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좇는다

20세기의 X파일은 막을 내리고

by XX





'멀더, 나예요.'

'스컬리, 어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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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 둘의 레퍼토리는 이토록 변하지 않았는지.



그 옛날 kbs에서는 독립영화관과 X파일을 방영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병적으로 잠을 늦게자던 내 버릇이 유일하게 빛을 발하던 순간이었다. 이 보석 같은 프로그램들을 발견하게 된 것이.


독립영화관은 새벽 1시쯤에 시작했던 것 같다.


내 기억의 독립영화관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어찌 됐든 난 독립영화관을 늘 몽롱한 상태에서 꿈꾸듯이 봤다. 불면증의 이유로 나는 병적으로 잠을 늦게 자던 게 아니었다. 그냥 자기 싫었기 때문에, 그래서 쇳덩어리가 내려앉듯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나에게 달려들던 이 '잠'이라는 것에 정복을 당한 것도 아닌, 그렇다고 내 몸을 온전히 지켜낸 것도 아닌 상태에서 정신없이 난 독립영화관을 본 셈이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독립영화관의 단편영화들이 더 무섭고 악몽같이 다가왔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또 하나는 X파일. 사실 월요일에 했는지 화요일에 했는지 금요일에 했는지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이 셋 중에 하나는 맞는 것 같은데. 독립영화관이 금요일이었나.


X파일은 내가 최초로 본 미드였다. 지금은 너무나 유치한, 음산하게 깔리는 오프닝은 그러나 X파일의 '진실은 저 너머에'의 마법에 빠지는 입구와도 같았다. 뭔가 특별한 게 있었다.


음울했지만 유쾌했고 멀더와 스컬리는 정상인이었지만 또한 미친놈들이었다. 아마 트윈픽스를 먼저 봤다면 내 최초의 미드는 달라져 있을 테고, X파일 대신 트윈픽스가 이 글의 주제가 되었겠지만 사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트윈픽스는 결코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쉬운 드라마는 아니었다.


데이빗 린치의 작품들의 세계관은 매우 자의식이 강하다. 너무 강해서 자의식 과잉으로 비칠 정도로 그의 세계관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집어삼킨다. 결국 캐릭터가 극을 이끌어 가기보다는 이끌려가는 편이고, 때문에 캐릭터들은 전혀 수동적이지 않지만 수동적 상태로 남게 된다. 이 세계관에 익숙해지려면 감상하는 사람 자체가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


X파일은 스컬리와 멀더의 투맨 쇼와도 같다. 시나리오의 참신함도 멀더와 스컬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트윈픽스와 다르게 멀더와 스컬리가 X파일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들의 캐릭터는 상당히 역동적이고 입체적이다. 막힌 벽을 뚫고 나간다는 느낌이 정확하겠다. 트윈픽스가 견고하게 벽을 만들어가는 느낌이라면. 그래서 '트윈픽스가 있기에 X파일도 존재할 수 있었다'라는 말이 있는데도 불구 감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X파일이 훨씬 산뜻하다. 그리고 이건 순전히 멀더와 스컬리 덕분이다.


사실, 음모론도, 외계인의 이야기도 난 관심이 없었다. 동료 이상 연인 이하, 남녀관계의 에로틱함을 이렇게도 미묘하게 보여준 스컬리와 멀더의 관계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하면 맞겠다.


질리안 앤더슨은 애초 제작진이 설정했던 스컬리 역할을 맡기에는 너무 딱딱했다고 한다. 이들은 좀 더 섹스어필을 하는 스컬리를 원했지만 어찌 됐든 질리안 앤더슨이 스컬리가 됐고 제작진은 멀더와 스컬리와의 관계를 아마 다시 만들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탄생한 멀더와 스컬리는 동료관계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식이 아닌, 동료라고 하기에는 너무 끈적하고 연인이라고 하기에는 냉랭한 관계로 바뀌었다.


오히려 이런 점에 쉬퍼들은 열광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여지를 만들어두면 어느 상황에서건 변형이 가능하다. 더불어 멀더와 스컬리라는 인물들 자체의 매력 또한 여기에 한몫했다.


멀더는 늘 혼자 행동한다. 누군가를 믿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믿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능청스럽고 엉뚱하지만 매우 예리하다. 스컬리와 첫 만남에서도 그는 스컬리를 경계하지 않는다. 사실 그는 스컬리를 경계했다. 신뢰도 없었다. 오랫동안 남들이 이해하지 않는 초자연적 현상에 매달려온 멀더 입장에서는 스컬리는 그냥 잠시 있다가 곧 떠나갈 사람이었고, 표면적으로 잠시 동안 파트너 행세를 할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견해와 늘 대치하는데도 불구 모든 것을 정면으로 맞서는 스컬리를 보며 멀더는 생각을 바꾼다. '이 여자는 '나'와 다르지만 적어도 자신이 보고 믿는 것에 대한 신념에 관해서는 '나'와 같구나'라고.


멀더는 이기적이다. 유아적이며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다. 때로는 스컬리의 희생을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당신은 분하지도 않아요? 혹은 당신을 이렇게 만든 게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스컬리가 가지 않으면 그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는 듯이 화를 낸다. 마치 아들이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는 것처럼 그는 세상에서 고립되어 있지만 또한 믿을 사람은 스컬리뿐이기에, 스컬리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으면 '어쩌면 당신이 이럴 수 있어.' 이런 식이다.


스컬리는 굳이 들춰낼 필요 없는 것들에 접근을 해서 자기 자신을 궁지로 몰아가는 멀더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스컬리는 멀더를 버릴 수 없다. 포기하려다가도 다시 돌아오게 된다. 엘리트적인 삶을 살아온(멀더도 엘리트적인 삶을 살아왔지만 여기서의 의미는 전반적인 삶의 환경을 말한다) 스컬리는 X파일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하게 되는 인물인데, 이 때문에 고지식하고 답답한 스컬리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게 아닌가 싶다. 이성적이고 철저하지만 스컬리는 절대 강하지 않다. 오컬트에 심취하는 멀더이지만 오히려 그는 매우 강하다. 그는 자신이 허용할 수 있는 선을 만들어놓고 그 외의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스컬리는 방어벽이 없다. 때문에 깊숙하게 빠져들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 붉은 문신이나 불타는 심장 에피소드를 보면 이런 점이 잘 드러나 있다.


멀더와 스컬리의 이런 공식은 듀코브니가 하차하면서 깨지게 된다. 그리고 제작진들이 계획한 시즌을 다 채우지 못하고 종영.


듀코브니는 흑백 화면의 멀더와 스컬리가 춤을 추는 것으로 X파일이 끝나는 결말을 생각했었다고 한다. 듀코브니의 취향이 매우 반영된 결말이지만 사실 난 이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음모론이나 외계인 에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나는 좀 더 가벼운 오컬트 관련 에피에 더 열광했기 때문에. 그리고 X파일의 매력은 심각한 듯, 심각하지 않은, 음울하지만 유쾌한 점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다가오는 종말을 기다리며 흑백으로 변한 화면 속에서 우울하지만 유쾌하게 춤을 추는 멀더와 스컬리를 가끔 상상하곤 한다.


20세기의 X파일이란 무엇일까. 20세기라는 단어에 큰 의미는 없다. 다만 20세기의 X파일이라고 하면 그냥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는 21세기에 살고 있고 X파일 또한 쉬지 않고 21세기형 X파일 영화를 만들어냈다. 조금은 나이 들고 지친 멀더와 스컬리이지만 여전하다.


그래도 촌스러운 롱코트를 휘날리는 그때의 멀더와 스컬리를 우리는 잊을 수 없다. 20세기의 X파일은 막을 내렸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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