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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밍버드 Mar 09. 2018

겨울 여행 (feat. 가족)

 다시 가고싶은 가마쿠라와 하코네


아이가 방학을 맞아 서울로 돌아왔지만 엄마 아빠보다 훨씬 더 바쁜 아이랑 이야기 한번 제대로 나눌 틈이 없었다.  자석처럼 주변의 친구들을 끌어 당긴다 했던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말처럼 늘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서운한 엄마 아빠가 아들을 잠시라도 독차지할 수 있는 방법은 언제나처럼 여행 뿐이다. 길지 않은 방학이라 오고 가는 시간도 적게 걸리고 부담없는 곳을 찾다보니 역시 일본이었다.

유난히 날이 춥기도 하여 뜨거운 온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엄마의 의견도 백프로 접수되었다. 그리하여 도쿄에서 이틀 숙박 그 중 하루는 가마쿠라행, 그리고 하코네 2박으로 4박5일의 가벼운 여행으로 결정!


오후 늦게 도쿄에 도착한 첫날 아카사카 숙소 근처에 위치한 영친왕의 옛 사저를 방문했다.  조선왕조 마지막 황태자의 저택이 지금은 티하우스와 레스토랑으로 쓰인다. 힘 없는 나 힘 없는 왕가의 운명이 애달펐다. 씁쓸한 커피로 씁쓸한 마음을 달랬다.



마음을 뒤로하고 현지에 살고 있는 지인의 추천으로 함께 아자부에 있는 도리요시라는 야키도리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맥주와 더불어 야키도리 오마카세가 기분을 확 끌어 올린다.  옆에 있던 아이는 내 맥주잔을 살짝 기웃기웃. 이제 한 잔 마셔도 될 나이가 되었는데 어른들이 있어서 괜시리 빼는 척 하는게 귀엽다. 얼굴은 살짝 따뜻해지는데  끊임없이 앞에 놓여지는 야키도리 정말 맛있다.



밤 바람도 차고 피곤하기도 해서 숙소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하라주쿠에 꼭 가봐야한다는 아이를 따랐다. 구글맵의 지시로 여기 저기 이끌려 이런 저런 신기한 가게들을 다녔다. 충분한 경험치를 얻은 느낌이랄까! 추운 하라주쿠 거리에서 줄 기다렸다가 후후 불며 먹었던 다코야끼가 생각난다.


다음 날은 역사의 도시 가마쿠라행. 오가와 이토의 소설 츠바키문구점의 배경이기도 한 가마쿠라는 늘 한번 가보고싶던 곳이었다. 북적이는 역을 떠나 자그마한 가게들이 늘어선 거리를 지났다. 좋아하는 단 주전부리들을 하나씩 사서 먹어보기도하고 귀여운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들여다 보았다. 아이는 친구들 준다고 작은 파우치를 몇개 샀다. 아마도 여자 사람 친구들을 위한 것이겠거니... 이곳도 시식코너가 있는 가게에는 사람이 몰려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꽤 많았다. 마치 작은 축제라도 열리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절로 관광객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비탈길을 오르고 골목으로 들어서니 거짓말처럼 인적이 드물어지고 푸르름 속에 조용하고 기품있는 가옥들이 늘어서있다. 조용했던 오래전 종로의 한옥 골목길을 연상케하는 골목길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절 가이조지(해장사)가 아름다왔다.


조용하고 조용하다.

색이 입혀지지 않은 나무색 그대로의 건물이 단정하다.

이끼 덮인 돌확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우리 가족밖에 없던 가이조지를 떠나 카마쿠라시가 한눈에 보인다는 하세테라를 들렀다. 가이조지와는 규모도 건물 분위기도 완전히 다른 절이다. 사람들로 가득하다. 빨리 둘러보고 떠나고 싶은 곳이다. 사람없는 사진 한장찍기가 어렵다.

벛꽃이 피면 좀 달라보일까? 이 절의 건물들에서 사람을 밀어내는 배타적인 느낌을 받는 건 나뿐인가?


역으로 돌아와 에노덴을 탔다. 에노시마로 향하는 철길 옆의 바다가 아름다왔다. 좁은 골목길로 운행하는 기차가 신기하다.


한산한 에노시마역에 내려서 바다 위로 길게 이어진 다리를 건너 섬으로 들어갔다. 바닷바람이 너무나 거세고 추워서, 예쁜 가게도 유명하다는 신사도 별 감흥이 없었다. 서둘러 돌아보고 만장일치로 우린 재빨리 가마쿠라로 돌아가는 에노덴에 올랐다.


다음 날 아카사카를 떠나 하코네를 향해 로만스카로 불리는 기차를 탔다. 한시간 남짓 걸려 하코네 유모토 역에서 하차후 료칸 셔틀을 이용해 도노사와에 위치한 칸스이로 료칸에 도착했다. 400여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여관답게 고풍스런 분위기의 운치있는 목조 건물이었다.

간스이로료칸의 로텐부로(노천탕)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히노키 탕에서 홀로 온천을 즐기는 그 맛이란... 행복이 이런게 아닌지. 차가운 바깥 공기와 부딪쳐 탕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에 취할 것 같았다. 방으로 돌아와 보니 남편과 아이는 벌써 각각의 디지탈 기기에 몰입 중.  저녁 6시부터 식사가 시작되었다. 여러 해 전 다른 료칸에서 경험했던 과한 가이세키 정식일까봐 살짝 걱정했었는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정갈하고 맛있는 식사가 만족스러웠다. 매번 음식을 가져올 때마다 무릎꿇고 앉아 설명해주는 오카미상은 언제나 살짝 불편하다.


저녁을 먹고 얼마 지났을까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잠시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한참이 지나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고 동네에 울려 퍼지는 확성기 방송이 몇 번 있었다. 변전소에서 문제가 생겨 고치고 있는데 죄송하다는 내용으로 대략 이해했다. 창 밖을 내려다 보니 가끔씩 지나는 자동차의 불빛이 있을 뿐 완전히 동네가 어둠에 잠겨버렸다. 가벼운 흥분감이 몰려왔다. 와~ 정전이라니. 얼마만이야.  어둠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는 일 뿐... 아이는 인터넷이 안된다고 아우성인데 그 와중에도 남편은 순식간에 잠이 다. 문제는 다다미 방의 온풍기가 정전 때문에 멈추는 바람에 방이 점점 추워지기 시작. 바닥의 요를 모두 붙이고 벽장에서 이불을 더 꺼내어 두겹으로 덮었다. 료칸 옆을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불이 다시 들어 온건 거의 3시간이 지나서였다. 


다음 날은 본격적인 하코네 지역 탐방에 나섰다. 하코네를 둘러 보려면 등산열차, 등산케이블카, 로프웨이, 배, 버스까지 온갖 종류의 탈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 일명 해적선을 타고 아시노코 호수를 건너다 보면 눈덮인 후지산이 아주 가까이 보인다.

하코네 근교에는 관심가는 미술관들이 있었지만 짧은 여행 일정 때문에 비교적 남편과 아이가 지루해하지 않을 인상파 그림들이 많은 폴라미술관을 선택했다. 크지 않은 규모이나  내실있는 미술관이라는 느낌.


라울 뒤피의 그림에 집중하고 있던 노신사에게서  그리운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어둑해진 저녁 다시 료칸으로 돌아와 노천탕에 하루의 피로를 담갔다.

벛꽃피는 봄에 다시 이곳에 오고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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