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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gine Apr 06. 2020

동네 산책

걷고 걸었다

나갈까 말까 하다가 나왔다.

해는 이미 다 져있었다.


동네 산책을 제일 많이, 자주 했던 시기는

고3 때였다.

모두가 책상에 앉아있어야 했지만 나는 종종, 아니 꽤 자주 걷곤 했다.

그 이후로도 그때의 걷기가 습관화되어 자주 걷곤 했다.

내 몸은 걷는 행위는 운동으로 쳐주질 않고 숨을 쉬고 내뱉는 호흡 정도의 행위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덕분에(?) 언제나 일정하게 걷는 시간이 필요했고, 걷질 못하면 몸이 괜히 답답했다.

오늘 저녁, 마스크를 껴고서라도 오래된 산책길에 나선건 그 때문이었다.


정확히 몇 킬로가 걸리는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자주 걷는 산책로의 목적지는 어느 학교의 운동장이다.

가는데 한 시간 남짓, 그곳에서 운동장을 여러 바퀴에 또 한 시간 남짓, 그리곤 다시 돌아오는데 한 시간 남짓이 걸린다.

고3 시절 - 대학 신입생 땐 이 산책로를 일주일에 한 번은 가곤 했다.

복잡한 대로를 지나 조용한 주택가가 나오고, 넓은 운동장엔 같은 방향으로 돌아 걷는 사람들이 몇 명. 날씨가 좋을 땐 주변에 둘러앉아 있는 사람 몇 명.


그냥 그런 분위기 자체가 맘에 많이 들었다.

심지어 어떨 땐 운동장에 도착해 열 바퀴 내내 뛴 적도 있었다.


익숙한 길인데 정말 오랜만이었다. 가는 방향에서 좌측에 있던 상가는 곧 리모델링을 한다고 했고, 오른쪽에 보이던 곳은 어느새 아파트가 뚝딱 지어져 있었다.


예상은 했으나 운동장 쪽 출입문은 외부인 출입을 통제한다는 현수막과 함께 굳게 문이 닫혀있었다. 하는 수 없이 학교 주변을 크게 두어 바퀴 돌다가, 처음 가보는 주택단지 골목으로 들어갔다. 주택단지가 끝나갈 무렵엔 어린이 시설이 있었고, 그 옆 계단으로 올라가자 아파트 단지와 또 주택단지.

골목이라 하기엔 길이 넓은 편이었고, 거주지가 밀집되어있다고 하지만 굉장히 조용했다.

목적지 없이 걷고 있지만 길을 헤매진 않았다. 대충 방향을 계산해 몸을 돌려 걸으니 아까 빙 둘러 걷던 학교 담벼락이 나왔기 때문이다.



걸으면서는 팟캐스트에서 비 매거진 채널을 들었는데, 특정 직업과 관련한 이야기가 그 주제였고, 방송의 대부분은 책에 나와있을 인터뷰가 흘러나오는 구성이었다.

처음 시작에, '빛과 선으로 삶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소개와 함께 나왔다.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중 다음의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주는 구간을 세네 번 돌려 들으며 계속 걸었다.


질문

'다른 직업을 가질 기회가 있다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은 가요'

대답

'살아오면서 제가 가진 선택지는 모두 경험해봤다고 생각합니다. 건축 이외에도, 가끔씩 글을 쓰고 있고, 사진과 디자인도 병행하고 있으니까요. ... 제가 원하는 것 중에 시도해보지 않은 게 있는지 모르겠어요.'



골목 탐험을 멈추고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걸었다.

지나왔던 밝고 북적한 대로를 지나쳐야 하는데, 어두운 곳에서 오래 걸었던 지라 그 불빛들에 금세 피로가 몰려왔다.

모두가 마스크를 껴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그들의 눈 빛이 두드러져 보이는데 누군가는 이제야 밝아진 것 같아 보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처럼 좀 피곤한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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