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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리 Jan 31. 2021

레스토랑에서 셀프 웨딩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일단 예식이 시작되자 안정을 찾았다. 사회자가 진행을 시작했고, 내가 밤을 새워가며 만든 영상도 잘 나왔다. 버진 로드 시작점에서 그 영상을 보고 있노라니 내 마음이 촉촉이 차올랐다. 아, 이 감성. 그래 결혼식은 이런 느낌이어야지. 




미리 준비한 순서대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제일 먼저 양가 어머니 동시 입장, 인사, 그리고 착석... 응? 뭔가 우왕좌왕하는 게 보인다. 왜 갈피를 못 잡지? 나의 어머니는 예식 배경을 바라보고 오른쪽에 앉아야 하는데? 알고 봤더니, 유일하게 미리 입장해 있던 아버님께서 오른쪽의 신부 측 부모님 좌석에 앉아 계셨다. 그러니까 아버님은 지난 두 딸의 결혼식 때 모두 오른쪽에 앉아 계셨으니 이번에도 익숙하게 그곳에 앉으셨던 것이고... 이곳은 전문 식장이 아니니 그걸 따로 안내해줄 사람이 없었다.


결국 어머님은 오른쪽에 계신 아버님 옆으로, 어머니는 왼쪽에 비어있는 부모님 석에 가서 앉으셨다. 얼결에 신랑 측, 신부 측 자리가 바뀐 것이다. 아하하하. 아무렴 어떠리오 잘 앉아 계시면 되었지. 그렇게 잠시 혼란이 지나가고, 이내 신랑이 입장했다. 경쾌한 발걸음과 함께 들리는 BGM은 "장가갈 수 있을까~" 


이어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내가 입장했다. 제대로 연습한 적은 없었지만 적당한 곳에서 C가 마중 나와, 자연스럽게 C의 손을 잡고 끝까지 입장했다. 아버지와 손을 잡고 걸을 때는 왠지 모르게 뭉클했는데, C의 손을 잡는 순간, 내가 드디어 내 손으로 만든 축제의 절정을 향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새 가족을 이루기 위해 걸어가는 길은 나에게 '신남'으로 다가왔다. 



신부 입장~ ⓒ과거 사진첩


그렇게 정식으로 부부가 입장한 뒤, 우리는 혼인 서약서를 읽었다. 바로 10시간 전에 연습장을 뜯어서 손으로 쓴 약속. 나름 지금도 잘 지키고 있는 것들이다. 가끔 잊을만할 때 읽어보면서 마음을 다잡곤 한다.


겉으로는 그럴싸하지만 속에는 이렇게 난리났었던 혼인 서약서 ⓒ과거 사진첩


[혼인 서약서]

신랑 최종원은 신부 이진희를 아내로 맞이하여 행복하고 건강한 결혼 생활을 위해 다음과 같이 서약합니다. 

하나, 저보다 먼 거리를 출퇴근하는 아내를 위해, 제가 쉬는 날에는 아내를 데리러 가겠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저녁 밥상을 차려 놓겠습니다. 10년 동안의 자취 생활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보살피고, 혼자가 아닌 누군가가 기다리는 포근한 가정을 만들겠습니다.

둘, 함께 운동을 하겠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꿈꾸는 모든 것들을 해나가기 위해 건강은 필수라는 생각으로 서로를 발전시키는 관계가 되겠습니다.

셋, 이기려 들지 않겠습니다. 순간의 양보가 영원한 평화를 가져온다는 믿음으로, 우선 공감하고 인정하고 사과하겠습니다.



신부 이진희는 신랑 최종원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행복하고 건강한 결혼 생활을 위해 다음과 같이 서약합니다. 

하나, 하루 일과가 끝나고 다시 만날 때는 웃는 얼굴로 남편을 맞이하겠습니다. 고단했던 하루에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부부가 되고 싶습니다. 

둘, 교대 근무를 하는 남편이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를 살찌우겠습니다. 끼니 거르지 않게 간식은 언제나 먹을 수 있게 챙기고 함께 운동하며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셋, 남편에게 사진을 배우며 우리가 친해진 만큼, 천문우주를 전공으로 할 정도로 별에 대한 열정이 저보다 큰 만큼, 우리가 함께 하지만 그가 더 잘하는 이 취미들을 지원하고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하나,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다 같이 여행을 가겠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모두 함께 하고 싶습니다.
둘, 언제나 서로의 편을 들어주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서로의 마음을 보듬겠습니다.
셋, 돈보다 즐거움에 가치를 두고 살겠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고 함께하는 즐거움을 추구하겠습니다.

2016년 3월 12일, 최종원 이진희의 결혼식에 와주신 하객 분들 앞에서 이 모든 것을 지킬 것을 맹세합니다. 



신랑 아버지, 신부 아버지의 축사가 이어졌다. 아버지들의 진심을 담아 쓴 편지. 그 앞에 서서 들을 때, 결혼 생활을 하면서 가끔 생각나 읽어 볼 때 느낌이 모두 다르다. 


다음은 양가 아버지들의 편지 전문이다.


[신랑 아버지 편지]

안녕하십니까,
신랑 아버지 최윤기입니다.

오늘은 화창한 봄 날씨에 가족과 함께 봄나들이 가시기 좋은 날씨인데 만사 제쳐두고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시어 참석하여 주신 하객 여러분과 가족 친지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멀리 울산, 대전, 광주, 부산에서 아침 일찍부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례 없이 결혼식을 한다고 해서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품을 떠나는 귀중한 시간인데 주례 선생님의 말씀보다 양가 부모님의 말씀 한마디가 더 중요하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렇게 어색하고 부족하지만 널리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존경하는 하객 그리고 친지 여러분, 저는 지금 아버지로서 부모 자식 관계이지만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좋은 배필을 만난 것도 좋지만 곱게 낳아 다칠세라 그릇될세라 애지중지 정성과 사랑으로 귀하게 키우신 따님을 며느리로 연을 맺게 해 주신 사돈댁과 일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 두 가문이 백년가약을 맺음으로써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떠나 마음의 벽을 털고 한 가족이 되었음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귀중한 인연이 영원히 변치 않는 아름다운 빛을 발하도록 함께 할 것을 약속합니다.

오늘 이 두 사람의 만남이 누구도 부러울 것 없는 가정을 이루도록 뜨거운 응원과 따뜻한 격려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아들이 10년 전부터 틈만 나면 전 세계로 별 볼일 없는 별만 보러 다니기에 야단도 쳤습니다.
그런데 결국에 이렇게 예쁘고 착하고 똘똘한 나무랄 데 없는 별을 따왔습니다. 
제가 보건대 이 두 사람은 천생연분으로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 믿습니다. 

앞으로 양가 부모님 공경하며 친지 간에 우애하며 서로 위해주고 양보하며 사랑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길 바란다. 

2016년 3월 12일 아버지가

감사합니다.


[신부 아버지 편지] - 꽤 깁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저희 자녀들의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하여 먼길을 찾아주신 내빈님들과 양가 친지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요즈음은 결혼식 문화가 많이 달라져 아이들이 주례 없이 예식을 치른다 하여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몇 자 적었습니다.

결혼하는 딸과 사위에게 아빠가 쓴 편지

   사랑하는 예쁜 딸 진희야!

   오늘 이렇게 기쁜 날에 벅찬 기쁨으로 숨이 가쁘지만 가슴 한편으로는 휑한 바람이 부는구나.
   태어나서 오늘이 있기까지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준 예쁜 딸 진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한 남자의 아내로 다가서기 위해 신부석에 있는 네 모습이 백합처럼 예쁘구나.
   엄마, 아빠의 귀여운 딸로 태어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자라 이렇게 결혼을 하니 대견스럽고 장하다. 

   사랑하는 예쁜 딸 진희야!

   아빠는 네 엄마를 만나 너 하나만을 낳아 키웠고
   우리는 너 하나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네가 이렇게 훌륭히 자라서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어 한없이 기쁘다.
   아빠는 너와 즐거웠던 추억들이 많아 살면서 행복했단다.
   우리는 여행도 많이 갔고 텐트에서 밤하늘 별도 같이 봤었지
   너는 여행과 별을 좋아하는데, 취미가 같은 최서방을 만나
   모든 걸 함께 할 수 있어 재미나게 살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하구나.

   네가 학창 시절 학원에서 늦게 마치고 돌아올 때에 밤 한 시가 되어도 
   비가 오나, 날이 추우나, 아빠가 늦게 퇴근해서도
   중, 고등학교 6년 동안 학원버스가 도착하는 곳에서 아빠는 너를 기다렸지
   너는 버스에서 내릴 때 아빠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고 집까지 같이 걸어오며 좋아했었지
   아빠는 그런 너를 보며 그 시간이 행복했단다.
   그동안 잘 커줘서 고맙구나.

   사랑하는 예쁜 딸 진희야!

   너는 네 엄마를 닮아라.
   너희 엄마의 자식사랑을 본받고
   가정에 대한 희생과 알뜰함을 본받아라.
   너의 모든 것은 바로 엄마의 힘이란다.
   엄마는 비록 입지 못하고 먹지도 못해도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 그리고 공부시켰다.
   어느 부모인들 안 그렇겠냐만은 엄마에게 너는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딸이기에
   엄마는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고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어 했고,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안달이었지만, 막상 엄마는 본인을 위해서는 상을 차리지 않았다.
   너는 네 엄마의 희생을 평생 새기고 살아라.

   사랑하는 예쁜 딸 진희야!

   너는 이제 한 집의 며느리가 된다.
   네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 이렇게 경사스러운 혼사를 가질 수 있는 것도 
   다 네 시부모님의 은덕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네 시부모님이 계셨으니 이렇게 훌륭한 신랑을 만날 수 있었고
   오늘 이렇게 행복한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최서방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자나 깨나 근심 걱정해주시고
   네 시부모님이 품 안에 안아 키워주셨기에 오늘 이런 근사한 결혼식에 너희들이 설 수 있는 것이다.
   항상 시부모님께 정성을 다해 모시도록 해라.


   사랑하는 사위 최서방!

   처음 친구들과 같이 울산에 놀러 왔을 때,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네
   같이 하면 할수록 그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해주고 있어 고맙네
   상견례에서 부모님을 만나 뵙고 최서방의 성품이 부모님의 인품을 본받았음을 알았네
   자네같이 자상하고 다정 다감한 사람이 우리 부부의 사위가 되어 주어 감사하네.
   물론 둘이 오랜 시간을 같이 지냈으니 서로가 잘 알고 있으리라고 믿네만,
   이제는 자네가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우리 딸과 더불어
   이 세상을 헤치고 살아 나가야 하네.
   부족함이 있는 것은 서로 채워주고 모르는 것은 가르치면서 서로의 인생을 가꾸어 나가 주게나
   서로 이해하며 서로 챙겨주며 재미나게 살길 바라네
   가정의 행복과 자녀의 교육은 부부금슬이 제일 중요하니 항상 웃음 짓는 가정이 되도록 부탁하네.

   사랑하는 내 사위 최서방, 예쁜 딸 진희야!
  
   네가 없는 우리 집은 휑할 것이야.
   네가 머물렀던 자리에 눈길이 자주 갈 것이고 그리고 네 체취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네 시집의 며느리가 되었듯이, 
   최서방은 우리 집의 듬직한 사위가 되었으니 새 식구 하나 얻어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둘은 이제 새 가정을 만들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번 맺은 인연은 소중히 지켜라.
   인생은 혼자는 살 수 없고 더불어 가는 세상이기에 
   모든 인연을 잘 가꾸고 유지하면 인생이 즐겁고 행복함을 명심하고 살아가길 바란다.

   사랑하는 예쁜 딸 진희야!

   다시 한번 당부하건대
   시집가서 시집식구들 잘 모시고
   남편 내조 잘하고
   아이들 잘 키우며
   예쁘게 살아라.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한단다.

   예쁜 딸 진희의 아빠가!




나중에 알았지만, 아버지께서 편지를 읽을 때 우리 부서 여직원들이 펑펑 울었다고 한다. 내가 그동안 고생해가면서 결혼 준비한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며, 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졌다고. 한 명이 우니까 옆에서 따라 울어서 그쪽 인근이 눈물바다가 되었었다는 후문이 있다.


나는 당시에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아빠, 마이크 좀 만 더 앞으로! 뒤쪽은 소리가 잘 안 들릴 것 같아!' 같은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눈물 나는 상황을 회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아버지께서 편지를 읽을 때,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몇 분의 시간 동안 엄마는 30여 년 세월의 시간이 지나가는 것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문득 '내 인생뿐만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의 인생에서도 이렇게 한 챕터가 막을 내리고, 시작하네요.'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협소한 공간이었지만, 친구들이 정성껏 불러주었던 축가 타임 ⓒ과거 사진첩


축가가 이어졌다. 첫 곡인 '두 사람'이 나올 때 내 머릿속은 2014년 10월 3일 그 날로 돌아가 있었다. 우리가 친구가 아닌 연인으로 첫 발을 뗀 그 날,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던 이 노래. 그리고 1년 반이 지나 정식으로 부부가 됨을 만인에게 알리면서 들리는 이 노래는, 그 날과 오늘의 추억을 이어주고 있었다. 역시 이 곡은 꼭 축가로 했어야 했다. 


서프라이즈 노래였던 두 번째 노래는, 사랑 가요 메들리였다. 처음에 진지하게 몇 소절 듣고 있다 보니 바로바로 다른 노래로 바뀌는 게 아닌가! 그렇게 메들리로 이어지는데 오... 노래가 끝이 없었다. 신나긴 하는데, 언제 끝나지? 메들리로 이어지다 보니 어떤 지점에서 노래가 끝날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쯤에 나는 사실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빠져있었다. 이미 발은 마비가 된 것 같았다. 왜 신부 대기실에서 신부가 앉아 있어야 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너무 오랜 시간을 높은 굽 위에 서 있었더니 힘들었던 것이다. 포토월 사진을 예쁘게 찍겠다고 서서 찍었는데, 그 한 시간 동안 발이 꽤나 혹사당했다. 이리저리 레스토랑 안을 쏘다닌 것도 그렇고..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려니 모든 힘듦이 발에 몰리는 것 같았다. 결혼식의 클라이맥스도 지나고, 이제 긴장이 풀리는 일만 남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정말 신발 아래로 내려와 맨발로 서 있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며, 메들리를 듣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드디어 축가가 끝나고 양가 부모님, 하객 분들께 인사를 하였다. 공식으로 예식이 끝나감을 알리는 인사. 보통은 그러고 나서 버진 로드 밖으로 행진을 하겠지만, 우리는 여기에 이벤트를 하나 기획해서 넣었다. 덕담 상자 이벤트. 친구들이 청첩장을 담은 유리상자를 갖고 무대 앞으로 왔다.



즐거웠던 청첩장 이벤트 ⓒ과거 사진첩


두구두구두. 상품은? 문화상품권 1만 원짜리 5매! 재미있는 이벤트가 될 것 같았다. 손을 넣어 쉐낏쉐낏, 청첩장을 꺼내고 그 뒤에 있는 축하 인사를 읽었다. 첫 당첨자는? 동아리 후배다. 오늘 일찍부터 와서 도와준 후배들 중에 당첨되었다. 두 번째에도 동아리 후배가 되었다. 첫 번째 당첨자와 동기 친구다. 아니 이거 진짜 랜덤하게 고른 건데 어떻게 이렇게 나란히 나오지. 그러다 문득 결혼식을 너무 오래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0분 정도 늦게 진행된 결혼식, 이미 1시 반쯤 되어가는데 이 분들 배고프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서 계획을 변경했다.


원래는 1만 원씩 5명에게 드릴 계획이었는데, 아예 몰빵 하기로 한 것이다. 자 세 번째 당첨자에게는 문화 상품권 3만 원을 드립니다! 와아! 집중도도 환호성도 엄청났다. 그렇게 마지막 당첨자는? C의 큰 이모님이다. 


좀 더 할 걸 그랬나. 내 지인들 어디 갔어... 많은 사람들의 탄식을 뒤로하고 우리는 진짜 결혼식의 끝인 행진을 위해 걸어 나갔다. 응원과 환호 속에서 걸어가는 행진. 와아~ 




행진의 끝에 다다를 때쯤 주변을 둘러보는데 조용하다. '뽀뽀해' 혹은 '키스해' 소리가 어디선가는 들릴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우리 둘이 붙은 꼴을 봐주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나 보다. 다들 일어나 음식 가지러 가기 바빴다. 하하하. 보통의 결혼식에는 마지막 버진 로드 시작점에서 신랑, 신부 뽀뽀하고, 꽃잎이 휘날리고, 멋진 조명 아래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는데, 우리는 그냥 퇴장~ 하고 끝났다. 우리한테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본식이 끝났다. 자잘한 사고는 많았지만 딱히 큰 사고는 없어서 다행이었던, 그런 결혼식이었다. 이제 남은 건 친척, 친구들, 가족사진 찍기. 웬만한 사진은 포토월로 대신할 것이었지만, 그래도 못 찍은 경우를 위해 이 부분도 진행하기로 했다. 고퀄리티의 사진보다는 인증숏 정도만 생각하고 찍었다. 따로 계단이 있을만한 공간이 없었기에, 첫 번째 줄은 의자를 두고 앉았고, 두 번째부터는 서서 사진을 찍었다. 


친척들, 동아리 친구들, 나의 지인들, C의 지인들까지. 부케 던지는 장면까지 찍으면서 나름 할 건 다 했다. 공간이 매우 협소했던 탓에 엄청난 광각렌즈로 찍게 되어, 사진에 왜곡이 좀 있긴 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주어진 공간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 가족사진까지 모두 찍고 나서 나는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우리는 별도의 폐백을 하지 않았다. 한복 대신 원피스 및 양복으로 예복을 맞췄고, 그 옷으로 갈아입고 하객 분들께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제 오후 2시를 향해 갈 텐데, 최소한 오후 3시까지(최대 저녁 타임인 오후 5시 이전까지) 이 공간은 우리 것이었다. 하객분들께도 천천히 식사하시라고 하고, 우리는 한 바퀴를 돌며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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