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밴더벨트 감독의 2015년 작 <트루스(Truth)>는 기존 언론 영화의 공식을 변주(變奏)한다. 앞선 언론 영화는 은폐된 한 사건을 특정 기자들이 파헤쳐 보도하는 구조를 따른다. 언론 영화의 아버지 격인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부터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스포트라이트> 등이 그러하다. 반면 <트루스>는 기존 영화의 공식을 따르는 듯 하지만 그 안에 또다른 메시지를 담아내는데 주력했다. 이 글에서 필자는 <트루스>의 성취와 실패를 언론영화의 수작이라 불리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과 비교하며 이야기하고자 한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베트남 전 당시 군 복무시절 비리인 '래더게이트'를 다룬 <트루스>는 비교적 애매한 지점에 서있다. 125분의 러닝타임 가운데 취재 과정은 전반부 40분 정도고, 후반부는 취재 이후의 백 스토리로 채운다. 문제는 '래더게이트' 사건을 다루기에 40분은 다소 부족한 시간이란 점.(심지어 자신들의 프로그램 이름인 '60분'보다도 20분이나 짧다.) 당연히 디테일한 취재 과정은 거의 들어낼 수 밖에 없고, 서사적인 얼개의 느슨함을 '장치'들로 채워넣었다. 예를 들어 지난하고 어려운 취재 과정을 사건 관련자들이 전화를 일괄적으로 거부하는 짧은 컷들의 나열로만 처리하고, 긴장감을 넣기 위해 취재 시간을 제약하는 등의 작위적 장치를 걸어 놓는 것이 그렇다. 이로 인해 CBS의 프로그램 '60분'에 처음 '래더 게이트'가 보도될 때의 쾌감은 줄어들게 된다.
보도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후반부는 영화의 주된 메시지를 보여준다. 결정적인 보도 문건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외부 세력은 이들의 이런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취재원의 사생활을 들춰내고 약점을 파고들며, 심지어 기자의 아버지까지 무대에 세워 정치 성향을 물고 늘어진다. 결국 CBS 상부의 압박으로 관련 취재진들은 옷을 벗을 수 밖에 없다. 취재를 주도한 건으로 앵커는 20년 넘게 지켜온 앵커직을 사임한다. 기자는 징계 위원회에 회부되어 해고 당한다. 이 시점에선 부시 대통령의 군 복무 의혹은 더이상 문제가 아니다. 현직 대통령의 비리 의혹은 불필요한 언어들에 의해 희석된 채 가십거리 수준으로 전락한다.
앞서 말했듯 영화의 앞뒤 균형이 무너진 점은 아쉽다. 취재와 보도를 다루는 과정은 40분 정도로 짧게 다뤄진 반면, 이후 백스토리를 다루는 과정은 다소 길고 지난하며 동어반복적이다. 물론 영화의 주된 메시지가 뒤쪽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응당 중요한 '래더게이트'를 취재하는 과정이 너무 빠져있다. 차라리 전반부를 조금 더 길게 다루면서 거기에 후반부의 메시지를 녹여내면 더 좋지 않았을지 싶다. 또 이야기가 단선적이라는 점도 신경쓰인다. 극적 긴장감을 위해 상황을 반전시키는 과정에서 여러 장치(악플러를 보고 충격을 받는 장면이나, 아버지의 등장, 'FEA' 등)가 등장하는데, 그를 다루는 방식이 꽤 감정적이다. 서사가 '기승전결'의 공식을 따르다보니 인물의 감정 변화 또한 단선적이다. 또 '사실과 진실'이라는 본래 메시지가 감정에 치중된 이야기 전개로 인해 다소 희석된 느낌마저 든다.
윌리엄 골드만 감독의 1976년 작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은 정치 언론 영화의 수작으로 꼽힌다. 1972년 초유의 미국 대통령 사임 사건인 '워터게이트'를 다룬 이 영화의 백미는 특유의 드라이함. 러닝타임 내내 저널리즘의 시점으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매우 치밀하다. 극중 '워싱턴 포스트' 지의 두 기자가 뒤엉킨 실타래의 끝을 붙잡고 집요하게 풀어간다. 정보의 홍수에서 진실한 정보만을 걸러내는 과정, 끈질긴 취재와 수많은 취재거부들, 사태를 무마하려는 얼버무림들, 유언비어와 내부고발자, 그리고 이따금 얻어내는 소소한 성과들. 이 영화는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그치지 않고 그 취재 과정에 카메라를 직접 들이대 일견 지루해보이는 취재 과정과 저널리즘 그 자체를 드라이하게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우리는 신문이나 뉴스 등의 기사를 통해 취재된 결과물을 보고 사태를 판단한다. 하지만 언론인이 기사 하나를 쓰기 위해 물밑에서 치열하게 취재하는 과정을 우리는 잘 모르고, 또 알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 못한다. 언론 영화가 어려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치러야 할 지루함이나 기다림, 거북함 같은 '과정의 대가'만으로는 극적 긴장감을 이끌어내기 힘들 뿐만 아니라 관객의 이목을 잡아 끌기 힘들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 수작인 이유는 두 시간 칠 분의 긴 러닝타임동안 취재 과정만을 집요하게 다루면서도 극적 긴장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곁가지를 덜어낸 채 건조한 취재 과정만으로도 이토록 강렬한 서스펜스를 가지는 작품은 매우 드물다. 이 작품이 오랜 시간동안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에 비해 <트루스>는 언론영화로서의 성취는 다소 빈약한 감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기존의 언론 영화는 치열한 취재를 통해 이룬 성취를 보여주는데 주력한 경향이 있다. 그 과정에서 언론인은 가치 중립적이고 치열하며 언제나 진실을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이다. <트루스>는 그런 기존 언론 영화의 공식을 무너뜨린다. 언론인은 선하지도, 가치 중립적이지도 않으며 상부의 방침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모든 언론사가 권력자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중립적이며 진실된 보도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언론의 실상은 그보다 더 권력에 치중되어있고 무책임하며 또한 비열하다. 이 영화는 언론의 위력과 한계라는 동전의 양면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결국 언론인 또한 우리들과 같은 존재이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회사에 출근하고, 하루 종일 일하고 야근까지 하면 가정은 뒷전이다. 소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일하고도 욕을 먹고, 때로는 그 소신조차 윗선의 압박으로 접어야 할 때가 있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일하는지를 묻는다면, 결국 일상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기 위함이다. <트루스>가 기존의 언론 영화와 다른 지점은 바로 여기서부터 나온다. 이 영화는 결국 '모든 일함(Work)은 걷기 위함(Walk)'이라는, 고된 일상을 사느라 일상을 놓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