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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llow Jan 07. 2018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남성들을 위한 페미니즘 소설

필자는 스스로 페미니스트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사상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두 명의 누나가 있고, 내가 막내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런 것들은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즉, 여성 차별에 대한 나의 생각은 철저히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출발했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라 자칭할 수 없다. 그래도 남중, 남고 혹은 형제들 밖에 없는 친구들 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이 당하고 있는 부당한 차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고 자부해왔다.  


그래서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 이해 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일상 속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차별적 언어, 부당한 대우, 성범죄에 대한 공포 등 이 책에서 다뤄진 모든 이야기들은 현실이다. 통계적인 수치에는 담기지 못하는 우리나라 여성의 실제 삶에 대한 토로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소설이라기 보다 김지영 씨의 에세이에 가깝다.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김지영 씨의 어머니가 된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끝을 꾹 밟고 선 작지만 묵직하고 굳건한 돌덩이. 김지영 씨는 그런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고, 왠지 슬펐다. 어머니는 김지영 씨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너저분하게 흐트러진 딸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다정하게 넘겨 주었다.


최근 국내에 인터넷 상에서 성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있다. '일베'를 중심으로 여성 비하적 인터넷 용어들이 통용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대한 반대 급부로 '메갈리아'가 탄생했다. 그리고 또다시 '메갈'이라는 단어는 맘에 들지 않는 발언을 하는 여성을 통칭하는 말로 변모되어 남성 커뮤니티에서 쓰이고 있다. 그들은 서로의 모순점이나 우스꽝스러운 부분을 찾아 비난하는 소모적 분풀이만 하고 있을 뿐, 그 어떤 생산적인 결과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 대해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 책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이러한 무의미한 갈등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책으로 '이갈리아의 딸들' (1977, 게르드 브란튼베르크)이 있다. 이 책은 '메갈리아'의 어원이 된 책이다. 남성 독자로서 두 책을 비교해보자면, 이갈라의 딸들은 여성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82년생 김지영은 남성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전자는 남녀의 상황을 뒤집어 놓은 가상의 세계를 통해 뿌리깊은 차별에 대해 비판했다. 그 과정에서 쌓인 분노를 표출하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후자는 담담하게 김지영씨의 삶을 풀어 놓고 있다. 현재의 성 갈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성들의 분노와 그 안에 내제된 부당한 경험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서술방식이 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대채로 합리적이고 멀쩡한 태도를 유지하는 남자도, 심지어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에 대해서도, 저렇게 막말을 하는구나. 나는, 씹다 버린 껌이구나.


서술 방식 이외에도 이 책은 남성에게 반면교사로서 작용할 수 있다. 내 스스로 여성의 삶을 겪어본 것이 아니기에, 지극히 이기적인 한 인간이기에, 필자는 완벽하게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너무나도 평범한 동시에 너무나도 치졸하다. 여성에게 취하는 태도는 더없이 부당하고 부적절하지만, 나는 저렇지 않을까 되돌아보게 될 정도로 평범한 인물이다. 안나 하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이런 것일까.


'김치녀', '메갈', '꼴페미', '여혐', '한남' 등 성 갈등적 신조어가 계속해서 생겨나고 인터넷 상 '이성 혐오'는 극에 달하고 있다. 어쩌면 이 갈등을 풀 수 있는건 논리나 주장이 아닌 작은 공감이 아닐까. 그렇기에 이 책이 더 가치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표지 이미지 출처: 책 끝을 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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