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리 Sep 04. 2021

유산을 하고 나서 알게 된 것

하늘의 뜻대로 

결혼 3년 차쯤 접어들면서 아이는 언제 생기느냐는 주변의 물음에 했던 대답이다. 우리는 딩크족도, 그렇다고 꼭 아이가 있어야 한다는 쪽도 아닌,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부부였다. 딱히 피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임신을 하려는 시도 또한 없었다. 그저 될 대로 되어라~ 하며 흐름에 따라, 친구에서 연인, 연인에서 부부가 되었던 그 세월을 즐기는 한 쌍이었다.


우리는 취미가 같았기 때문에 결혼을 하면서 취미 생활을 배로 즐길 수 있었다. 둘이 같이 좋아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보니, 우리는 함께하는 이 시간들을 어떻게 즐길까 궁리하는 데에 몰두했다. 같이 별을 보고, 같이 여행을 다니고, 같이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같이 레고를 만들고, 같이 놀이동산을 다니고, 같이 카페를 가면서, 다음엔 무얼 해볼까 계획을 세우곤 했었다. 하지만 이런 계획들 중에 2세 계획은 없었다. 아기가 생기면 이렇게 즐기는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니 더욱 생각하는 것 자체를 미뤘던 것 같다. 정말 아기라는 존재는 막연했고, 우리는 눈앞의 즐거움에 취해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임신이었다. 2018년 9월, 결혼 2년 반 만에 알프스에서 아기가 생겼다. 분명 한 줄임을 보고 버렸던 임신 테스트기를 다음 날 다시 봤더니 선명한 두 줄이 있었다. 매달 생리 날짜가 다가오면 의례적으로 테스트를 해보곤 했었다. 혹시 모르니까. 나는 생리 주기가 칼 같지 않아 더욱 확인이 필요했다. 그렇게 매번 한 줄 보고 버리고, 한 줄 보고 버려서 별 기대도 하지 않았던 때였다. 이번 달은 여행도 다녀오고 했으니 아니겠지 하면서도 일단 해봤는데, 생애 첫 두 줄을 다음 날 발견할 줄이야.


두 줄의 환희 같은 것도 없이, 어리둥절해하며 다음 날 다시 테스트를 하기로 했고, 일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일어나 테스트를 한 결과... 꺅. 시원한 두 줄. 테스트기에 소변이 빠르게 흡수되며 지나가는데 단박에 짙은 두 줄이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일요일에도 진료를 보는, 동네 산부인과 전문 병원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아기집을 보고, 임신확인서를 받고 나왔다. 


얼떨떨했다. 순식간에 뭔가 바뀐 것 같다. 이 배 안에 무언가 새로운 생명이 있다고? 마치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며 모든 것이 바뀌는 영화 속 장면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우주가 바뀐 순간이었다. 나는 그대로지만, 그대로가 아니었다.


C의 반응이 궁금했다. 평소에 우리가 이렇게 즐기면서 살 수 있으면 아기는 꼭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던 그였다. 임신을 안 순간, 그는 어땠을까. 단순히 두 줄을 보면서 축하해! 하는 반응이 아닌, 앞으로 변할 미래를 생각하는 그의 진심이 궁금했다. 



취미가 대수냐


그는 초음파에서 아기집을 보는 순간, 거기로 빨려 들어갔다고 했다. 2mm 남짓되는 작은 동그라미 하나에 모든 것을 몰입했다. 



왼쪽 상단에 작은 동그라미. 가운데에서 10시 방향, 화살표에서 11시 55분 방향으로 5센티 위쯤에 있는 그것.


지금 저 아기집 속에,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내 자식이 있다고?
취미 생활이고 뭐고 난 지금 저것만 보인다! 그동안 실컷 즐긴 취미는 이제 안녕~
인생 2막을 열겠어! 



그렇게 우리는 감격의 결과를 가지고 집에 돌아왔고, 곧바로 양가 및 주변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30대 초중반의 나이, 결혼 3년 차. 이제 두 식구가 아닌 세 식구의 삶을 살아볼까? 


우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이 변화에 적응했다. 입덧이 나를 지배했지만, 괜찮았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평온하다는 것이 이런 걸까. 입덧이 거세질수록 은근 기분이 좋았다. 임신했다는 걸 계속 확인하는 것 같아서. 나는 이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고, C는 그런 나를 보면서 일상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출퇴근 외에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버린 나 대신, 이제 모든 집안일은 C의 차지가 되었다. 나는 먹고 또 먹었다. 생애 처음 겪어보는 이 울렁거림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첫 임신을 온 마음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마지막 생리일 기준으로 아기집을 확인한 날은 5주 2일 차, 언제 배란이 되고, 언제 착상이 되었는지 알 수 없으므로 추후 태아의 성장 속도를 보고 출산 예정일 및 임신 주수는 변경될 것이라고 했다. 임신 초기 정기 검진은 2주마다 있으므로 의사는 2주 후에 오라고 하였다.


하루하루가 길었다. 뱃속 우주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하루 종일 머릿속에는 아기 생각뿐이었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이므로 알아야 할 것이 많았다. 우리는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2주를 못 기다려, 1주 후에 초음파를 또 보러 갔다. 그때는 어느 시기에 뭐가 보이고 어떤 걸 확인할 수 있고, 이런 것도 잘 몰랐다. 그저 너무 궁금했고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6주 2일 차에는 난황을 보고 왔다.


임신 주수는 직전 생리 시작일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사실 임신의 시작은 4주부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보통 생리 시작일 2주 후면 배란을 하고, 배란 2주 후면 다음 생리를 하기 때문에 이 기준으로 이어진다. 임신 4주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없고 피검사 수치로만 임신임을 알 수 있다. 5주가 되어야 아기집을 볼 수 있고, 6주 중후반쯤부터는 아기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 8주 경에는 젤리 곰 모양의 아기를 볼 수 있고, 11~12주쯤에는 목 투명대 두께를 확인하고, 16주에는 성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주수에 따라 확인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출산 때까지 있다. 나는 이 과정에 막 첫 발을 뗐다.


두근두근. 처음으로 평일에 병원을 갔다. 6주 후반, 7주 초 언저리에서 아기 심장 소리를 들을 차례였다. C가 쉬는 날을 골라 둘이 같이 병원에서 손 꼭 잡고 기다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예약한 시간보다 거의 2시간 정도나 늦게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미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심장소리를 들어야 했기에 우리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초음파 기계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음, 의사가 말이 없다.


어두운 표정으로 초음파 기계를 뺐다. 아기집 속에 아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응? 세상에 이런 경우도 있나?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경우에 대해 아는 것도 들어본 것도 없어 생각지도 못했다. 의사는 아기가 보이는데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으니 일단 기다려보자고 했다. 2주가 아닌 1주 후로 예약. 우리는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어안이 벙벙한 결과를 듣고 나왔다. 


하루가 천 년 같은 일주일이었다. 매일 밤 악몽 아닌 악몽을 꾸었다. 걱정이 태산 같으면서도 이 걱정이 뱃속 아기에게 전해질까 두려웠다. 순간순간의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전에는 조금만 임신 증상이 보이면 임신인가 싶었는데, 지금은 조금이라도 임신이 아닌 거 같은 상황이 보이면 사실 아기가 없나 싶었다. 입덧은 지속되고 있었지만 믿을 수 없었다. 입덧은 상상임신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우리는


아주아주 조그마한 별똥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알프스 산자락에서 별똥별을 보고 잉태되었다고 별똥이라는 태명을 붙였더랬다. 다행이다. 별똥이가 있었다. 심박수가 110 언저리로 낮고, 심장 소리가 몹시 불규칙하다는 의사의 말은 한 귀로 넘기고 있었다. 의사는 처음 들어보는 형태의 심장 소리라 불안하지만, 일단은 아기가 보이니까 크는 것을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래, 일단 우리 별똥이가 이렇게 심장이 뛰고 살아있다는데 그 이상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초음파 사진을 받아 들고 C가 울었다. 일주일 동안 나의 히스테리를 받아주고, 걱정과 불안을 삼켰던 눈물이다. 우리는 그렇게 병원 한쪽 구석에서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일주일 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진료실에 누웠다. 그 전 일주일과는 다르게 나는 지난 일주일을 즐겼다. 별똥이를 봤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하여 모든 것을 좋게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심장소리가 불규칙했어도, 알프스의 정기를 받은 우리 아기는 그 고비를 넘기고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생각하였다.



------------------ 

정적이 흘렀다. 의사가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심장이 멈추었다는 게 이런 거구나. 들려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마음이 무너져 내리면서 믿을 수가 없었다. 






눈을 떴다. 아랫배가 생리통처럼 알싸하게 아파온다. 비몽사몽 한 정신 속에서 퍼뜩 생각이 든다. 수술이 끝났구나. 이제 뱃속에 별똥이가 없구나. 회복실은 매우 추웠다. 나는 온몸을 웅크리고 누워 벌벌 떨면서 배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마음도, 몸도 아프다. 


휠체어에 앉아 회복실을 나오는데 저 앞에 초조하게 기다리는 C가 보인다. 그를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났다. 그는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우리는 말없이 병실로 이동했고, 처치가 끝나고 둘이 남겨진 순간, 동시에 통곡을 했다. 이렇게 같이 펑펑 운 것은 처음이었다. 


배 속에 아기를 품고 있던 시간은 4주 남짓. 그 시간 동안 행복하게 꿈꾸었던 미래는 사라졌고, 우리는 다시 둘이 되었다. 어찌 보면 두 달 전과 같이, 그대로 둘인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커다란 변화가 생겨났다 사라졌다. 의학적으로는 계류유산이었다. 의사는 처음부터 고비가 있었던 배아였고, 완전하지 않은 염색체이므로 임신 중 언젠가 소실될 것이었다고 했다. 차라리 일찍 가준 것이 엄마 아빠 더 힘들지 말라는 배려였다고. 건강하게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이 과정에서 엄마 아빠의 실수나 잘못은 없다고. 맞는 말이었고 머리로는 이해도 했다. 하지만 마음에 새겨진 슬픔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시간을 겪으며 우리에게 남은 건 상실감이었다.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것 같은 공허함. 우리는 여전히 둘의 시간을 즐기며 웃으면서 살았지만, 가끔 그냥 눈물을 흘리곤 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르는 수도꼭지가 마음속에 생겨난 것이다. 어찌나 눈물이 많아졌는지 TV를 보다가 조금만 슬픈 아기 얘기만 나오면 둘 다 말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곤 했다. 전에는 머리로 슬펐는데 이제 마음으로 몸으로 슬퍼하게 되었다. C는 우리가 이렇게 가족이 되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별똥이는 우리를 찰나에 스쳐갔지만, 우리에게 남겨준 것이 있었다. 아기를 갖고 싶다는 마음. 생각 없이 시간만 보내지 말라고 별똥이가 신호를 주고 갔나 보다. 


아기를 가진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느꼈던 감정은 상상해오던 것과 많이 달랐다. 그 전엔 두려움, 미지의 공포, 걱정 등이 앞서서, 가보지 않은 길을 모험하지 말라고 뒤에서 잡아당기고 있었다면, 이제는 안다. 임신을 받아들이는 순간 새로운 길이 나며, 그 길만 보인다는 것을. 나를 잡고 있던 무서움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댄다는 것을. 그것이 인간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었고, 인류를 이어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느낌이었다. 이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해보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우리는 이제 같이 손을 잡고 새로운 길을 향해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새로운 길은 사라졌지만, 그 길로 가고자 하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열심히 길을 내보자고 다짐했다. 그 길 앞에 가시밭이 그토록 험난할 줄, 끝을 알지 못하는 터널을 지나는 게 그렇게 힘들 줄을 모르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