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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 Aug 22. 2020

코끼리는 기억한다

Monsieur Poirot and Mrs Oliver

Did her mother kill her father or was it her father who killed the mother?
- Agatha Christie, [Elephants can remember]
My mother is innocent
- Agatha Christie, [Five little pigs]


회색 뇌 세포들의 활동을 응원하는 푸아로가 가장 돋보이는 무대는 결정적인 (물질적인) 증거가 거의 없다시피 한 사건. 10년도 더 된 오래된 사건이면 더. 정황 증거, 관계자들과의 인터뷰, 진실과 거짓, 의도하지 않은, 또는 의도된 비밀 - 그리고 Voila - 답을 내놓는다. 푸아로 과거의 진실을 찾다 시리즈:  

- Five Little Pigs

- Hallowe'en Party

- Elephants can remember


핼러윈과 코끼리에는 아리아드네(=Mrs Ariadne Oliver)가 등장한다. 푸아로(이 사람을 에르퀼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Mrs Oliver는 마음속으로 늘 아리아드네라고 부르고 있어서) 에게는 파트너라고 할 만한 사람이 네 명쯤 있는데 - Miss Lemon, Inspector Japp포함 - 역시 아리아드네랑 놀 때가 제일 재미있다. 웃긴 쪽으로 가산점이 300점쯤 붙는다. 헤이스팅스 (My dear Hastings!)는 선량한 일반인 대표라 그런가 몇 번은 재미있는데

나도 할 수 있어 푸아로! - 굉장해 멋져 푸아로! - (속으로) 으으 이런 잘난 척!!!

을 반복하니, 읽는 입장에서는, 헤이스팅스 씨 사람은 발전을 해야 해요,라고 해 주고 싶어 진다. 홈즈-왓슨이랑은 다르게. 브로맨스가 없어서인가...


푸아로-아리아드네는, 비범한 둘을 붙여봤더니 상승효과를 냅니다. 푸아로가 아리아드네를 재미있어하는 것도 있고

On accasion she maddened him. At the same time he was really very much attached to her.
- Poirot in [Elephants can remember]

뭣 보다 이 둘은 대화가 재미있다.



지금부터는 [코끼리는 기억한다] 스포일러가 여기저기 있습니다.

알고 읽어도 재미있을 소설이지만 처음은 모르고 읽는 게 더 재미있어요.



유명 추리소설가 아리아드네 올리버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궁금하다는 이유로 오찬 문학회 (Literary Luncheon)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생전 처음(!) 보는 Burton-Cox부인이라는 사람이 대뜸 다가와, 당신 대녀 Celia Ravenscroft, 그 애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인 건가요 아니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 건가요 라고 묻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는데!


완전히 잊고 지냈던 10년도 더 지난 사건에 대해 묻는 Bruton-Cox부인이 어처구니없기는 하지만 (심지어 당신 대녀인 Celia에게 뭔가 아는지 물어보고 나에게 알려줄 수 있겠냐고 하니) 이 사람은 이게 대체 왜 궁금한가 가 더 의문인 아리아드네는 이런 일이 생기면 늘 그랬듯이 지난 20여 년간 친분을 쌓아온 탐정 에르퀼 푸아로 (이 두 사람이 이 시점에서 벌써 20년이나 알고 지냈답니다. 그리고 이 소설 배경이 70년대예요. 1970년대. 50년 전이긴 하지만 뭔가 가까워...?)에게 전화를 한다.


푸아로-아리아드네는 따로 봐도 나름 재미있지만 붙여 놨을 때 케미가 웃긴 쪽으로 좋다.


(푸아로를 찾아온 아리아드네가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뭇거리자 푸아로가 나는 외국인이라 다들 나에게 편하게 이야기한다,라고 하자)

'Well, it is rather easy to say things to you,' said Mrs Oliver. 'You see, she asked me about the girl's father and mother. She asked me whether her mother had killed her father or her father killed her mother.'
'I beg your pardon,' said Poirot.

I beg your pardon 적절한 활용법이라고 붙여주고 싶다.

' ... ...
Ah well, you must look for more elephants. It is your turn.'
'And what about you?'
'Perhaps I could look for swans.'
'Mon dieu, where do swans come in?'

이 소설의 미스터리는 크게 두 가지

- Ravenscroft 부부 죽음의 진실

- Burton-Cox부인은 왜 알고 싶어 하는가


10년도 더 지난 사건이고 아리아드네는 심지어 그 당시에 영국에 있지도 않았고, Five Little Pigs때처럼 후보군이 살아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코끼리가 등장한다.

'Do people remember?'
'Well,' said Mrs Oliver, 'I was really thinking of elephants.'
'Elephants?'

코끼리가 자기 다리에 바늘을 꽂은 누군가를 몇 년이 지나도록 기억했다가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자 물을 끼얹었다는 이야기 (나는 이 코끼리의 기억력보다 자비로움에 더 놀랐다. 물만 끼얹고 끝내도 되는 거야?). 이 소설 내내 코끼리는 두 사람의 암호 비슷한 게 되어서 여러 사람 당황하게 한다. Desmond (=Mrs Burton-Cox의 아들이고 Celia의 남자 친구)는 아리아드네가 아프리카로 여행 갔다고 착각했으니. 어쨌든, 아리아드네는 몇 년 전의 주소록이며 Birthday Book (처음 이거 읽고 뭔가 했는데 요즘 같으면 페이스북인가)을 뒤져서 "코끼리"들을 캐내서 찾아다니며 R부부 사건 쪽으로 대화를 유도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영국인들의 차(tea)에 대한 집착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Now look here, dearie, it's so nice to see you, it is. You must let me give you a cup of tea.'

코끼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사실 위에 살을 붙이고 그 전체를 뭉뚱그려서 기억한다. 그 곁가지를 쳐내고 기반이 된 사실의 조각을 걸러내는 데 최적화된 푸아로 - Five Little Pigs에서 해 보기도 해서 - 는 여기서 빛이 난다 (정말로).

'About elephants,' said Poirot. 'It is important to know certain facts which have lingered in people's memories although they may not know exactly what the fact was, why it happened or what led to it.
... ... '

아리아드네-푸아로 조합의 또 다른 재미는, 이 두 사람의 일하는 방법. 아리아드네는 미스터리를 가져오고, 푸아로는 기대하며 듣고 한 발 걸치고, 그러면 아리아드네는 푸아로를 짤짤 흔든다. 일해라!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이런 것도 모아 오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 있지 마! 설명을 내놔 범인을 내놔 답을 내놔!

'Have you done anything', said Mrs Oliver.
'I beg your pardon - have I done what?'
- Chap 3 [Elephants can remember]
'And what have you done?' said Mrs Oliver.
'You are always so stern, modame,' said Poirot. 'You demand that I run about, that I also do things.'
'Well have you run about?'
'I have not run about, but I have had a few consultations with others of my own profession.'
- Chap 9.

'HAVE YOU DONE ANYTHING?!'으로 보여... 어쨌든, 그렇다고 막 끌려갈 푸아로도 아니고 말은 저러지만 아리아드네도 떼만 쓰는 것도 아니고. 푸아로도 나름 일하니까.


그리고 이 두 사람 대화의 다른 재미있는 점은, 푸아로가 종종 평소 포지션의 반대 방향에 앉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 넌 생각이 너무 많아를 듣게 되는 사람은 보통 푸아로인데 아리아드네랑 붙여놓으면

Poirot sighed.
'The trouble with you, is, ' he said, 'you think so often of something that well might have occurred, that might have been. You give me ideas. If only they were probable ideas also.
... ... '

사건 곁가지로 아리아드네 대사가 재미있다.

'I really remember her(=Celia) much better when she was five years old than at any other age. She has a nursery governess and she used to throw her boots at her.'

Celia의 어머니인 Margaret(=Molly) Ravenscroft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Yes. We were in a sort of pensionnat in Paris together. People used to send girls to Paris then to be finished,' said Mrs Oliver.
'That sounds more like an introduciton to a cemetery than an introduction into Society.'

자 그럼 Burton-Cox 부인은 왜 누가 누굴 죽였는지, 라기보다는, Celia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쪽으로 몰고 가려고 하는가에 대한 진상. 일차적인 동기는 두 사람 (Desmond와 Celia) 사이를 방해해서 결혼을 막자는 거다. 다른 사람들은

- R 부부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죽이고 자살했거나

- R 부부는 동반 자살을 했다

라고 하며 동반자살 쪽에 더 무게를 두려고 하는데 (꼭 누가 누굴 죽여야 한다면 남편이 부인을 죽인 쪽으로) Burton-Cox부인은 꿋꿋하게 Celia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을 거라고, 어머니 쪽에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이런 것은 유전된다고, 자기 아들(Desmond)에게 말하다가 안 먹히니까 (오히려 Burton-Cox부인 본인을 꺼려하게 됨) Celia를 괴롭힌다.


그럼 왜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하는가. 푸아로는 이런 건 돈 문제부터 봐야 한다며 Mr Goby라는 이름의 치트키를 소환한다 (치사하다). 여기서 밝혀지는 Mrs Burton-Cox부인의 요약된 삶 - 전남편이 잘못했네. 본인의 시도도 좀 섬찟하긴 한데 (시간이 더 지났으면 어떤 방향으로 갔을까 생각해 보면 더), 아들이랑 제대로 이야기해 볼 만큼의 애착관계도 형성하지 못한 것이 어찌 보면 안타깝다. Desmond가 어머니와 나는 전혀 맞지 않다고만 말하고 다른 말은 없는 걸로 봐서는 (어머니는 이 일에 끼어들 자격이 없어요 이건 Celia와 내 문제야 반복) 그냥 평범하게 키워준 것 같은데.


Did her mother kill her father or was it the father who killed the mother?

이 질문을 읽은 애거서 크리스트 좀 읽었다는 독자들은 감을 잡는다. 여기엔 답이 없지. 보기가 두 개뿐이라면 답은 다른 곳에 있겠지!


사건의 진상은, 비극이긴 한데, 비극의 원인이... 답답하다.


이 소설의 진정한(?) 미스터리는 따로 있으니.

- General Alistair Ravenscroft (아빠야 엄마야의 아빠) 정체가 뭘까?


아름다운 일란성쌍둥이 자매 중 더 예쁘고 성적인 매력이 있었다는 언니(돌리)랑 사랑에 빠졌다가 (나이차가 20살 넘는다는 건 그렇다 치자) 그다음엔 둘 중 성격이 더 좋고 착했다는 동생(몰리)을 사랑하게 되어서 동생이랑 결혼.

'They were both beautiful,' she said, 'as girls. I heard that from many people. General Ravenscroft fell in love with Dolly, the mentally afflicted sister. Although she had a disturbed personality she was exceedlingly attractive - sexually attractive. He loved her dearly, and then I don't know whether he discovered in her some characteristic, something perhaps that alarmed him or in which he found a repulsion of some kind. He saw perhaps the beginnings of insanity in her, the dangers connected with her. His affections went to her sister. He fell in love with the sister and married her.'

결혼하고 나서도 둘 다 사랑했다는데

He loved Dolly as well as Molly, didn't he?

그리고 거의 육십에 가깝게 나이 들어서도 젊은 가정교사의 하트를 (의도치 않게) 거머쥐고요?

'Yes, Always. As soon as I came to the house. I loved him dearly. I don't think he knew it. There was never anything, what you call, between us.
... ...'

무슨 생물이죠 정체가 뭐냐고.


'Elephants can remember,' said Mrs Oliver, 'but we are human beings and mercifully human beings can forget.'

- 아리아드네는 애거서 크리스티 본인이 자기 안의 뭔가가 반영된 캐릭터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John Bull Magazine 1956: Wikipedia)

- 아리아드네가 등장하는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사람 개인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들을 수집하게 된다 (모자가 4개라던가, 의치를 갖고 있다던가, 남편이 몇 년 전에 죽었다던가...)

- 대녀는 god daughter. 브런치 맞춤법 검사가 맞게 쓴거냐고 의심하길래.

- 이 소설에 나오는 60년대쯤 가발 유행(여행 갈 때 가발을 챙겨 다녔다고)을 읽고 내 머리가 다 찝찝하게 느껴졌다.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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