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좇는다

25시 (2003)

by XX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25시는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 그 자체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절망, 분노, 그리고 현실도피,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눈을 떴을 때, '나'는 여전히 현실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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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밀매범인 몬티에게 이제 허용되는 시간은 단 하루뿐이다. 집안에 숨긴 마약이 발각되어 검거된 몬티는 보석으로 풀어준 아버지 덕분에 일주일간의 자유를 가지게 되지만, 그것도 내일이면 끝이다. 앞으로의 7년 동안의 수감생활이 그에게는 지옥과도 같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노와 절망으로 괴로워하는 몬티는 아버지의 바에서 아버지와 마주 앉아 담담하게 식사를 한다. 그저 그런 추억뿐인 이야기들을 나누고, '모든 게 나의 탓이다'라고 자책하는 아버지를 몬티는 만류한다. '술을 끊었어야 했는데, 전부 내 탓이야.'를 반복하는 아버지가 몬티는 답답하고 안타깝다.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이런 후회는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몬티는 잠시 동안 자리를 비우고 화장실을 들어간다. 한참 동안 거울을 바라보던 몬티의 시선이 거울의 표면에 씌어진 FUCK YOU! 에 멈춘다. 그래, 엿 먹을 이 좆같은 세상! 비열하고 더러운 것들, 다 너희들 때문이다! 이 쓰레기 자식들! 거울 속의 몬티는 절망하고 분노한다. 돈이나 구걸하는 거지들, 시크교도와 파키스탄 놈들, 호모 놈들, 한국인들, 러시아 놈들, 유태인 놈들, 윌 스트리트 브로커 놈들, 푸에르토리코 놈들, 도미니카 놈들, 벤슨허스트의 이태리 놈들, 북동부에 사는 여편네들, 빈민가 흑인 놈들, 썩은 경찰 놈들, 신부 놈들, 교회들, 예수, 오사마 빈 라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모두, 모두, 엿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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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의 친구 제이콥 엘린스키도, 나의 또 다른 친구 프랭크 슬래터리도, 내 여자 친구 내츄렐도, 내 아버지도 재수 없어, 이 썩어 문드러진 도시도, 모든 것들을 향해, FUCK YOU


몬티의 분노는 매우 추상적이다. 깊이가 없다. 그의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것들은 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리고 그의 분노의 대상의 범위가 나중에 이르러서는 그의 주변인들로 좁아진다. 오래된 친구들도, 동거하는 여자 친구에게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주 앉아 담담하게 식사를 하던 아버지까지도. '그래, 당신이 술만 진탕 마시지 않았다면,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마약을 팔지 않았을 테고, 난 변호사가 됐을지도 모르지.' 몬티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게 당신들 탓이야.




하지만 몬티는 곧 생각한다. 모든 걸 남의 탓으로 돌리는 너 자신이 사실은 좆같은 새끼야.





25시에서 비춰지는 뉴욕은 폐허 그 자체다. 어둡고 삭막하다. 한 줌의 재로 변한 그라운드 제로를 내려다보는 씬에서 우리들은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모든 게 엉망이 된 뉴욕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은 분노를 깊이 들이마신다. 하지만 누구에게 이 분노를 표출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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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오티스빌 형무소에서 7년을 썩게 될 몬티가 가지는 불안정한 불안과 불신은 전염병처럼 주위에 퍼져있다. 경찰에게 자신의 범행사실을 밀고한 사람이 여자 친구 내츄렐이라는 소문에 몬티는 괴로워한다. 몬티의 친구들-제이콥과 프랭크-도 몬티의 상황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몬티가 없는 곳에서 프랭크는 몬티를 이제 더 이상 만날 일이 없는 친구라고 말함과 동시에, 몬티의 가치를 0으로 매긴다. 암울한 전과자의 미래, 어떤 등급으로도 더 이상 가능성이 없는 가치 절하의 상품인 셈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제이콥은 프랭크의 말에 반박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제이콥에겐 몬티의 상황보다,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에 대한 성적 호기심에 더 흥미를 느끼고 있다. 모두가 몬티의 상황에 위로를 던지지만 아무도 그를 대신할 수는 없다. 몬티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고, 분노를 거울을 향해 쏟아붓고, 몬티의 주위 사람들은 어딘가 삐뚤어져 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굳이 9.11 사태가 일어난 뉴욕 한 복판이 아니더라도 이 불안한 속성은 어디에서든지 깊숙이 우리의 삶에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25시라는 허상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다. 일어나거나 혹은 일어나지 않거나, 이미 일어난 후이거나 상황은 매우 여러 가지가 공존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은 절대 우리가 원하는 결말을 얻을 수는 없을 거라는 점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몬티가 뭔가 모종의 일을 꾸미고 있음을, 상황을 통해서 대사를 통해서 은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24시간이 지난 후, 엉망이 된 몰골의 몬티를 태운 아버지의 차는 계속 달린다. 어느새 얻어터지고 피멍이 들어있던 몬티의 얼굴도 멀끔해진다. 차의 한켠에 꽂혀있는 빳빳한 성조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이 길의 어딘가, 끝까지 달리게 되면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에 도착하게 되고, 곧 어느 마을에 몬티는 정착하게 된다. 아무도 그를 모르는 곳에서 그는 다시 시작한다. 마약 같은 것은 잊고 부지런히 일한다. 그리고 곧 내츄렐과 다시 만나게 되고 자식을 낳고 손자 손녀들과 함께, 한 때의 일들을 추억처럼 되새긴다. 행복한 엔딩이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우리가 원하는 결말을 얻을 수가 없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허무맹랑한 해피엔딩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성적이며, 꼬이고 뒤틀린 현실세계에서는 오지 않을 미래이다.


여전히 엉망인 몰골의 몬티는 차창 밖을 쳐다봤을 때, 환상을 본다. 거울 속의 그가 분노를 퍼부었던 대상들. 그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몬티 또한 그들에게 손을 흔든다. 25시의 허상은 아주 잠깐 몬티를 스쳐 지나간다. 분노와 적대감은 사라질 수 없고, 어긋난 관계가 다시 회복되기에는 돌이킬 수가 없다. 몬티가 아무리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후회해도 옛날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뒤틀릴 대로 뒤틀려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몬티의 미래는 흡사 우리들의 미래와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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