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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생활 Aug 14. 2021

미운 오리, 날다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다시 쓰는 안데르센 명작-<미운 아기오리>

 아빠 손을 잡고 들어간 그 집에서는 따뜻한 쿠키 냄새가 났어요.

새로 산 원피스 옷자락을 괜히 만지작거리며 발끝만 쳐다봤는데도 나를 보고 있는 세 쌍의 눈이 느껴졌죠.

  "어디 보자, 네가 바로 오리구나."

아줌마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어요. 아줌마는 나와 눈을 맞추려 무릎을 굽혔지만 나는 애써 눈을 피했어요. 얼굴에 피어난 홍조가 부끄러웠거든요.

"인사하렴. 영리 오빠와 일리 언니야."

영리 오빠는 키가 나보다 두 뼘은 컸고 일리 언니는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땋은 모습이 근사했어요.

"와아, 정말 작다."

"머리가 오리 꼬리처럼 삐죽삐죽해."

오빠와 언니는 나를 앞에 두고 동물원 안 원숭이 들여다보듯 쳐다봤어요.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지 내 양볼은 더 빨갛게 익어가기만 했죠. 작고 왜소한 내가 볼품없어 보여서 얼른 집으로 돌아갔으면 했죠.


"오리를 동생처럼 잘 보살펴주렴."

아빠는 친근하게 오빠와 언니의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아빠가 이들과 꽤 친한 것을 보니 아빠는 이전부터 나 없이 이 집을 찾았었나 봐요. 왜인지 서운한 마음이 들어 입술을 오리 입처럼 삐죽 내밀었어요.

철없는 애처럼 굴려던 건 아니에요. 그치만 이 집에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은 아빠뿐인데, 벌써 나보다 이 가족을 좋아하는 것 같아 슬퍼지더군요. 키가 크고 얼굴이 희멀건 아빠는 아줌마와 영리 오빠, 일리 언니와 원래 한 가족이었던 것처럼 잘 어울렸어요.



그날 이후로부터 우리 집에 있던 것들이 하나 둘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아빠가 그 집에 갈 때마다 우리 집의 물건들을 옮기기 시작했던 거죠.

급기야 음식을 떠먹을 식기조차 없어졌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집에 머물 수 없어졌어요.

아빠와 커다란 가방에 짐을 싸들고 그 집에 들어간 날,

아줌마는 이사 기념으로 자장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어요.

자장면을 잘하는 단골 집이 있다며, 나도 분명 좋아할 거라고 했죠.


자장면을 내 앞에 놓아주던 중국집 아줌마는 내 얼굴을 유심히 보며 말했어요.


“어머, 얜 누구야? 조카?”

“아, 오리예요. 이제 우리 가족이 됐어요.”

중국집 아줌마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와 아빠를 번갈아 봤어요.

“아아, 어쩐지. 영리랑 일리랑 하나도 안 닮았다더니.”


언니랑 오빠랑 닮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으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요.

빨갛게 익었을 것이 분명한 얼굴을 보이기 싫어 자장면 그릇에 코를 박고 젓가락질만 했죠.

그러다가 힐끔힐끔 아줌마랑 언니와 오빠를 쳐다봤어요. 나도 아줌마처럼 늘씬했으면 했고, 영리 오빠처럼 키가 컸으면 했고, 일리 언니처럼 근사한 머리를 가졌으면 했어요.


내 머리를 항상 귀밑까지 짧게 잘라주었던 아빠가 원망스러워서 쳐다봤지만 아빠는 아줌마와 집 이야기하느라 바빴죠.



"오리야, 이제부터 여기가 네 방이야."

이 방은 이전에 일리 언니가 쓰던 곳이라고 했어요. 벽 한쪽에는 오빠와 언니가 받은 상장과 트로피, 메달이 전시돼있었어요.


내 가방을 열고 물건들을 하나 둘 꺼내려하는데 안방 쪽에서 아줌마와 일리 언니의 대화가 희미하게 들려왔어요. 그러면 안 되는 건 줄 알면서도 귀가 절로 기울어졌죠. 내 이야기 같았거든요.

“엄마, 내 방 주는 게 어딨어.”

“그래도 네가 언니잖아. 당분간 공부방을 쓰도록 하자.”

“싫어, 오리 가라고 해.”

“얘가 참..”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억울함에 눈물이 차올랐어요. 나도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는걸요.

나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어요. 작은 가방에 내가 아끼는 물건들을 몇 챙겼어요. 내가 나가는 것을 아무도 듣지 못하게 문을 조심히 닫고 나왔어요.


그리고 나는 내가 지금 제일 보고 싶은 사람을 보러 가기로 했어요. 아빠와 이전에 갔던 길을 더듬어봤어요.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 아빠와 함께 탔던 빨간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어요. 조마조마했지만 나는 대견하게도 목적지까지 잘 도착했죠.

오랜만에 보는 것이니,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길가에 핀 꽃을 조금 꺾어서 품에 안고 갔어요.

“엄마.”


엄마가 들어있는 작은 통 옆에 놓인 사진을 보며 엄마에게 인사했어요. 사진 속 엄마는 아빠 옆에 서서 어린 나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었죠. 엄마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내가 누구를 닮았는지 알 수 있었죠. 내 아담한 키, 조금 까무잡잡한 피부에 동글동글한 눈은 엄마를 꼭 닮은 것이었더군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엄마에게 모두 털어놓았어요. 아줌마와 영리 오빠, 일리 언니, 그리고 그 가족과 잘 어울리는 아빠까지… 엄마가 들으면 서운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한참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복도 의자에서 그만 잠이 들어 버렸어요.




엄마는 크고 하얀 날개를 달고 있었어요.

그 날개가 너무 희고 눈부셔서 한 번 만져봐도 되겠냐고 물었죠.

그러자 엄마는 싱긋 웃으며 말했어요.


“오리야, 네 등에도 같은 날개가 있단다.”


그럴 리 없다며 어깻죽지를 펴 보았는데, 그 말이 정말이었어요.


“정말 날개가 있지. 백조처럼 아름다운 날개야.”


나는 훨훨 날개를 달고 엄마랑 어디든지 다니고 싶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엄마는 고개를 저었죠.

나는 새로운 가족은 필요 없다고,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싱긋 웃으며 내 날개를 쓰다듬어줄 뿐이었어요.


“오리야, 새로운 가족들이 너를 사랑해줄 거야.”


하지만 나는 그 가족과 어울리지 않는걸요. 작고 초라한 나를 좋아해 줄 리 없어요.


“아냐. 너는 네 존재만으로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사랑한다, 우리 오리.

오리는 엄마의 가장 사랑스러운 딸이야.”


 엄마는 크고 포근한 날개로 나를 감싸 안아주었죠.


“얘야, 일어나. 괜찮니?”


누군가가 나를 깨웠고, 그제야 나는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알아챘죠. 출입문 쪽을 쳐다보니 어느새 해가 지려는지 하늘이 어둑어둑해져 있었어요. 어두워진 하늘을 보자 마음이 불안했지만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어요.


 아까 꺾어왔던 꽃을 엄마 옆에 두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멀리서 누군가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소리 난 쪽을 돌아보자, 사색이 된 아빠의 얼굴이 보였어요. 아빠는 나를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아무 말 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죠. 아빠 뒤로 달려오는 아줌마와 영리 오빠, 일리 언니의 모습도 흐릿하게 보였어요.

다 같이 밖으로 나서자 지는 해에 늘어진 다섯 명의 그림자가 보였어요. 그림자는 모두 닮아 있어 우리는 꼭 한 가족 같았어요. 아빠와 아줌마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나를 토닥여 주었어요. 그림자 속의 내 어깨 위에 꼭 한 쌍의 날개가 있는 것 같았죠. 그 날개는 한참을 파닥거리며 내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주었어요. 마치 곧 날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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