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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 Mar 31. 2023

백 년과 지혜 (2/2)

교토 케이분샤 서점 이치조지점 恵文社 一乗寺店

교토 케이분샤 이치조지점은 아름다운 서점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나는 못된 버릇이 나와서 서점이 아름답다는 게 뭐려나 건물? 책? 분위기? 하며 갔는데 케이분샤 서점에 도착하자마자 감탄했다. 죄송합니다(?) 그렇네요 아름답네요.


고즈넉한, 옆으로 긴 건물 앞면은 나무와 벽돌, 유리. 양쪽에는 전시장과 잡화점이 있고 그 사이에 서점이 있다. 조명, 서가의 배치, 테이블, 벽장식, 심지어 서점이 있는 동네 거리까지. 처음에는 감탄하다가 점점 빠져들었다. 홀린다고 하야 할까, 여기 살고 싶어... 조용하지만 적막하다는 느낌은 아닌 분위기는 동네의 분위기와 닿아있다.


마침 하고 있던 전시회

그림/일러스트 위주로 책을 보며 서가를 거닐었다. 서점이 생각보다 꽤 커서 한참 돌아다닐 수 있어 매우 행복했다. 깔끔한 흑백의, 그리운 분위기의 일러스트 포스터가 멋진데 <계절의 기록 (Records of the seasons)>이라는 일러스트집에 포함된 그림이라 책 1권을 집었다 (2권이 최근에 나왔던데 1권이 좀 더 마음에 들었다). 팬데믹 일기 일러스트집, 글은 하나도 없이 그림으로만 이야기를 충분히 끌어나가는 학원청춘로맨스 만화 (독립출판물 같았음)... 그림책 코너에 갔더니 에롤 르 캉 그림이! 표지만 보고는 <한여름 밤의 꿈>? 싶었는데 <들장미 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로도 알려진). 당연히 집어 들고, 혹시 사카이 고마코 님이 그린 <붉은 초와 인어>(오가와 미메이)가 있나 살펴봤다. <붉은 초와 인어>는 사카이 고마코라는 이름을 알기 전에 삽화 몇 개를 웹의 어딘가 에서 본 적이 있다. 이 서늘하고 쓸쓸하며 아름다운 이야기에 사카이 고마코 님의 그림이 곁들여지니 딱 맞아 완성된 느낌이었다. 도쿄 햐쿠넨에서도 이 책은 없어서 그 후로 들렀던 서점들에서 다 찾아봤으나... 여기도 없나 하고 포기하려는데... 찾았다!

<붉은 초와 인어>는 전체적으로 보니 기억했던 것보다 더 서늘하다.



다른 이야기인데, 사카이 고마코의 그림을 보다가 이런 느낌을 아는데 싶었다. 그림체 같은 것, 이라기보다는 느낌이...

사카이 고마코, <숲의 추(노트?)> 중에서

그러니까 이런 느낌에서, 후지와라 카오루의 그림이 떠오른다. <네가 세상을 부수고 싶다면>의 작가인데, 이 만화는 아주 옛날에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만화다. 소녀와 그녀가 그저 바라만 보던 짝사랑하던 남자가 나온다. 처음에는 남자가 뱀파이어다. 둘은 서로를 구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랑하는 것 같으면서도 증오하고, 서로의 그림자를 그리워한다. 이 관계는 한 번이 아니라 계속 반복되고 있었고... 에필로그까지 보고 나면 아 이런 반짝이면서 완전하지 않고 그래서 더 슬픈 이야기라니... 작가님은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이런 걸 그리십니까 싶었다. 그때 왜 구해두지 않았나 싶은데 내가 처음 읽었을 때 이미 절판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학산에서 나왔음). 아마 대여점이나 동아리 방에서 읽었던 듯. 트위터에서 이 만화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몇 년 전에 일본에서 속편이 나온 것 같다는 정보를 접했다. 이번에 찾아봤지만 못 샀다... (결국 아마존에서 주문은 했지만).



그리고...


이치조지, 특히 케이분샤가 있는 거리는 어쩜 이런가 싶다. 뜨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브릴. 오늘의 정식이 깔끔하고 맛있는 동네 카페 츠바메. 굉장히 옛날 느낌이 나는 케이크 가게 가토 몽블랑. 생초콜릿이 있어서 하나, 그리고 케이크를 한 조각 샀는데 (케이크가 화려하지는 않은데 매우 섬세하다), 숙소에 가져가서 먹으며 후회했다. 적어도 생초콜릿은 한 상자를 샀어야 했어...!


이치조지는 심지어 전철역도 귀여운데, 전철이 들어오는 걸 보면서 마음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거 컨셉이지?! 심지어 전철까지 이렇게 한가롭고 귀여워야 하는 거야?



교토는 헤이안쿄 (그러니까... 히카루 겐지와 음양사와 마쿠라노소시), <후쿠야당의 딸들>, 그나마 가장 최근인 <골목길 연가> 정도로만 알아서 비행기에서 책을 좀 읽었다. <교토의 밤 산책자> 같은. (속으로) 한참 웃으며 읽다가 예전에 다른 책이 비슷한 느낌으로 재미있었는데? 싶어서 봤더니 저자분이 예전에 읽었던 <아무튼 스릴러>의 이다혜 님이었다.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임경선

교토의 밤 산책자, 이다혜

하루하루 교토, 주아현


케이분샤 https://www.keibunsha-books.com/

아브릴 Avril pépin https://www.avril-kyoto.com/user_data/about?translate[languag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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