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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May 07. 2024

(취미가 독서) 7.대하소설 읽기

조정래 최명희 박경리 마르셀 프루스트까지


[7화. 도전하는 독서, 대하소설 읽기]


사람들 앞에서 "제 취미는 (당당하게) 독서입니다."라고 말을 할 수 있었지만, 한 달에 15권 이상을 읽고, 일 년에 170권 이상을 읽어도 늘 마음 한쪽 구석에는 "조정래"와 "최명희" 라는 대하소설 넘사벽을 넘지 못한 조급함이 있었다.



대하소설은 한 권 또는 두 세 권의 장편소설보다 훨씬 긴 소설로, 여러 세대에 걸친 역사적이고 사회문화적인 문제를 방대한 주제의식으로 풀어나가는 소설이다. 조정래의 대하 역사소설 <아리랑>은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소설로 총 12권이며,  <태백산맥>은 한국전쟁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로 총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한강>은 그 뒤 근대산업화를 이루어 나가는 이야기로 역시 총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조정래의 대하소설 3세트만 읽어나간다 해도 32권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보통 민음사 세계문학에서 두 권짜리 구성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같은 책이나 세 권짜리로 구성된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책들도 도전하기가 만만하지 않다. 한 권짜리 소설이라도 500쪽에서 700쪽에 달하는 벽돌책에 가까우면 일단 겁부터 먹게 된다. 그런데 대하소설은 일반적으로 10권이 기본이다. 이런 책은 읽다가 5권째에서 중단하거나 하면 다시 그 뒤를 이어 읽기도 어렵다. 쉬는 사이에 이야기 흐름을 다 놓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3권으로 구성된 "악령"이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읽었고, 심지어 다섯 권짜리 "레미제라블"도 읽었지만, 10권을 넘어가는 대하소설은 솔직히 손을 대기가 겁이 났다. 나는 여러 다양한 책을 동시에 읽는 스타일이었다. 내 독서기록 다이어리를 살펴보면 작년 독서에서 이월되어 넘어와 5월이 된 지금까지 그냥 이월도서로 남아있는 책도 수십 권이다. 현재 완전 재고처리 하지 않고 동시에 읽고 있는 책들도 거의 10권 내외 수준이다. 나처럼 이렇게 이책저책 동시에 읽는 멀티 독서법을 힘들어 하는 분이 많다. 집중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한 권만 계속 읽을 땐 어느 정도 분량이 차면 더 이상 읽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면 다른 책으로 갈아타서 앞쪽 부분 살짝 다시 보고 스토리를 이해한 다음 책을 읽는다. 그러면 책을 조금 더 긴 시간 읽을 수 있다. 그런 내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10권 세트 책을 줄기차게 읽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까 대하소설 읽기는 내게 큰 도전인 셈이었다.


대하소설은 책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가능하긴 하지만 이런 책들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대출을 해서 대부분 낡은 채로 서가에 꽃혀 있다. 그래서 책을 빌리면  선뜻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 정도로 손때가 많이 묻어 있다. 물론 도서관에 책 소독기가 있긴 하지만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친 책을, 부서질 듯 낡아버린 책을 빌려 읽는 건 내 독서 취향상 결코 타협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다면 소장을 하기 위해 책을 사야 할 것인데 대하소설은 책값이 만만치 않았다. 조정래의 대하소설을 기준으로 보면 10권 세트 값이 15만원을 뛰어넘는데 내가 3종 철인 대하소설이라고 부르는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모두 산다면 조정래 세트만으로 50만원 가량의 책값이 지출되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독서모임을 하는 지인분이 내 얘기를 듣더니 선뜻 자신의 집에 있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세트를 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반색을 하며 지인이 한 번밖에 읽지 않아 새책과 다름없는 <태백산맥>을 빌려왔다. 그리고 이때는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책을 최대한 줄이고 <태백산맥> 읽기에만 거의 몰두했다. 오래 전 영화 남부군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었던 터라 <태백산맥>의 이야기 줄기는 낯설지 않았다. 이 책은 그렇게 길게 이어지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몰입도가 아주 높았다. 그래서 나는 지겨워서 다른 책으로 갈아타는 방법을 취하지 않고서도 완독을 향해 빠르게 나아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태백산맥)은 내게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낡고 고루하고 편협한 생각의 틀을 깨게 했다. 백은 아군이고 흑은 적군이라는 상식적인 틀, 독일 나치나 베트콩은 적군이고 미국은 무조건 아군이라는 기본적인 틀. 거시적으로 그 틀의 큰 가치관은 맞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의 삶은 결코 흑과백으로, 적군과 아군으로만 나눌 수 없었다. 세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개인적이며 미시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누굴 도울 것인가,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실체적인 질문 앞에서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자식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이념을 무시하고, 아군과 적군을 무시하고 무언가를 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하소설은 나에게 역사윤리적인 측면에서 기존의 나를 끄집어내고 전혀 다른 가치관을 나를 재탄생시켰다. 나는 우리나라 역사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태백산맥>을 다 읽고 나자 <아리랑>과 <한강>이 너무 읽고 싶어졌다. 나는 이때부터 당근이라는 앱을 이용해 <아리랑>과 <한강>을 차례로 읽어나갔다. 조정래라는 작가의 늪에 푹 빠졌고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무장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너무 단순하게 우리나라를 인지하고 있었다.



조정래 작가의 3종 대하소설 철인독서를 마치고 나자 처음 작가수업을 받을 때부터 익히 들어왔던 최명희 작가의 <혼불>과 박경리의 <토지>에 눈이 갔다. 최명희 작가의 <혼불>은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공모전 당선 작품이며,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신동아에 연재되고 1996년 한길사에서 10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일제강점기 1930년대와 40년대를 이어가는 근대 사회의 양반과 서민의 삶을 치밀하게 묘사한 작품인데, 작품 자체로는 미완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완성도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묘사는 매우 촘촘했다. 최명희 <혼불>은 새 책을 찾아보기가 어려웠고 중고책이 많이 거래되었다. 그렇지만 중고책도 대부분 오래 전 출판된 책이었고 그마저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키워드 알림에 '최명희'와 '혼불'을 올려놓고 누군가 이 책을 팔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렇게 어렵게 당근 앱을 통해 최명희의 <혼불>을 구해 읽었다. 너무 오래 되어 책의 종이 한 장 한 장이 날카롭고 투박하게 내 손에 느껴졌다. 1990년도에 인쇄된 판본이었는데 거의 30년 전에 출간된 책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등장인물에 대한 세밀한 캐릭터 설정과 이야기 전개는 대하소설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었고 이 역시 근대 사회의 한 단면을 알아가는 소중한 공부가 되었다. 소설 속에서 나를 발견했고 2018년 10권의 소설을 완독하고 나자 나는 내가 조금 더 성장했고, 이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 책을 다시 당근 앱으로 팔았다. 너무 오래되어 보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인데, 이 책도 올리자마자 사려는 사람이 나타나 역시 인기있는 책은 30년된 책이라도 이렇게 계속 돌고 도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박경리 선생의 <토지>에 도전할 차례였다. 오래 전 모 도서관에서 한 권씩빌려와 읽기 시작했는데 6권까지 읽고 중단된 상태다. 그리고 이제 그 도서관도 사라졌고 <토지>를 읽어야 한다면 처음부터 새로 읽어야 한다. 그런데 <토지>는 장장 20권이다. 박경리 선생님의 문학관도 갔다 오고 하면서 <토지>를 읽어야지 하고는 있는데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지난 번처럼 읽다가 중간에 그만 둘 수가 없다. 대하소설은 1권을 잡고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한다. 그래서 힘든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 가운데 해외 대하소설에 도전하는 분도 있다. 해외 대하소설로는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있는데, 이 책의 벽을 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책은 당대 최고의 책으로 거론되기도 하는 위대한 책으로 개인이 1권 <스완네 집으로>부터 도전하기도 하지만 너무 넘사벽이라 1권을 넘기고 2권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내가 읽어보지는 않았으니 그렇다고 들었다고 말하는 게 옳으리라. 그러니까 이 책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도전해야 할 책이다. 그래서 이런 책은 다양한 독서모임에서 일 년 계획을 세우고 도전하기도 한다. 얼마 전 가입한 모 독서모임 밴드에서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겁을 먹고 신청을 하지 못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1906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하여 1922년까지 근 17년 가까이 집필한 책으로 총 7부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민음사에서 꾸준히 펴내기 시작하여 총 13권 세트로 완결 출판하였다. 그 외 다양한 출판사에서 10권, 7권 등으로 출판하고 있다.



최근에 재개정판으로 깨끗한 표지로 재탄생한 민음사판 11권 책이 탐나긴 하지만 새 책으로 사려면 15만원 가량이 든다. 당근이나 알라딘 같은 중고서점에서 저렴하게 판다면 모를까, 이제 퇴직까지 한 마당에 내 경제적 형편으로는 결제하기 힘든 비용이다. 하지만 이 책도 언젠고 읽어야 할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대하소설임에는 분명하다. 아직 읽어내야 할 대하소설이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기쁜 일이다. 한 권씩 사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모든 일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니까. <토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아직 나에게  읽기를 요구하는, 내가 겸손하게 도전장을 내밀어야 하는 책이 있다는 것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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