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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리 Apr 18. 2020

09.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너와 함께라면  

동아리 동기 여행 (2) 


둘째날 일정은 주전 해안도로를 따라 바다를 구경한 뒤, 경주로 가서 관광을 하는 것이었다. 간단히 아점을 먹고, 간식거리를 쌌다. 오늘은 우리끼리만 놀러 다니는데 3명씩 나누자니, 뒷좌석이 쓸쓸할 것 같아서 4 : 2로 나누었다. 첫번째 차는 C가 운전, 나는 조수석, 친구 둘이 뒷좌석에 앉았고, 두번째 차에 '10년 커플'이 타고 다니기로 하였다.  


광복절 즈음의 여름 막바지 무렵. 날씨는 많이 덥지는 않았으나 구름이 끼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주전 몽돌해변에서 바다를 보는 것이 첫번째 일정이었으나, 어제처럼 바람이 너무 분다. 옷도 머리카락도 주체를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간신히 몇 장 사진을 찍었지만, 바람에 옷이 뜨고 머리카락이 날리고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우리들은 셀카 및 단체 사진을 많이 찍었다. 주로 C와 나는 찍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친구들은 찍히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러다보니 매번 단체 사진에 C가 없어, C가 있는 버전으로 찍은 것이 아래 사진이다. 



라이언이 나, 튜브가 C 이다. ⓒ과거 사진첩
이 사진에는 함정이 있다. 그땐 미처 몰랐지만, 나중에 여행을 곱씹어 보다가 발견하게 된 것.
아마도 다음 이야기에 나올 것이다. To Be Continued...


단체사진을 남기고 우리는 경주로 향했다. 커피에 길들여진 직장인들이므로(나는 못 마시지만), 일단 커피숍에 가서 카페인 충전을 하고 난 뒤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다음 목적지는 불국사. 나는 초등학교 소풍 때 자주 온 곳이지만, 수학여행 때에서야 와봤다는 친구도 있었다. 서로의 기억과 추억이 다르게 있었던 곳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마도 20대 마지막이 될 추억을 새겼다. 저엉말 사진을 많이 찍었다. (이 친구들이 셀카 장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한 친구가 즉석카메라를 가져와 기념 사진을 하나씩 찍어주었다. 커플은 둘이 같이 찍고, 다들 인 당 하나씩 찍는데, 내 차례가 되자 친구들이 옆에 C를 붙인다. 둘이 같이 찍으라고 한다. 사진은 하나인데? 누가 가지라고? 흠... 얼결에 일단 찍었다. 둘이 얼굴을 보면서 괜히 민망해했다. 그래도 찍어야지 사진은. 




폴라로이드 사진은 보이지 않고, 당시 옆에서 친구가 DSLR로 찍어준 사진.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과거 사진첩



사진만 찍었는데도 시간이 훌쩍 갔다. 다음 코스는 경주 유적지가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첨성대, 고분군, 석빙고 등. 초등학교때 소풍으로 경주에 자주 왔었는데, 항상 코스에 첨성대가 있었지만 그것은 버스타고 주변을 한바퀴 돌아서 반월성(석빙고)로 가는 길이었을 뿐이었다. 그 주변은 언제나 휑했고, 모래밭이었고, 낮은 울타리가 쳐져 있었는데, 거의 15년여만에 다시 온 경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주변이 전부 공원이었다. 그리고 버스로 이동하느라 몰랐지만, 그 유적지들이 다 걸어서 이동 가능한 거리였다니. 새로운 충격이었다. 마치 서울 지하철 정류장이 무척 많지만, 실은 광화문-시청-종로-명동 모두 걸어서 이동 가능한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어느덧 해질 때가 되어, 안압지(지금은 동궁과 월지 라고 되어있다) 야경을 보러 들어갔다. 어릴 때 경주에 자주 왔지만 처음 보는 풍경. 진짜 여행 온 느낌이 났다. 연못을 중심으로 한바퀴 돌면 되는 코스인데, 수다를 떨며 사진을 찍으며 이곳을 한바퀴 돌았다. 얘기를 하다보니 주로 C와 함께. 이번 여행 6명 멤버가, 커플, 여자 2명은 둘이 베프, 그리고 나와 C 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둘둘둘씩 짝지어 다녔다. 



없던 스윗함도 절로 올라오게 하는 풍경 ⓒ과거 사진첩



멋진 풍경을 감탄하면서 보고 있는데, C가 갑자기 "잠깐만" 한다. 이렇게 멋진 광경을 엄마도 보면 좋을텐데 하면서 집에 영상 통화를 걸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 야경들을 보여주면서 너무 멋지다며, 나중에 엄마 아빠랑 같이 오자고 말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두 가지 포인트를 깨달았다. 하나는 나는 야경을 보면서 부모님께 감동을 공유할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고(물론 부모님이 나보다 더 잘 구경하고 다니시는 건 함정), 두번째는 이렇게 스윗한 아들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에서 놀랐다. 세상에 너의 자상함은 어디까지 인거니... 






안압지 구경을 다 하고 나서 차 있는 곳으로 걸어오는데 하늘이 맑았다. 밤은 어두워지고, 하늘은 맑고, 별사진 찍기 딱 좋고. C의 촬영 욕구가 꿈틀거렸다. 그는 일주 사진(별의 움직임을 찍은 사진)을 취미로 찍는다. 단순 취미가 아니라 덕후 수준이다. 그는 천문우주학을 전공하고, 천문 동아리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별쟁이 덕력의 끝판왕이다. 그는 프로보다는 아마추어 쪽이 더 잘 맞아서 진로를 접고, 취미로 활동한다. 틈만 나면 맑은 날 밖을 돌아다닌다.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두어시간 정도 별을 찍는다. 그런 그의 눈 앞에 초록의 나무와 별이 함께 있었다.


그냥 가기 아쉬웠던 그는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1시간만 별 찍고 가면 안 되냐고. 그의 그런 스타일을 익히 아는 친구들은 근처 황남빵 집에 가서 먹고 놀테니 다 찍으면 연락하라고 한다. 나는? 당연히 그의 옆이다. 이건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동아리에서 관측회를 가도, 어느 시점부터는 다들 술 마시고 노는데 그와 나는 밖에서 망원경으로 별을 보거나 사진을 찍었다. 별 보러 왔으니 별을 봐야지 하면서. 옛날부터 그랬기에 너무 당연하게 나도 먹는 것 보다는 별을 보는 것에 합류했고, 그렇게 첨성대 근처 풀밭에 그와 함께 앉았다. 그리고 어쩌면 둘만 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친구들도 일부러 그렇게 배려해 준 것인지도 모른다.




선선한 여름 밤. 초록이 빛을 발하고 별이 반짝이고, 주변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그런 날이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좋다. 부지런히 카메라 세팅하고 별만 바라보고 있는 그의 등을 보면서, 참 좋다는 것을 느꼈다. 참 편하고 좋은 사람. 이런 순간이 앞으로도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너와 함께한다면? 


그동안 문득 떠올랐다가 사라졌던 생각들이 연결고리가 생겨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잠깐 설렘을 줬던 순간, 키스를 하면 어떨까 고민했던 순간, 취미가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 순간, 이상형을 정리할 때 깨달은 순간, 선물을 받고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면서 행복했던 순간이 모여 마음을 만들고 있었다. 아, 그를 좋아하는 건가? 좋아해도 될까? 우리의 10여년 친구사이는 어떻게 되는거지? 이래도 될까? 그의 마음은 어떨까? 



또 앞서 나가는 머릿속의 생각의 끈을 붙잡으며 일단 현실을 즐기기로 했다.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서울 가서 생각하고, 지금 경주 여기에서 만큼은 그냥 즐기자. 40여분 정도 사진을 찍으며 대화를 나눴다. 어린 시절, 각자 언제부터 별을 좋아하게 됐는지를.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세일러문을 보면서 달을 처음 관찰하기 시작했고, 그는 5살 때 과학책을 보면서 별을 꿈꿨다고 했다. 그리고 울산에서, 인천에서 각자 커오면서 경험했던 별과 관련한 에피소드들을 얘기하다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갔다. 좋아하는 것이 같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그와는 시간이 주어지는대로 끊임 없이 즐겁게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구름이 점점 끼고 있었고, 하늘에 던지고 노는 야광 장난감이 자꾸 카메라 프레임에 잡혀서 사진은 이만 접기로 하였다. 그는 별로 좋은 사진이 나올거 같지 않다고 하였다. 



울산으로 돌아오는 길, 어두운 국도를 지나면서 나는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쏟아지는 별, 존재감이 느껴지는 은하수.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코를 막았지만 그걸 뚫고 느껴지는 별빛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일단은 확실해졌다. 

앞으로 그가 점점 더 좋아질 것 같다는 것이.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베스트 프렌드 라는 존재감이 더 크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






망해버린 일주와 야광 장난감의 흔적. 그리고 사진 찍는 그를 찍은 나 ⓒ과거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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