에는 우리가 왜 세계문학을 읽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동기가 들어 있다. 나와 다른 세상, 우리나라와 다른 저 너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 그곳의 작가들이 써내려 간 그들의 이야기. 세계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문학이 나를 향해 손짓하는 판타지의 그곳으로 넘어가는 경계의 이동을 뜻한다. 내게 익숙한 환경, 습관, 몸짓, 언어, 생각을 깨부수는 신비하고 놀라운 저곳의 삶을 조금씩 천천히 스며들도록 나를 적시는 일이다.



판타지 대하소설 <나니아 연대기>를 쓴 C.S.루이스는 날마다 7시간에서 8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의 독서욕은 결국 세상에 자기만의 세상을 창조하는 작가로 재탄생하게 만들었다. 그는 책이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어린 시절 놀던 커다란 옷장 속에서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판타지 세계를 연 것처럼, 책이란, 책 그 자체로 어린 시절 옷장에 숨어서 놀면서 환상의 세계, 내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세계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정서, 우리 역사, 우리 문화의 동질성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내가 태어나지 않은 곳, 나와 다른 문화와 습성, 나와 다른 환경과 역사를 가진 사람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또 다른 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 판타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386세대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어린 시절, 계몽사에서 펴낸 50권 짜리 아동세계문학 전집으로 판타지 세상을 만났다. 책 판매원의 끈질긴 설득에 짠순이 우리 엄마도 넘어갔다. 나는 1번, 2번 책인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가장 어려웠다. 50권 동화책은 놓을 자리가 없어 다락방에 2줄 책장에 넣어졌는데, 지금 내 창작의 상상력은 그때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얼마나 읽고 또 읽었는지 그 책은 닳고 닳았고, 언제 어떻게 처분되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다락방의 음습한 곳에서 희부연 백열등 아래서 책을 읽을 때의  책냄새와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열려라 참깨'를 외치며 동굴 속으로 들어가던 그 신비의 세계를 잊지 못한다.



우리나라 문학도 매우 우수하다. 해외로 번역해 내 놓는 작업을 잘하지 못해 우리나 문학의 우수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들에게 한국문학은 정말 새롭고 놀라운 문학이 될 것임에 틀림 없다. 왜냐면 세계문학을 읽어보면 문학의 수준과 높이, 깊이를 어느 정도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문학 작품들이 결코 세계문학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어떨 땐 이런 책을 왜 고생해서 한글로 번역해 들여왔을까 싶을 정도로 수준이 낮은 해외 책을 손에 쥔 적도 여러 번 있다. 그래서 해외 문학은 어느 정도 일정한 문학 수준이 되는 책을 고르는 것이 좋다. 그런 면에서 민음사, 열린책들, 문학동네, 을유문학, 문예춘추, 현대지성, 펭귄클래식 등에서 펴내는 시리즈 전집 문학책들을 읽으면 세계문학의 고전과 현대문학을 고루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작가가 사망하고 70년이 지나 어느 출판사에서나 책을 낼 수 있는 고전이 아닌 다음에는 한 작가의 작품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한 출판에서만 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책은 민음사에만 있거나, 을유문학에만 있거나 그렇다. 그래서 이런 책들은 클라이밍을 도전하는 사람처럼 우리도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독서를 할 수 있다.



옛날 중국 무술 영화가 우리나라 영화관을 점령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소룡에 이어 성룡, 홍금보 같은  영화 주인공이 우리의 우상일 때가 있었다. 나쁜 악당의 공격에 무림 고수였던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어린 소년이 천하제일 고수를 만나 산 속에서 수년 간 수련한 뒤 전국 각 무림 고수 도장을 찾아다니면서 격파해 나가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무림의 최고수가 되는 이야기는 거의 정해진 스토리였지만,  나약하기만 했던 주인공이 끝없는 수련을 통해 자기를 이겨내고 극복하고 성장하는 것은 어린 나에게도 큰 도전이 되었다. 그래서 만화책을 사서 열심히 수련 연습을 한 적도 있었다. 얼마나 열심히 초식을 따라 연습했던지 4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처음 동작을 재현해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럼 취미가 독서인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바로 중국 영화 주인공이 각 무림 고수 도장을 찾아가 하나씩 격파하며 자신감과 아우라를 나타낸 것처럼 (보통 무림 고수는 겸손하다.) 우리도 민음사 도서 깨기, 을유문학 도서 깨기, 현대지성 도서 깨기 같이 출판사별 세계 문학 작품을 하나씩 격파해 나가는 도전을 할 수 있다. 줄여서 민도깨(민음사 도서 깨기), 을도깨(을유문학 도서 깨기), 현도깨(현대지성 도서깨기), 열도깨(열린책들 도서 깨기) 라고 부르면서 말이다.



(사진 출처 : 필자 책장 사진)



20대 청년 시절 읽었던 책도 많다. 하지만 30년이 지나 다시 읽으면 책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3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나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다시 읽을 때, 내가 가진 기억의 왜곡이 얼마나 심한지 깨닫고는 가끔 크게 놀라기도 한다. 어,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가 전혀 아닌데? 그래서 "제인 에어" "테스" "적과 흑" "스탕달" 같이 청년 때 한 번씩은 다 읽었던 책이라도 세계문학 전집으로 다시 읽을 때는 전혀 다른 책을 읽는 느낌을 받는다.



가령 '민도깨'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민음사 세계문학은 몇 권까지 나와 있을까? 나무위키로 검색을 해보면 통권 400권이라고 한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만약 한 달에 한 권씩 읽는다고 가정하면 33년이 더 걸린다. 그러니 이 책을 내가 다 읽고 죽겠다, 이런 목표를 세울 필요는 없다. 이 책 말고도 읽어야 할 좋은 책들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만, 혼자서 목표를 세우고 읽기에 도전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세계문학전집 민음사)


한 달에 한 권씩 민음사 세계문학 책 읽기,를 목표로 해서 다른 책들과 함께 읽어도 좋다. 내가 가입해 있는 독서 까페에서는 매년 특정한 달을 정해서 그 달은 민도깨 하는 것으로 독서 미션을 진행한다. 8월에는 80번대 책을 열 권 읽어내는 것이다. 세계문학 전집에는 번호가 붙어 있다. 민음사 80번부터 89번 책까지 한 달 동안 읽는 것이다. 도전하고 싶은 사람은 댓글을 달고 그 달에는 그 책들을 읽어내는 데 초집중을 한다. 이른바 민도깨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무언가 도전을 할 때는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이 좋다. 같이 하면 불가능해보이는 일들도 어느 순간 골인 지점 앞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도장깨기 독서를 한다면, 한 달에 한 권씩 또는 두 권씩 도전을 하는 방법도 있고, 일 년에 30권씩 읽겠다 하는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는 방법도 있고, 방법은 자기가 세우기 마련이다.



혼자서 힘들면 독서밴드나 독서까페에 가입하여 같이 하자고 부추겨 진행해도 된다. 그렇게 도장깨기 독서를 하다보면 독서 편식도 줄어든다. 나는 한국 소설이 좋아. 나는 일본 작가 하루키 소설이 좋아, 미국 스타일 소설이 좋아, 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나 국가의 작품만 읽는 독서가들도 많다. 그렇지만 이렇게 도장깨기를 하면서 책을 읽다보면, 일본 문학작품, 중국 문학 작품, 남미 문학 작품, 북유럽 문학 작품 등 혼자서 책을 고를 땐 결코 손대지 않을 국가의 작품들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나는 아직 올해 들어 도장깨기 독서를 시도하지 못했다. 이제 5월이 지나가고 있으니 다음 달이면 올 상반기가 끝이 난다. 6월은 어느 출판사든 하나 골라 세계문학 도장깨기를 시도해야겠다. 상반기에 뭔가 하나는 도전해야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하다보면 성취감도 올라가고, 목표에 대한 도전, 자신과의 싸움, 자존감, 자신감 등 부수적으로 챙길 수 있는 정서적인 부분들이 많다. 진정 독서를 취미로 한다면 세계문학 독파!로 도전하고  성취하는 그 짜릿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와 함께 6월에 세계문학 도장깨기 같이 하실 분 있을까요? 손들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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