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를 향하여, 애거서 크리스티
토머스 : 네가 케이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 오드리.
오드리 : 그렇지 않아, 토머스. 케이 - 케이는 정말 사랑스러워.
토머스 : 겉만 그렇지. 그 안은 달라.
오드리 : (살짝 즐거운 듯) 나의 아름다운 영혼 같은 것을 말하는 거야?
토머스 : 아니, 너의 뼈.
(오드리 웃음)
- <0시를 향하여, '하얀눈과 붉은장미'> 토머스와 오드리의 대화.
이 소설 - 0시를 향하여 Towards Zero - 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역시 오드리의 뼈 (골격, 두개골...?).
살인은 그 이전부터 진행 중이었다. 각기 다른 상황과 사람들, 각자의 이유, 동기, 그 모든 것이 모여서 0시를 향한다. 살인은 그 마지막에 완성된다.
- <0시를 향하여>
It's Zero Hour now.
- Superintendent Battle <Towards Zero>
0의 시간. 사건이 일어난 순간을 0이라 하면 그 순간에 다다르기까지 연결된 사건들과 거기에 얽힌 사람들 마치 그 사건을 향해 가는 듯하다. 대부분은 우연이지만, 0을 기준으로 보면 필연처럼 보인다. 그래서 운명이란 게 그럴 듯 해 보이는 거겠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거기에 있는 것 - 그저 그뿐인 것이 중요할 수도 있어요.
- 앵거스를 담당하는 간호사의 예언(?), <0시를 향하여>
이 소설은 그 각각의 우연을 훑어, 다시 0의 순간으로 와서 바라본다. 생각보다 이 소설 팬이 적은가 (구글해 봤을 때) 싶던데, 나는 많이 좋아한다. 내 마음속 애거서 크리스티 3대 로맨스, 그리고 스릴러다.
Towards zero 라는 제목도 멋지다. 애거서 님 제목 짓는 감각도 좋군요. 도로시 L. 세이어스도 제목 참 잘 뽑는다 싶은데. 이 분은 광고회사에 다녔다 해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다시, 오드리의 뼈.
이런 사람을 아름답다고들 하겠지,라고 묘사하는 것과, 작가 본인의 취향을 (의식해서든 무의식이든) 공들여 묘사하는 것은 읽다 보면 확연한 온도 차이가 있다. 크리스티 소설에는 아름답다고 묘사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핼로윈 파티>의 미카엘 (Michael, 마이클이라고 읽겠지만 그렇게 읽으면 내 마음속의 뭔가가 화를 내서)
He was tall, slender, with features of great perfection such as a classical sculptor might have produced.
- <Hallowe'en party, Chapter 11>
그리고 <0시를 향하여>의 오드리. 데임 Dame 애거서, 이런 취향이셨군요.
Her features were small and regular, a straight little nose set in a small oval pale face. With such colouring, with a face that was pretty but not beautiful, she had nevertheless a quality about her that could not be denied nor ignored and that drew your eyes to her again and again. She was a little like a ghost, but you felt at the same time that a ghost might be possessed of more reality than a live human being.
- < Towards Zero, 'Open the Door and Here are the People'>
데임 애거서, 이 소설 쓰기 전 (1944년 발표)에 아주 근사한 누군가의 두개골이라도 발굴하셨던 겁니까.
Audrey was sitting on the corner of the balustrade. In the bright moonlight her beauty came to life - a beauty born of line rather than colour. The exquisite line from the jaw to the ear, the tender modeling of chin and mouth, and the really lovely ones of the head and the small straight nose. That beauty would be there when Audrey Strange was an old woman - it had nothing to do with the covering flesh - it was the bones themselves that were beautiful.
- <Towrds Zero, 'Snow White and Red Rose'>
색소가 옅은,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 고대 조각상 같은, 어쩌면 이런 부분은 미카엘과 비슷한가. 대체 발굴한 뼈(있었을 거라고 거의 확신함)가 얼마나 예뻤던 거죠...? 아니면 근사한 뼈와 얼굴선을 지닌 여성분을 길에서라도 우연히 보셨던 건가요. 이제 오드리 Audrey라는 이름만 봐도 뼈가 예쁠 것 같은 이름이네, 한다. 어딘가에서 본 고양이 이름이 오드리였는데 그 고양이 뼈가 예쁜가 싶었던.
예쁜 뼈, 하니
1990년 4월 1일, 내 동생 형우는 녀석보다 엄지손가락 하나 정도 키가 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게 도드라진, 찬란한 광대뼈를 한, 20대 초반의 여자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졌다.
- 듀나 <면세구역>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형우가 좇는 그 여자의 모습은 콘트라스트가 두드러져 점점 더 근사해져 갔다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그 여자는 찬란한 광대뼈의 소유자였다고).
- 듀나 <면세구역>
찬란한 광대뼈 vs. 아름다운 두개골과 섬세한 얼굴선.
작은 유령, 달의 요정, 뼈가 예쁘고 그 자리에 없을 때 더 생각나는 사람 ('She makes herself felt') 오드리 Audrey.
그에 대비되어 눈과 머리색이 화려한 미인 케이 Kay.
영앤핸섬앤리치, 에서 영을 뺀(30대 중-후반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으로 치면 젊은가 싶지만 1944년 소설이니. 20대 중반인 케이에 비하면 나이가 있고), 여러 분야에서 운동선수(테니스, 골프, 수영)로 활약하는 네빌 Neville.
오드리는 네빌의 1번 부인. 8년간 결혼생활, 이혼, 그리고 네빌과 케이가 결혼해서 이제 1년 정도. 케이는 오드리와 네빌이 이혼한 원인인 듯하며 케이가 작정하고 따라다녔다고 Lady T는 네빌이 잘못한 게 아니야를 주장한다. 네빌에 대한 일반적인 의견은, 요약하자면, 퍼블릭 스쿨 (영국) 스포츠맨. 지더라도 근사하게 (아임쏘쿨). 테드 래티머는 그래서 네빌이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없는 거라고 한다.
테드 래티머 Edward "Ted" Latimer. 호텔 도마뱀 ('decorative young gentleman')으로 묘사되는 근사하고 예쁘게 생긴 케이의 소꿉친구. 15살 때부터 케이를 사랑했다고 하며 여전히 따라다니고 있다.
말레이로 가서 지난 7년간 영국으로 오지 않다가 하필 딱 그 해에 Gull's point (Lady T의 저택. 모두가 모이는 장소)에 나타난 오드리와 남매처럼 자랐던 토머스 로이드 Thomas Royde. 말을 거의 하지 않아 진중한 느낌이라
토머스 로이드는 말을 아껴하기에 (a man singularly economical of words)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친구들은 토머스의 침묵의 분위기를 살펴 그의 반응을 유추하는 법을 알아내곤 했다.
- <0시를 향하여>
진실된 토머스 True Thomas 라 불리기도.
레이디 트레실리안 Lady Tressilian = Lady T. 판사였던 남편 (Sir Matthew Tressilian)이 집(=Gull's point) 앞바다에서 보트를 타다가 보트가 뒤집어져서 그 아래로 빠지는 바람에 익사하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비극을 겪었다. 남편이랑 사이가 좋았기에 다들 이사하지 않을까 했지만 이 집에 있어야 남편이 느껴져서 외롭지 않다고 한다. 자신의 죽음도 남편과 같은 빠른 죽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서서히 쇠약해져서 자리보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어조에, 자기 세대의 가치에 대한 확고함이 있지만 이 집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이 존경하고 애정을 표하는 것을 보면 성격이 좋은 듯.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의 이런 노부인에 대한 분류가 필요하다. 누가 했을 것 같은데. 이런 할머니 캐릭터 좋아하는데 크리스티 소설에서 만나면 불안하다. 죽을 것 같다고...
메리 Mary Aldin. Lady T의 먼 친척으로 Gull's point에 살면서 집안을 관리한다. 컴패니언, 하녀장, 비서를 겸한다.
매년 여름마다 네빌 스트레인지 Neville Strange는 부인과 함께 대부 (매튜 경)의 미망인 Lady T의 저택 Gull's point (바닷가 절벽에 위치)를 방문해서 2주일 정도 지낸다. 네빌의 이혼한 전 부인 오드리도 방문하지만 다른 시기(9월)에 가기 때문에 겹치지 않았는데 이번 해에는 같은 시기에 Gull's point를 방문하게 되고, 네빌은 오드리와 자신의 재혼한 아내 케이가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표한다. 오드리는 그러겠다고 하고 케이는 분개하며, Gull's point의 사람들 - Lady T, 메리, 고용인들 - 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하며 조마조마하고 긴장에 가득한 9월의 2주를 견디기 시작하는데...
Neville knows that he has behaved badly - he wants to feel comfortable about it all.
- Lady T in <Towards Zero>
이때 오드리와 어린 시절 남매처럼 자라고 그녀에 대한 짝사랑을 간직한 채 말레이로 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던 토머스 로이드 역시 Gull's point에 합류.
Lady T는 요즘 것들은...! 하며 분개하지만 어쨌든 고인이 된 남편이 대자인 네빌을 아꼈고 (Lady T가 사망할 시 모든 재산이 네빌과 '그의 아내'에게 가기로 되어 있다) 오드리에게 방문 시기를 바꾸라고 하기도 마땅치 않으니 3명이 모여드는 것을 두고 보게 된다. 그러다가 슬슬 상황을 관전하는 것을 즐기게 되지만. 치정사건 재미있죠. 이건 뭐 자기 집에서 아침드라마 찍는 기분이지 않을까.
근처의 호텔에는 케이의 소꿉친구 테드 래티머, 매튜 경과 알고 지냈던 은퇴한 판사 트레브스 Mr Treves, 지난겨울 이 동네에서 자살을 시도했다가 구조되었던 앵거스 Angus McWhirter (발음은 앙구스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사촌(이 동네 형사)을 만나러 휴가차 놀러 온 배틀 경감 Superintendent Battle 이 배치된다 (성 surname이... Strange와 Battle)
...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사건 한 두 개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 소설은 구성을 보면 3부작 미니 시리즈로 만들면 좋겠다 싶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잡담을 나누고 싶은 부분이 다 스포일러라서 어쩔 수가 없어요. 크리스티 소설 좀 읽은 사람은 사건 일어나기 전 피해자는 몰라도 범인은 누구인지 대충 눈치챌 수 있지만 우리 모두 알지 않습니까, 크리스티 월드에서 중요한 건 범인 따위가 아니죠. 그렇지만 이 소설은 한 번은 모르고 읽어야 해요, 안 읽으신 분은 부디 이 창을 닫고 읽고 오시기를.
처음 이 소설 읽었을 때 내 감상은 - 추리/스릴러에 로맨스 같은 거 얹고, 거기에 집착이랑 광기 같은 걸 끼얹나...?
무슨 일이든 터질 것 같아서 Gull's point의 모두가 조마조마해하며 아슬아슬한 상황을 어떻게든 무사히 보내려고 하는 도중 Mr Treves가 누군가의 장난(?) 같은 일에 휘말려 심장에 무리가 가서 죽고, 오드리-네빌-케이의 약속된 삼각관계는 더더욱 그렇게 될 법한 상황으로 비틀어지고, 결국 Lady T가 자기 침실에서 둔기로 머리를 맞고 살해당한다. 용의자는 전원 - 네빌, 오드리, 케이, 메리, 토머스, 심지어 테드. 단서는 대화와 상황 여기저기에 뿌려져 있는데 많은 단서가 얘네들 모두에게 적용 가능하다. 이렇게 적절히 흩어서 우리를 고뇌하게 만드십니까 데임 애거서.
하지만 이 소설에서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는 아름다운 뼈의 오드리.
'I would just like to say - ' she spoke nervously and quickly. 'You think Neville did this - that he killed her because of the money. I'm quite sure that isn't so. Neville has never cared much about money (미스 마플이 분개할 것 같은데). I do know that. I was married to him for eight years, you know. I just can't see him killing anyone like that for money - it - it - isn't Neville....... '
- Lady T 살인사건 수사 중 오드리의 증언, <Towards Zero>
네빌을 감싸는 것 같지만 (아마 오드리도 그런 의도로 말한 거 겠지만) 오드리는 '네빌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네빌은 돈을 위한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 는 것이고, 이건 다른 이야기다. 다시 읽으면서 생각하니, 오드리는 무의식 중에 - 지금까지 겪은 정신적 학대에 묻혀 - 네빌이 살인을 충분히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드리에 대한 연민은 이렇게 깊어집니다.
And yet, if I'm right, money doesn't enter into this at all. (미스 마플이 뭐라고 할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없다고) If there's such a thing as murder for pure hate, this is it.
- Battle in <Towards Zero>
오드리에 대해 모두들, 얘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 건지, 감정을 느끼기는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들 한다. 저렇게까지 감정을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Inspector Leach (이 이름은 발음이 리치? 인가... 레치?)도 생각하고. 하지만 배틀 경감은 정확히 짚어낸다 - 오드리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아주 강한 어떤 감정을 품고 있어서 거기에 가려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그 감정이 사랑인지, 증오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답은 두려움이었지만. 오드리에게 네빌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조차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어떤 것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컸다는 거다. 8년간 결혼생활에서 뭘 겪은 거야. 그런데 뭘 겪었다, 를 확실하게 짚을 수 없다는 게 더 문제였다. 오드리는 자기가 왜 이렇게, 무엇 때문에 두려운지 모르겠고, 결국은 자기가 뭔가를 상상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정신에 문제가 생겼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기에 이른다. 그 과정이 상상이 되니 읽는 사람(=나)도 덩달아 무서워진다.
Audrey gave a sigh. Her small clear-cut face was peaceful and pure as a cameo. 'It's almost a relief. I'm glad it's - over.'
- Audrey in <Towards Zero>
이 장면은 참 슬프다. 도대체 얼마나 두려움에 짓눌린 거야. 배틀 경감이 굳어버릴 수밖에. 몇 달 전에 자기 딸 실비아(0으로 향하는 조각중 하나)의 눈에서 똑같은 표정을 봤겠지.
토머스 로이드도 말을 안 하는데 - 지인들이 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침묵의 분위기로 유추할 지경이라는 게, 아니 왜 그렇게까지 해 줘야 하냐고 - 다들 진실된 토머스 같은 별명이나 붙여주고 있는데, 오드리가 말을 안 하는 건 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의심하는 것이 대비된다. 이런 관찰과 묘사에서 데임 애거서께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뭔가 대칭이 맞지 않는 것을 보면 이제 푸아로의 지인들은 저거 푸아로가 신경 썼을 법한 뭔가가 있었는데, 하고 떠올리고 있다. 금속으로 만든 꽤 큼직한 손잡이가 왼쪽이 오른쪽보다 깨끗하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눈치채고 푸아로가 생각났지만 뭐 때문에 생각난 건지 끙끙거리다가 결국 '손잡이 (반짝거림의) 비대칭'을 깨닫는 배틀 경감, 부분을 읽다가 좀 웃었다. 푸아로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15년쯤(맞나) 알고 지내면 저렇게 됩니까.
그리고 로맨스. 2가닥, 중에 하나.
Go home. You needn't to be afraid any longer. D'you hear? I'll see that you're not hanged.
- Angus in <Towards Zero>
굉장히 인상적인 '첫눈에 반한 순간'이다. 자신이 자살을 시도한 정소에서, 이제 자살을 했던 동기조차 다 해결되었고, 더 이상 죽을 마음도 없지만 여전히 왜 내가 살아났나 분노하는 남자와, 어떤 거대한 두려움에 짓눌려 절벽에서 뛰어내려서 빠르게 끝내버리려고 달려온 여자. 당신이 살인자인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지도 않고 그저 당신이 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겠다고 단언하는 장면. 이 장면 하나로 <Towards Zero>는 내 마음속 애거서 크리스티 3대 로맨스에 들었다.
진실이 가장 중요하고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거짓을 말하지 않았던 남자 (강하면 부러진다는 말처럼 결국 자살시도까지)가, 그래서 그 정직함과 결벽성에 대한 보상과 성취를 얻어낸 사람이, 처음 본 여자를 위해서 본 적이 없는 것을 봤다고 (그게 사실일 것이라고 유추하기는 했지만), 법정에서 증언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라고. 이게 첫눈에 반한 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야기들.
테드 래티머가 메리에게 나는 당신들 다 진심 싫다고 할 때 메리가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놀라는 게 신기했다. 진짜로 몰랐어...? 자기들도 테드와 케이를 떨떠름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면서 - 아무래도 계급차 - 그쪽이 자신들을 싫어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 케이가 Gull's point의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은 알고 있을까. 하긴 케이는 테드만큼은 아니지. 오드리와 비교되는 것이 싫은 거니까.
케이. 사실 얘는 자기 무덤 판 거 아닌가 싶지만, 아직 좀 어리고. 예쁘게 생겼고 말도 잘 통하고 취향도 잘 맞는 소꿉친구가 있지만 (심지어 15살 때부터 케이만 바라보고 있는. 먹고살려고 부잣집 마나님들 꼬시고 있지만), 근사하고 돈 많고 더 많은 돈을 상속받을 남자를 노려서 결국 결혼했는데, 막상 현실은 남편이 전 부인에 대한 미련이 가득하고. 집안 곳곳에 오드리의 그림자가 남아있다고 분개할 때는 <레베카>도 좀 생각났지만 <레베카>의 '나' 와는 다른 캐릭터니 (얘는 막심 홀랑 주워 들고 댄버스 부인과 승부 끝에 맨덜리 점령할 것 같다). 게다가 이 경우는 집안에 남아있다는 오드리의 그림자도 좀 의심스러운 게... 그거 혹시 네빌의 밑 작업 아닌가. 아니면 네빌에 대해 뭔가 느꼈지만, 오드리는 그걸 자기가 이상한 것이라고 결론 내린 것 (무엇 때문에 두려운지 몰라서 더욱 두려움에 짓눌렸던)에 반해서 케이는 이거 전부 오드리 탓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오히려 그래서 케이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지만. 네빌 죽고 유산 잘 챙겨서 테드랑 잘 살았으면.
나이 더 들어서 오드리랑 케이가 진짜 친해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지만, 안 되겠지. 케이는 아마 남프랑스나 어딘가에 갈 것 같고 오드리는 앵거스랑 칠레 가겠지.
'So you see, ' said Audrey, 'you are a miracle. My special miracle.'
- <Towards Zero>
<Towards Zero> Agatha Christie, HarperCollins Ebook edition (Feburary 2017) 엉성한 번역은 내가 한 것.
<면세구역> 이영수(듀나), 국민서관
Kay는 열쇠를 지키는 사람 Keeper of the key를 의미한다고 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Kay
https://www.sheknows.com/baby-names/name/kay/
Angus는 선택, 또는 그 단 하나 (choice, the one)를 의미한다고 한다
https://www.scottishboysnames.co.uk/ang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