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y ones & Hug me - Simona Ciraolo
글 읽는 법을 이르게 깨쳐서였을까, 어렸을 때 그림책을 읽었던 시기는 짧았고 그다지 관심도 없었다. 그림보다는 문자가, 문자가 모여서 만들어내는 문장이, 그 문장을 읽어내는 - 의미도 모르면서 - 스스로가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그림책은,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 보기 시작했다. 아마 숀 탠의 <빨간 나무>가 시작이지 않았나 싶다. 그림책 저자에 관심을 가지다가 동화 삽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다가 삽화가에도 관심을… 이것 저것 찾아보다 보니 이제는 좋아하는 작가도 꽤 있다. 여러 나라를 다니게 되면서는, 다들 그렇듯이 돌아와서 후회할, 대체 무슨 생각이었냐고 과거의 자신을 짤짤 흔들고 싶은 기념품을 꽤 사다가, 이제는 그림책에 정착했다. 어디를 가던지 그곳 서점을 꼭 가보는데 영어권이 아니면 언어를 잘 모르니 그림책 코너를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기념으로 사는 것. 하바롭스크에 갔을 때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탄 가족의 이야기와 열차가 정차하는 도시를 엮는 그림책을 사고, 취리히에 가서는 바오밥나무(아마)가 등장하는 뭔가 좀 어두운, 하지만 매력적인 그림책을 샀다. 그러다 보니 기념품이 아니더라도 서점에 가면 어린이 책 코너를 돌다가 그림책을 사 오는 일이 꽤 있다. 한 페이지에 한 두 문장이 그림과 엮이면서 만드는 이야기가 어쩌면 이럴까 싶게 와닿는다.
우와아 할 일이 왜 이렇게 많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까요! 하며 주말에 뛰쳐나가서 동네 산책을 좀 하다가 서점에 들렀다. 락다운 완화되어서 너무 다행이야. 서점마다 직원들의 취향이 드러나는데 그림책 코너도 예외는 아니다. 동네 Foyles는 은근히 나랑 잘 맞는 듯하다 (=뭔가 생각지 않았던 책을 사서 나온다). 알록달록한 조그마한 바닷 생물들이 눈길을 끄는 <Shy Ones>를 발견하고 화사하고 귀엽네-하고 집어서 한 두 장 넘기다가 샀다. 집에 돌아와서 미리 만들어 둔 콜드브루 - 이번 주 브리스톨은 일년에 다털어 2주쯤 있는 여름 날씨다 - 를 마시면서 읽는데... 뭐야 왜 이렇게 귀여워?
남 앞에 나선다거나 시선을 받는 일을 부끄러워하는 모리스(표지의 꼬마 문어)의 이야기. 어느 모임에 가던지 적극적으로 배경의 일부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내가 공감할 수밖에 없다.
4-5살 때부터 이미 나는 같이 노는 아이들과 싸우지 않는 아이였다고 들었다. 어머니의 관찰에 따르면 뭔가 분쟁(...?)이 일어날 것 같으면 그냥 양보해 버리더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이미 귀찮은 것을 피한다를 인생 목표1로 설정한 게 아니었나 싶다. 이런 성향은 대체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태어남과 동시에, 또는 그 이전부터, 주변의 사회적인 환경(social environment)은 아이의 뇌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 <Sleeping Beauties and other stories of mysterious illness> Suzanne O’Sullivan
어린 나는 '어린아이는 뛰어놀아야지' 같은 말이 거슬렸다. 지금이야 그냥 집에서 조용히 책이나 읽고 멍-하게 있게 두면 안 되나요... 하겠지만 어릴 때는 내가 뭔가 이상한가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딱히 성향을 바꾸려는 생각은 또 안 했지만. 이 그림책의 화사한 삽화와 귀여운 모리스를 보다 보니 (얘는 의외로 활동적인 취미를 가졌다) 어릴 때의 내가 생각난다.
어쨌든, 이런저런 것 보다, 이 그림책은 진짜로 귀엽다. 그냥 너무 귀엽다. 모리스도 귀엽고 모리스 엄마(추정)도 귀엽다. 아니 그냥 다 귀엽다. 수업시간에 모리스는 책상 아래로 숨어버리고 손 번쩍번쩍 드는 다른 친구들도 귀엽다.
그래서 당연히 검색을 하고 작가 (Simona Ciraolo. 사르디니아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영국거주. 사르디니아 사람이라서 바다 풍경이 이렇게 귀엽나요 같은 뻔한 생각도 좀 했다) 홈페이지를 찾고는 또 귀여운 책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Hug me>는 "안아주세요~"하는 뽀씨래기 선인장 펠리페의 이야기다. 가엾게도 펠리페의 가족들은 거리두기를 중요시하는 선인장들이다.
이 그림책은 좀 마음 아프다. 펠리페는 있는 힘껏 안아줄 수 있는, 자신을 껴안아줄 누군가를 찾아다니다, 결국 삐뚤어져서 뾰족뾰족 가시를 세우고 유리온실에 틀어박혀 배달음식(...?)을 먹으며 수도쿠와 닌텐도를 즐긴다(아마). 잠깐 이것도 괜찮지 않나...? 이 삐뚤어진 모습조차 그림이 너무 귀엽다고...
이 이야기의 결말은 다행이지만, 좀 쉽게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있다. 우정을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다. <Shy ones>도 <Hug me>도 결국은 나와 공감해 주는 누군가를 찾는 이야기다. 하지만 꼭 누군가가 있어야 할까.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수 있지 않나. 물론 펠리페는 처음부터 원하는 것이 확고했다 - 안아주세요, 라고. 나에게도 적은 수나마 공감하고 삶을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이 있지만, 꽤 자주 너 그렇게 살면 외롭지 않니 라는 질문을 듣는다. 그러면 안되는 거냐고 묻고 싶다.
어쨌든, 이 책에서도 중요한 건, 펠리페도 너무 귀엽다는 것! 왜 안아주지 않는 거야! 저렇게 귀여운데! 삐뚤어지기 전에는 가시도 보송보송했는데!
Simona Ciraolo 홈페이지 https://simonaciraolo.com/
Shy Ones, Simona Ciraolo, Flying Eye Books
Hug me, Simona Ciraolo, Flying Eye Books
The Sleeping Beauties And Other Mystery Illness, Suzanne O'Sullivan, Picad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