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햐쿠넨 百年 서점
어딘가에 가게 되면 그곳의 동네 서점을 검색한다 (그다음은 동네 카페). 낯선 동네에 가서 마음이 번잡할 때는 서점이나 카페에 간다. 구글맵에 반짝반짝하게 표시를 해 두면 일하다가 도망갈 곳이 정해졌다 싶어서 그런가 마음이 좀 가볍다.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던가, 누군가의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어떤 서점을 좋아하는가, 에 대한 것도, 한 사람에 대해 (조금은) 알려주지 않을까.
(1) 어떤 서점에서는 멋지다, 분위기가 좋다, 하고 감탄하지만 책이 아닌 문구류나 기념품 정도만 사게 된다. (2) 어떤 서점에서는 (계획에 없는) 책 한두 권 정도를 사게 된다. (3) 어떤 서점에서는 "그냥 여기 자리 깔고 살고 싶다"라고 맹렬하게 바라게 된다. 이런 서점에서는 네다섯 권 정도를 홀린 듯 안고 다니다가 마지막에 결정의 순간에 두권 정도를 고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국 세 권을 사서는 돌아가서 (왜 세 권만 샀지) 후회한다.
(3)에 해당되는 서점들에 대해 좀 더 덧붙이자면, 우리말이나 영어로 된 책을 다루는 서점의 경우는 '이 서점의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책을 다 읽고 싶어!'가 포함되는 감상인데, 언어를 모르는 경우에도 이 언어를 배우면 (서점이니까 어떻게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여기 책들을 다 사랑하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곳이다.
도쿄 키치조지의 햐쿠넨 서점, 그리고 교토 이치조지의 케이분샤 서점은 둘 다 많이 (3)이다.
나는 일본에 가면 글을 막 배우는 아이의 심정이 된다. 내 일본어는 예에-전 고등학교 제2 외국어 수준에서 멈췄다가 급격히 하강했기 때문에, 지금은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읽을 수 있고 알고 있는 한자를 바탕으로 적당히 상상력을 더해 뜻을 추측하는 정도다. 그러다 보니 길을 가다가 보이는 글자란 글자는 다 신이 나서 읽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서점에 가면? 표지보고 제목보고 추리력을 쥐어짜다가 난 왜 일본어를 못 읽나 좌절하고 그러느라 정신없다. 그리고는 그림책을 보러 간다.
햐쿠넨(백 년) 서점은 예전에 갔을 때 너무 좋았기 때문에 (말했듯이 많이 (3)이다) 이번에 도쿄에 가면서 (일 외적으로는) 가장 기대했던 곳이다. 내가 아무리 바빠도 여기엔 가겠다... 결국 도쿄일정 마지막날 저녁에 갔다. 키치조지역에서 내리면 찾기 쉬운 곳인데(아마) 나는 두 번쯤 방향을 틀었고 (그러다가 작은 까늘레 전문점에서 딸기 까늘레를 샀다), 마침내 건물을 찾아서 2층으로.
서점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큰 테이블의 책들이 반짝거린다. 그런데 내가 읽을 줄을 몰라...! 공부하지 않은 내 잘못이 크다. 햐쿠넨 서점은 책장의 높이도 적당하고 간격도 마음에 든다. 책장 사이에 들어가 책 등을 보다가 꺼내서 뭘까 추측해 보고 그러다 보면 행복하다. 읽을 수 있으면 더 행복하겠지. 그리고 그림책코너로 가서 이것저것 살폈는데 (몇 년 전에 여기서 에롤 르 캉 그림의 <눈의 여왕>, 그리고 이세 히데코의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속편인 <그는 거대한 나무 같은(? 적당히 번역)>을 샀기 때문에 기대가 컸음) 역시나 이런 책이...
배의 아이.. 페리나? 저자가 칼비노인가...? 그림이 너무 아름다운 책이고, 내용도 흥미진진해 보이는데, 어쩐지 그림이... 이런 그림 아는 데? 싶었다.
https://brunch.co.kr/@flatb201/301
카페에서 책 읽기 님이 소개하셨던 사카이 고마코...! 속으로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사카이 고마코 그림의 책을 대여섯 권쯤 찾아 늘어놓고 고민을 시작했다. 어느 책을 살 것인가. 페리나, <여우의 신님>은 꼭 사고, <숲의 추(노트?)>는 에세이인가 싶은데, 어쨌든 각 장마다 붙은 일러스트가 너무너무 좋다. 아기고양이를 길에서 데리고 오는 이야기(아마?)도 좋다. 캠핑에 간 어린아이가 혼자 들판에서 (키가 큰 풀 숲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장면도 생생하게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데... 아니 이 토끼들은 또 왜 이렇게 귀여운 걸까...
결국 세 권을 샀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서 사지 않았던 책들이 아른거려서 당연하게 후회했다. 심지어 까늘레도 맛있어서 왜 하나만 샀을까 후회했다 (나는 이 글과 다음 글 내내 후회를 반복한다).
*서점에서 깨우치는 언어: <열세 번째 이야기>에서 마가렛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커다란 서점을 돌아다니며 책의 위치를, 모양을, 글자를 그리고 언어를 '알게'된다.
https://brunch.co.kr/@minjbook/36
먼지, 아토피, 기관지염, 비타민D 부족을 걱정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오래된 서점을 누비며 글에 익숙해지는 어린 시절 이라니. 어쨌든 로망이다.
百年 (햐쿠넨) 서점 https://linktr.ee/100hyakunen
Book Nerd Tokyo https://www.booknerdtokyo.com/articles/my-top-10-tokyo-bookstores-of-2019
이 블로그 글을 왜 도쿄에 가기 전에 보지 않았을까. 봤더라도 바빠서 다 찾아가지는 못했을 것 같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여기 서점들 하나씩 다 가보고 싶다.
배(pear)의 아이 페리나(Perina) - 배와 함께 팔린 소녀. 이탈로 칼비노 버전.
https://en.wikipedia.org/wiki/The_Little_Girl_Sold_with_the_Pears
왕에게 해마다 네 바구니의 배를 바쳐야 하는 남자가 있었다. 어느 해에 배가 모자라서 남자는 막내딸을 바구니 하나에 넣었다. 왕궁에서는 소녀를 구출해서 다행히 돌려보내지는 않고, 하녀로 키운다. 소녀는 자라면서 왕자와 친해지고 둘 사이를 질투하던 다른 하인의 계략으로 왕은 소녀에게 마녀(?)의 보물을 훔쳐오라고 명령을 하는데...
뒷 내용은 다른 동화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칼비노 버전에서 소녀는 배나무 위에서 잠을 자는데 아침에 배 나무 아래의 작은 할머니가 소녀에게 지혜를 나누어준다 (다른 버전에서는 왕자가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