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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리 Dec 25. 2020

셀프 웨딩 준비하기 - 식장 꾸미기 (기획)

41층에 있는 세븐 스프링스(현재는 빕스로 바뀐듯하다)를 통째로 빌린 우리는, 이제 이 공간을 어떻게 꾸미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단계에 왔다. 웨딩 디렉터와 계약을 맺지 못하여 모든 것을 셀프로 해야 했기에, 손이 많이 가는 꾸밈은 최소한으로 하여 공간 배치를 구상했다. 


한 층을 통째로 쓰기 때문에 한 바퀴 돌 수 있는 ㅁ 자 구조였다. 처음에 버진 로드를 어느 복도에 둘 것인지부터 고민했다. 예식은 오후에 진행되는데, 그때 해가 어느 방향으로 가서 빛이 들어오는지, 어디 쪽이 하객 테이블을 배치하기가 수월한지, 어느 방향의 끝에 우리가 서 있는 게 좋을지 등등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그리고 손님들이 들어왔을 때 동선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되 헷갈리지 않도록 공간을 짜야했다. 그렇게 머리를 잔뜩 굴린 끝에 우리는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다. 



전체 ㅁ자 구조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PPT로 대략 정리해보았다. 안에 회색 바탕 ㅁ은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복도다. 



일단,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보이는 양쪽 입구 중, 한쪽은 막기로 하였다. 혹시라도 뒤로 가서 한 바퀴를 돌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예식 당일 아예 화환으로 막아버렸다. 사실 활짝 열려 있는 입구로 들어오면 정면에 우리가 보일 것이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입구로 들어오면, 양쪽에 각각 부모님들께서 손님 인사 및 맞이를 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사진으로 꾸며진 복도를 지나, 정면에는 포토월을 등지고 선 부부가 손님들을 맞이하고 기념사진을 찍을 계획이다. 


애초에 신부대기실을 따로 꾸밀 공간도 없거니와 나는 나도 적극적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싶었다. 대기실에 얌전히 앉아서 인사하고 사진 찍는 건 나랑 안 맞았다. 그리고 우리는 10여 년을 함께해 온 사이라서 지인이 대부분 겹쳤기 때문에 신랑도 같이 사진을 찍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이 계획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 함정은 따로 있었지만, 어쨌든 그런 원대한(?) 계획으로 우리는 포토월을 준비하고 공간을 구성했다.



위 이미지에 '본식 진행' 부분만 따로 확대해서 표현하면 이와 같다. 



자연스럽게 옆으로 이어지는 복도는 버진로드가 되었다. 이 길의 끝에는 예식 하는 공간임을 알리는 예식대나 어떤 표식(?)이 필요했다. 기존에 이곳에서 결혼했던 사람들의 사진을 참고 삼아 우리가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을 고민하였다. 한참의 고민의 끝에 우리는 별도의 예식대를 두지 않고 뒷 공간만 가리기로 하였다. 여러모로 예식대를 만드는 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븐 스프링스의 테이블을 활용하자니 너무 식탁이었고, 아예 새로운 걸 가져오자니 그건 우리에게 부담이었다. (아, 정말 최대한 쉽게 가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정면에서 봤을 때, 결혼식 같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뒷 배경을 가리고, 가린 곳을 심플하게 꾸미기로 했다. 그렇게 흰 천으로 커튼처럼 너머를 가리고, 그 위에 리스를 달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C는 고터와 양재 꽃시장을 샅샅이 뒤졌고, 한참을 고생한 끝에 우리가 원하는 느낌의 리스를 사 오는 데 성공했다. 



요렇게. 별도 예식대 없이 우리는 서서 진행했다. 스크린은 오프닝 영상을 위해 준비한 것. ⓒ과거 사진첩



기본 형태는 이와 같이 잡았는데, 이제 남아 있는 넓디넓은 식사 공간을 어떻게 꾸미느냐가 관건이었다. 대부분의 결혼식들이 '꽃'으로 이 공간을 장식하고 꾸민다. 그런데 우리는 그 꽃을 절정으로 모아 놓은 버진로드와 예식대를 간단히 꾸미기로 했기 때문에 나머지가 화려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꽃'을 세팅한다는 건 정말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거라, 우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여러 탐색 끝에 우리는 '화분'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꾸미기로 했다.


세븐 스프링스의 인테리어 자체가 초록초록, 나무나무한 느낌이었던 데다가 화분을 하객들께 선물로 드리면 반응이 좋다는 후기들을 보았기에 적격일 것 같았다. 친환경에다가, 있는 그대로 준비한 뒤 선물하면 되는 심플함. 아, 이것이다!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든 테이블에 작은 꽃화분을 두기로 하였고, 버진로드 또한 심플하게 화분으로 꾸미기로 하였다. 


다만, 3월 중순 결혼인 관계로 C가 2월부터 꽃시장을 드나들었는데 그때는 꽃 화분 종류가 몇 개 없어 간신히 구했다는 슬픈 고생담이 있을 뿐이다. 꽃피기 시작하는 3월에 결혼하자~ 하고 날짜를 잡았는데, 막상 준비를 하려니 그때도 추운 계절이었다는 걸 당시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괜히 5월이 최고인 게 아니다...


기본적인 공간 배치를 끝내고, 한쪽 구석.. 평소에는 룸으로 단체 손님을 맞이했을 공간을 우리는 사진전을 여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3면이 막혀 있고 내부 인테리어는 벽돌로 되어 있어 잘만 꾸미면 괜찮을 것 같았다. 이제 고민은 사진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로 넘어왔다. 



과거 사진도, 연애하며 같이 찍은 사진도, 풍경을 찍은 사진도 우리에겐 많았다. 이것들을 어떤 기준으로 고르고, 어떤 기준으로 전시할지가 새로운 관건이었다. 숱한 사진의 바닷속에서 우리는 고민, 또 고민했다. 


사진 배치는 크게 3종류로 구분하였다. 입구에서 포토월까지 걸어오는 동안에 복도에 있는 원목 프레임에 걸 큰 사진(액자)들이 하나, 사진전을 여는 공간 속에 테이블 위에 올려둘 보통 사이즈 사진(액자)들이 둘, 마지막으로 벽에 띠 형태로 붙일 수많은 시리즈 사진들이 셋이었다. 사진 인화 및 전시 구성은 이렇게 3가지 형태로 하기로 하고, 그 안에 어떤 사진을 담을 것인지 고르기 시작했다. 각자 그동안 찍어온 사진 인생이 있기에 나름 아끼는 사진들로 고르고 골랐다. 각각 서로를 찍은 사진, 커플이 되어 한 프레임에 들어온 사진, 나름의 작품 사진 등을 골라 사이즈에 맞춰 인화하고, 액자도 주문했다.   


예식 당일, 사진 전시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미리 사진들을 액자에 넣어 놓고, 집게로 사진을 집어 끈에 연결해 놓는 등의 작업을 미리미리 해 두었다. 한 동안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이 작업들만 했던 것 같다. 사진들을 고르고, 정리하고, 묶음을 미리 만들어 놓는 등. 정말 지금 생각하니 손이 많이 가는 작업들을 했다 싶다. 


전시할 사진들. 큰 사진들은 액자에 걸고, 작은 사진들은 시리즈로 엮었다. ⓒ과거 사진첩


이 밖에도, 2시간 무료 주차이긴 하지만 협소한 건물 주차장 상태를 고려하여 인근 공영 주차장에 미리 주차 등록해놓기, 건물 구조가 복잡하여 41층까지 올라오는 길을 헷갈리지 않도록 길목마다 안내문을 붙이기 등 디테일에도 나름 신경을 썼다. 미리 건물 구조도 파악해서 준비를 했었는데, 아직까지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 덕분에 길을 헤매지 않았어 라고 말해줬으면 도움이 되었구나 싶었을 테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우 찾기 힘들었다 라는 말만 했기 때문에....) 


이렇게 나름 길을 헤매지 않도록 여기저기 붙여 놓았으나, 도움이 되었다는 후기는 못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름 열심히 미리 준비한다고 했지만, 결혼식 당일에는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 아니던가. 하루하루를 빨리 결혼식을 끝내고 후련해지고 싶은 마음 반, 어딘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 같아 시간이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 반으로 보냈다. 고난의 겨울을 보내고 3월에 들어선 순간, 그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치 시험날처럼 D-DAY는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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