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 속 인사이트
고등학교 2학년 말,
우리 가족은 인천에서 서울로 이사했다.
대입을 앞두고 중요한 시기에 이동한 것도 문제였지만,
학교 시험 기간과 맞물려서 전학대신 이사를 먼저 가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
0교시가 있던 그 시절,
매일 서울에서 인천으로,
인천에서 서울로의 힘든 등하굣길을 드디어 끝맺음했다.
전학 온 학교는 무려 겨울방학 3일 전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몇 가지,
새로운 학교의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마다 자기소개를 시키셔서 자기소개를 하루에 세 번은 했던 것.
그리고 넌 눈빛이 좋으니 그 눈빛으로 책을 읽으라고 해주셨던 어떤 여자 선생님.
하복을 얻으러 교무실에 가니 "불우이웃이니?"라고 묻던 어떤 남자 선생님.
고3이 되었다.
우리 가족이 선택한 여고는 나의 음대 입시에 도움이 되어줄 예체능반이 있는 학교였다.
당시 예체능반은 속된 말로 잡탕이었다.
미술을 하는 학생이 워낙 많아 미술반이 따로 존재했었으나, 우리 반은 체육, 무용, 실용음악, 뮤지컬, 클래식 음악, 연기, 미용, 모델 등 정말 다양한 학생이 모여있었다.
1학기는 어찌어찌 잘 지나간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난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교실에서는 실용음악과를 지망하는 친구가 갑자기 냅다 노래를 부르고,
무용과를 지망하는 친구는 스트레칭도 하고 교실을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체육을 하는 친구들은 솔직히 무섭기도 했다.
잡탕 안에서 한줄기 희망이었던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노트에 음표를 그리고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어머, 너도 작곡해?”라고 먼저 말을 걸어주었던 그 친구.
반에서 클래식을 전공하는 친구가 딱 셋이었는데,
그중 한 친구가 작곡과 지망생이었다.
너무 반갑고 행복했다.
전쟁통 같은 교실에서는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었기에,
우린 담임선생님께 부탁을 드리고 인근 구립도서관에서 수능 공부를 했다.
그리고 20대가 되었다.
고등학교에 수험표를 받으러 온 학생이 많았다.
예체능 전공자들은 재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같은 반 친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작곡하는 친구의 외면이 의아할 정도로 화려해졌다.
그 친구는 재수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작곡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27살, 난 음악 교사가 되었고
그 친구는 회사 몇 군데를 거친 뒤 몇 년 전부터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서로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현재는 교육이라는 공통분모 안에 끈끈함이 살아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남자친구도 아닌데 몇 년째 매일 연락한다.
서로 왜 연락이 없지? 이상하다.. 싶으면 백 프로 카톡을 모르고 읽은 경우이다. 우린 읽은 것조차 모르고 있다.
매일 중요한 얘기를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대부분은 하소연이나 헛소리이다.
헛소리 안에서 인사이트를 얻기도 한다.
그런데 너무 즐겁고 재밌다.
그래서 대화창 나가기를 할 수 없다.
요즘은 너무 바쁜 나머지, 그리고 서로의 남자친구를 만나느라 계속 못 만나고 있다.
아무 때나 만나서 잠깐만 시간을 보내도 좋은 친구.
조만간 시간을 내어 소중한 내 친구와 밥 한 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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