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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고트 May 23. 2024

빨래가 마르고, 제주살이가 시작되었네

그리고 2024 제주북페어

이름 없는 바다


제주에서 살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 이 집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고려 대상에서 마당 하나 비켜 간 옆집이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구경을 하려고 해도 하필 열쇠가 육지에 있다고 했다. 같은 건축사무소에서 지은 집이라 실내 구조는 똑같다고 했고, 정원은 훨씬 잘 가꿔져 있었다. 게다가 돌담이 온전히 마당을 에우고 있어서 ‘제주에 산다’는 느낌이 물씬했다.


문제는 연세가 고려 대상보다 비싸 마지노선을 밟기 직전이라는 것. 옆집에 살면 돌담을 나눠 쓸 수 있고 정원도 구경할 수 있잖아? 자고로 예쁜 집에 사는 것보다 예쁜 집 옆집에 사는 게 뷰가 더 좋은 법이지. 사실 내 눈길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었다. 고려 대상 옆집의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자꾸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이사를 오게 되면 나도 꼭 빨랫줄을 걸어야지.


3월 내내 활짝 피었던 뒤뜰 동백꽃


그날 저녁, 고려 대상의 집주인이 부동산 중개인과 대판 싸우고 세를 내놓지 않겠다고 헤살을 놓았다. 당장 내일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사 올 집이 없다? 그렇게 고려 대상에서 마당 하나 비켜 간 옆집이 우리의 제주 집이 되었다. 최소 1년 이상 살 집을 이사 당일에서야 들여다볼 수 있었으니 나 같은 고민쟁이에게는 모험도 이런 모험이 없는 셈이었는데,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이 어디 간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집안도 정원만큼이나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아늑하지만 통풍은 조금 시원찮던 서울의 공동 주택에서 산 6년 동안에는 빨래를 잘 말리는 게 일이었다. 건조기를 사면 해결될 문제였지만, 계절마다 건조대 위치를 바꾸고 여러 종류의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써 보며 몸으로 때우는 법을 배우도록 하는 게 세상의 이치. 그런데 지금 건조대를 열 개는 줄 세울 수 있는 마당과 빨랫줄이 생긴 것이다.





나는 엉덩이가 무겁다. 여행부터 이사까지 움직임이 좀 크다 싶으면 위험을 감지한 뒷마당 공벌레처럼 몸을 말고는 갈까 말까, 구를까 말까 고민하는 데 시간을 허비한다. 하지만 일단 제주로 내려오고 나니까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단독 주택은 처음이지만 아무튼 ‘내 집’은 아니니까 유지‧보수의 부담이 덜하다. 예컨대 문고리나 이중창 잠금쇠를 고치는 것은 기꺼이 할 수 있지만, 집 뒷벽에 생긴 균열을 시멘트로 메울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창고에 집주인이 쓰던 시멘트가 두 포대나 있어 시간이 나면 미장 체험도 해 볼까 싶긴 하다.) 차고지 증명제를 시행 중인 제주도로 이사 오면 다들 경험한다는 ‘주차선 그리기’도 집주인의 부탁으로 아내와 함께했는데, 꽤나 반듯하게 그려져서 아주 뿌듯했다. 심지어 내 차는 10년을 바라보는 차라 차고지 증명을 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정원에서


그래도 제주로 이사를 왔다는 드라마틱한 실감 중 하나를 꼽자면, 올해는 집에서 차를 타고 제주북페어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셋이나 서울에서 내려왔던 작년과 다르게 제주 사는 사람 한 명이면 호젓한 부스를 지키기에 충분했다. 한림 사는 어느 토박이가 참 멀리서 왔다는 뉘앙스로 “동쪽에서 오셨군요?”라고 표현한 우리 동네에서 북페어가 열리는 한라체육관까지는 한 시간. 한경, 한림, 대정 쪽이 아니라면 제주는 어딜 가든 한 시간이니까 양호한 거리다. 이른 아침, 한라산 능선을 돌아나가는 도로 위로 옅은 안개가 내려앉아 있었다. 희부연 우듬지 너머는 섬도 육지도 아닌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이런 시대에 책으로 큰 축제를 벌이자는 마음들이 모여들고 있으니 아무렴 그 공간은 초현실적일 수밖에 없었다.


제주북페어는 창작자들, 책방지기들, A부터 Z까지 홀로 도맡아 하는 독립출판사 운영자들이 전국에서 모여드는 책 행사다. 체육관에서 개최하니까 별칭도 ‘책 운동회’, 귀엽다. 부스를 꾸미고 삼각김밥을 두 개나 먹었는데도 시간이 남았다. 셀러들은 행사가 시작하기 전에 먼저 다른 부스를 돌아다니며 책을 업으로 삼은 동병상련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다. 직접 작품을 만들거나 다른 사람의 작품을 다루기 위해서는 자기 홍보가 필수인 요즘, 운동장 바닥에 고양감과 머뭇거림이 뒤섞여 찰방거렸다. 나는 여기서도 엉덩이가 무거워지고 말았지만, 누군가에게 우리가 낸 책이 어떤 책인지 줄줄이 읊어 주고 싶은 충동을 못 이기기도 했다.


2024 제주북페어


홍보의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표지만 슬쩍 보고 가는 사람들, 페이지를 몇 장 넘겨보다가 조심스레 내려놓고 가는 사람들, 눈은 이쪽을 보고 있는데 다리는 이미 저 멀리 앞서나간 사람들을 뚫어져라 보느라 그들보다 내가 더 많은 독서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책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 속에 있다 보면 나와 내가 선봉으로 나온 회사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건 아니라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후후, 나도 이제 제주에 사는 창작자라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잉여 시간에 혼자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 그런데 뭘 만들어 내지? 제주살이 붐을 타고 쓰인 숱한 제주 정착기에 나도 한 술 보태야 할 텐데 마음이 너무 빨리 정착해 버렸다.


2024 제주북페어


최근 어느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시인이기도 한 그에게 시를 쓰게 하는 동력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불화’라고 답했다. 불화하고 있는 대상으로부터 시가 발아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내가 제주와 무엇을 불화하는지는 모르겠다. 날씨에 관한 흉흉한 소리를 익히 들었지만, 이사 오고 3개월 동안 세 번 떨어진 강풍 경보도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사실 어릴 때부터 세찬 바람이 불면 눈 오는 날 강아지처럼 들떴다. 아직 시를 쓰기엔 땔감이 부족한 것 같으니 그렇다면 잡문이라도 지피도록 불화 대신 조화의 단서를 찾아볼까.


결국 당장 떠오르는 것은 윤택해진 세탁 라이프다. 바람을 좋아하는 성향과 빨래 말리기를 좋아하는 성향은 통하는 면이 있다. 쨍한 햇볕 아래 제주의 바람을 타고 (약간 미친 것처럼) 펄럭이는 빨래를 보고 있으면 삶의 질이 올라갔다는 실감이 난다. 보기에만 좋은 게 아니라 정말 포근하게 잘 마른다.


거짓말처럼 4월 1일에 먹은 올해 첫 빙수


다행히 이제 막 시작한 제주살이라 화젯거리는 늘어날 것이다. 여기서는 바다와 산이 서로 가깝고, 그 사이로 목장과 숲, 안개와 바람이 켜켜이 쌓여 있는 풍경은 깊다.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차창 밖으로 바다나 한라산, 둘 중 하나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그러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한동안 이 말랑거림이 굳을 일도 없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언젠가 시를 쓰게 할 불화를 맞닥트리는 날도 오겠지. 그러나 그게 고통은 아닐 것이다.


원래 살고자 했던 집이 아니었지만 연이 닿아 버렸고, 이후로도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진 않았다. 그럼에도 ‘적응이 됐다’는 말은,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돌발 펀치에 마음이 납작해지지 않게 됐다는 말에 가깝다. 인구 밀도가 현저히 낮은 곳에 사는 덕분인지, 문을 열 때마다 인사를 건네는 작은 숲 덕분인지 지금은 꼬집어 말할 수 없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답이다. 저녁나절 잘 마른 빨래와 함께 제주에서 보낸 또 다른 하루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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