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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 Feb 24. 2021

비타민이라도 먹어...

열세 번째 이야기 - 다이앤 세터필드

"Picture a conveyor belt, a huge conveyor belt, and at the end of it a massive furnace. And on the conveyor belt are books. Every copy in the world of every book you've ever loved. All lined up. Jane Eyre, Villette, The Woman in White."
- p. 240 The thirteenth tale, Diane Setterfield

인용에 이어서 - 벨트가 작동되고 당신에게는 총이 있다. 저 책을 구하기 위해서는 레버를 쥐고 있는 저 사람을 쏴서 죽여야 한다. 어떻게 하겠어요?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생각이 났다. [13번째 이야기]에 그런 장면이 있었지. 제인 에어. 셜리. 폭풍의 언덕...... 모두 타서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는데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까. 레버를 쥔 사람을 총으로 쏘아 버리면 막을 수 있는데. 마가렛 - 저 질문을 들은 사람 - 은 꿋꿋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지만 뒤돌아서 중얼거린다. 거짓말을 했어.


제인 에어로 대표되는 그 근처의 소설 - 브론테 자매, 디킨스, 제인 오스틴, 윌키 콜린스 정도를 포함하려나 - 을 그렇게 아끼지는 않지만 (폭풍의 언덕만 좋아한다. 다른 브론테 자매는 소설보다 그 사람들 삶에 대해 읽는 것을 더 좋아한다. 다음에 [The Bronte Cabinet]에 대해 뭔가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소설들에서 파생된 이야기들은 좋아한다. 없어서 못 읽지. [13번째 이야기]가 그렇고, 새러 워터스의 소설(특히 [핑거 스미스]와 [끌림])이 그렇다. 제인 에어는... 어렸던 시절 중반부까지는 엄청 좋아했는데 "독자여-"에서 책 던졌다 (다시 주워와서 읽었지만). 대체 왜 어째서...! 로체스터와 그 언저리 타입으로 분류되는 캐릭터를 내가 엄청나게 싫어한다는 사실을 이때쯤 깨달았지. 그 음침한 기숙사와 헬렌, 아델이 좋아서 몇 번 더 읽기는 했지만.


어쨌든 제인 에어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에게도 있다. 저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있다면 포기할 수 없는 책들. 세상에서 그 책들이 다 사라진다고 하면 어떤 선택을 할까.


[13번째 이야기]는 내가 처음으로 영어로 독파한 소설이다(아마?). 뉴욕에서 살기 시작했던 무렵 집 근처 서점을 지나다가 발견하고 -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 그냥 무작정 사서, 읽었다.

https://brunch.co.kr/@minjbook/8

언어 때문에 꽤 고생했던 시기였는데 소설 안쪽 이야기가 빅토리안 치정 소설을 죄다 끌어모았어! 라서 (거기에, 흡혈귀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카르밀라 분위기 좀 끼얹은?) 술술 읽히더라. 겉쪽 이야기에는 책, 소설, 이야기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I return the book to its original position, and study my father's face. He cannot hear me. He cannot see me. He is in another world, and I am a ghost.
- p. 10 The thirteenth tale, Diane Setterfield


그리고 장소. 초반에는 커다란 고서점이 나오고 중-후반부에는 요크셔 황야 어디에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저택(Harrogate근처다)에, 근사한 서재가 나온다. 물론 이런 곳에 가고 싶지는 않다. 오래된 건물 - 특히 저 요크셔 어딘가의 저택  - 은 우선 (1) 춥다. 진짜로. 난방이나 에너지 효율 같은 게 어디 있어 (2) 삐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건물은 읽을 때는 좋지만 살아보면... 저 어디에서 뭐가 (주로 벌레나 쥐) 나올지... (3) 욕실과 배관을 생각해봅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니 (4) 어둡다. 밖도 어둡지만 (영국의 겨울은 크리스마스 장식 때문에 그나마 살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실내도 어둡다. 하지만 읽으면서 그 분위기에만 취하는 것은 좋으니까. 그런 묘사를 읽으면서 그 세계 안에 침잠하는 기분을 즐긴다.


마가렛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거대한 고서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글을 읽는 법을 익히고 (배우는 게 아님) 책의 세계와 현실세계가 맞물리면 당황하는 아이는 어딘가 친근하다. 벌레와 먼지 때문에 없던 아토피도 생길 것 같지만 그래도 저런 어린 시절은 로망이쟎아요. 읽어도 읽어도 계속 읽을 것이 있는.


하지만 저 아이는 커서 - 마가렛. 겉쪽 이야기의 주인공1 - 끼니를 핫코코아로 때우는 어른이 됩니다. 덕분에 다 읽고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에 남은 건 마가렛과 핫코코아다. 그 서재며 고서점이며 카리스마 넘치는 소설가(비다 윈터. 안/겉쪽 이야기 주인공2)며 상냥한 거인이 굽는 케이크 같은 건 다 흐릿해지고. 얘 계속 핫코코아만 마셔...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던 것이다. 괴혈병 안 걸립니까. 비타민D는? 거기 영국이고 겨울이쟎아. 게다가 너(=마가렛) 밖에 안 나가고 내내 책 읽거나 미스 윈터를 인터뷰하던가 하고 있는데...(후반부에 외부로 나가기는 하지만. 어쨌든 저기 영국이고 심지어 북부. 겨울.) 아직 20대라고 그렇게 사는 거니. 그러면 3-40대 넘어가서 후회할 거라고 - 읽는 내내 얘 붙들고 짤짤 흔들고 싶더라. 아마 이 소설 등장인물을 중에 그러고 싶던 사람 꽤 있었을 거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의사가 내가 하고 싶던 말을 해 줘서 좀 안심이었다.  


생각난 김에 책 꺼내서 표시했던 부분 좀 읽다가 핫초콜렛도 끓였다. 마가렛은 그냥 가루 (주로 어느 브랜드였을까. 캐드베리?)로 된 걸 우유 데워서 풀어마시지만, 나는 엄청 진하게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판 초콜릿을 녹인다. 여러 버전을 시도해 봤지만 (뉴욕 마리벨이랑 파리의 안젤리나가 그립다. covid-19 덕분에 이 섬 동네를 벗어날 수가 없다) 요즘은 5분 안에 만들 수 있는 쪽으로 정착했다:

- 75-85% 초콜릿 20g (판 초콜릿 1/5 정도)

- 55% 초콜릿 10-20g 정도 잔에 넣고

- 70ml 정도의 우유(oatly barista edition도 시도해 봤는데 괜찮았음)를 적당히 데워 붓는다.

진하게 마시고 싶으니 건강(...)을 생각해서 우유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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