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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달 May 29. 2019

24. 다친 마음 재정비하기(4부. 의미 부여)

허수아비를 세워 잘못을 떠넘기지 마라

들판 위에 허수아비들이 서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며 볏짚에서 지푸라기가 구석구석 빠졌지만,

주인님이 재빨리 새로운 지푸라기로 채웠기에 모양을 유지했어요.

저는 허수아비의 조종꾼이에요.

허수아비를 통해 세상을 보고 허수아비를 움직일 수도 있기에

언젠가부터 허수아비를 제 자신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때론 다른 허수아비가 다가와 제 허수아비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툭툭 치기도 했어요.

저는 기분이 아주 나빴어요.

저에게 직접 소리 지르거나 때린 것도 아닌데 말이죠.


 사람은 오감을 통해 환경을 인식하고 대처한다. 맹수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주변에 맹수가 있음을 알아차린다. 연기를 보거나 타는 냄새를 맡으면 주변에 불이 났음을 안다. 미리 대처했기에 생존해올 수 있었다.

 울음소리에서는 맹수를, 연기에서는 불을 떠올린다. 사물과 특성을 연결하는 인지능력은 야생에서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자연의 생물은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본성에 따라 행동했다. 생물마다 특징이 같았기에, 사람은 생물종만 파악하면 그 특징도 알 수 있었다. 즉 형태가 같으면 특성도 같았다. 

 형태만을 보고 특징을 파악해서 대응하는 것은 유용한 생존 방식이었다. 고슴도치는 가시를 세우므로 덥석 잡으면 안 되고, 주변에 스컹크가 있다면 자극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독버섯은 비록 아름다웠지만 손도 대지 않았다. 형태만 파악해두면 이런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섣부른 규정으로 단정하지 말 것


 인간 사회에서 형태와 특성을 연결하는 인지능력은 오히려 덫이 되었다. 인간은 더 이상 생존하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 복잡한 인간사회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한다. 그런데도 형태에 특성을 부여하는 본성 때문에, 사람들에게도 특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즉 인격에 특성을 부여한 것이다. “우리 상사는 너무 깐깐해서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야” “내 부하는 희생정신도 없고 열정도 부족해”라며 말이다. 상사나 부하가 행동하게 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나쁜 사람을 창조한다. 그 결과는 뻔하다. 그 사람과 의 반목과 갈등이 기다릴 뿐이다. 형편없는 상사와 부하에 둘러싸여 일한다면 어느 누가 만족할 수 있겠는가. 인간관계의 괴로움은 섣불리 나쁜 사람이라고 규정짓는 데서 비롯된다.


 처음의 이야기에서 허수아비는 인간의 몸을, 들판은 사회를 의미한다. 그리고 볏짚이 빠지고 다시 채워지는 것은 몸의 세포가 호흡, 배설, 각질로 빠져나가는 만큼 음식 섭취를 통해 새로운 세포로 채워지는 자연의 섭리를 의미한다. 또한 조종꾼이 허수아비를 자신이라고 착각했듯, 사람도 자기 몸을 자아라고 생각한다.

 상사가 소리 지르면 당신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녀석이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고요! 정말 고약한 녀석 같으니라고!’ 어떤 허수아비도 조종꾼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아무도 당신의 진정한 자아에게 소리 지르거나 때릴 수 없다. 단지 자아가 조종하는 허수아비에게 한 짓일 뿐이다. 자아가 아닌 허수아비가 그런 짓을 당했을 뿐인데 자아는 분노한다. 허수아비는 주인님 것인데, 자신이 조종하다 보니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 허수아비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비난을 퍼붓는다. 그 허수아비의 조종꾼은 뒤에 숨어 있는데도 말이다.


인과관계는 꿰뚫어 보는 눈을 뜨게 한다


 상대 허수아비의 멱살을 붙잡는 대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원인을 주변에서 찾자. 상대방 행동의 배경을 파악하자. 운전을 예로 들어보자. 앞선 차가 살짝 속도를 줄이면 행렬의 뒤로 갈수록 더욱 느려진다. 행렬 뒤쪽의 초보 운전자는 급정거를 한다. 초보 운전자의 시야에는 앞차밖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당황하며 앞차를 탓한다. 하지만 숙련된 운전자는 교통의 흐름을 파악한다. 앞선 행렬에서 감속이 시작됐음을 알고 미리 감속한다.

급정거가 앞차의 문제가 아님을 안다.

 다른 예도 있다. 강을 건너던 사람이 떠내려온 뗏목과 부딪혀 고통을 느낀다. 평범한 자는 자신을 친 뗏목을 원망한다. 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뗏목은 그저 물결에 떠밀려 왔을 뿐임을 안다. 물살을 거슬러 살펴보고 미리 뗏목을 피한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음을 알며 원인의 원인까지도 꿰뚫어 보는 것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소리 지르는 상사 뒤에 고뇌하는 임원이 있다. 그 뒤에 피가 마르는 사장이 있고 그 뒤로 업계의 불황이 자리한다. 상사가 화낸다고 상사만을 탓하면 곤란하다. 교통의 흐름과 같이, 강물의 흐름과 같이, 인과관계의 흐름을 살펴봐야 한다.

 비난이라는 조명을 비춘다. 예전에는 불투명한 골판지 같은 상사밖에 안 보였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꿰뚫어 본다면, 반투명한 셀로판지가 된다. 비난의 조명이 상사에 머물지 않고 임원, 사장, 업계, 사회까지 뻗어간다. 비난이 분산되는 만큼 원망도 줄어든다. 사소한 일에는 더 이상 발끈하지 않게 되고, 웬만한 일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개인들을 멋대로 묶지 말자


 허수아비 떼가 만연하다. 안타깝게도 한 사람을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간부들은 모두 꽉 막힌 꼰대들이라니까”, “요즘 것들은 열정이 부족하단 말이야”라며 세대로 엮어 비난한다. 하지만 보수적인 신입사원도 있고 열린 CEO도 있는 법이다. 이들은 더 나아가 다른 민족, 종교까지 싸잡아 비난하기도 한다. 단지 일본인이라고 미워할 순 없다. 침략을 정당화하는 무리도 있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

고 봉사하는 선인도 있다. 이슬람교도라는 이유로 폭력적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테러를 하는 무리도 있지만, 지혜로 세상을 밝히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갈등이 있는 한 사람의 인격을 무리의 특징으로 확대시키지 말아야 한다. 갈등의 원인을 인격과 무리에서 찾지 말고, 행위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당신은 숲에 있고, 어디선가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숲 이곳저곳에 마구 화살을 날린다. 하지만 소음은 그치지 않고 오히려 더 커진 느낌이다. 소리를 지르는 원숭이를 찾아내 화살로 명중시키자. 지혜로운 자는 문제의 초점을 잘 맞추는 사람이다. 초점 없이 숲을 향해 아무리 화살을 쏘아봐야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예수는 말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인격에 초점을 맞추면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정치인만 처벌한다고 부정부패가 해결되던가? 김영란법과 같이 문제의 원인 자체를 방지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상사가 횡포를 부린다고 그 상사만 몰아내면 문제가 해결될까? 횡포를 방조하는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횡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 우리 사회는 권력만 쥐면 날뛸 수 있는 시스템이다. 시스템 없이 청렴한 정치인과 선을 넘지 않는 상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분명 당장은 주변 허수아비들이 눈에 거슬릴 것이다. 항상 자신의 이상향에서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공자도 나이 예순에서야‘이순(耳順)’이라 하여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음에 거슬림이 없어졌다고 했다. 공자 같은 성인도 예순은 되어야 걸림이 없을 진대, 상대방의 단점이 눈과 귀에 거슬리지 않을 수는 없다. 자신이 완벽하지 않듯이, 상대방의 불완전함도 너그러이 포용하자.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의 인격에서 찾지 말고 전후좌우 사정을 살피자.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이 있는가? 그 존재는 당신이 세운 허수아비다. 인과관계를 꿰뚫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인드 프로그램의 의미 입력 단계에서 상대방을 1명만 세웠는지, 관계인을 모두 세웠는지 살펴봐야 한다. 한 방향에서만 봤는지, 여러 방향에서 봤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엉뚱한 허수아비를 세워 시야를 막지 않는다면 미워할

대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 편 - 25. 다친 마음 재정비하기(5부.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blog.naver.com/flship/22150021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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