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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 Aug 13. 2020

산딸기의 임금님

취향의 시작

웨지우드의 Wild Strawberry 찻잔을 좋아한다. 딱 저것만. 웨지우드의 다른 라인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화려하고 예쁘네 하고 생각하지만 갖고 싶냐고 하면 아니이-

3년쯤 전에 깨달았는데 내 취향은 대충 아라비아 핀란드의 Krokus(흑백)더라. 그리고 그 언저리의 어디쯤. etsy.com에서 아라비아 핀란드 빈티지를 구경하면 그저 흐뭇하다.


어쨌든, 여기서 포인트는 웨지우드가 아니라 Wild Strawberry 다. 나는 딸기 무늬나 딸기 모양 액세서리 같은 것을 보면 어쩔 줄 모른다. '-berry'가 붙은 애들을 모티브로 한 건 웬만하면 다 예뻐라 한다. 이 밑바닥에는 [산딸기의 임금님] 이 있다.


산딸기의 임금님, 봄날 한때 https://brunch.co.kr/@flatb201/29

짧은, 아기자기한 동화다. 벌을 받아 하루 동안 벌레가 된 산딸기의 임금님을 도와준 (그 고난도 아기자기하다. 벌레에게는 세상이 끝나게 무서운 일이겠지만) 자매는 보답으로 무서운 밤의 숲에서 도움을 받는다 - 따뜻하고 달콤한 우유와, 두툼한 구운 고기가 든 부드러운 흰 빵, 포근한 침대! 다음 날 아침에는 딸기 열두 바구니를 받고 다 같이 잼을 만들며 흥겹게 끝난다. 아 그리고 산딸기 보석 팔찌도.


다들 마음 어딘가에 그런 것 한 두 가지 가지고 있지 않은가. 어렸을 때 읽었던 이야기에서 쌓아 올린 이미지. 황금 호두를 깨면 나오는 밤 드레스(태양의 동쪽 달의 서쪽, 아마? 아니면 그 비슷한 동화), 둥근, 해를 닮은 바닷속 깊은 곳에 자리한 정원 (인어공주), 죽은 연인의 머리를 넣은 장미화분 (제목이 뭐더라. 어쨌든 안데르센 동화. 이런 이야기가 안데르센 말고 다른 작가 일리가...), 정원과 연못과 황금공 (개구리 왕자. 그런데 저 황금공, 늘 궁금했는데 황금공이라기 보단 그냥 황금 구슬 아닌가. 그리고 대체 크기가 어떻게 되는 걸까. 야구공 크기라고 해도 꽤 무겁지 않나? 공주님 그거 혹시 체력 단련하려고…?), 맛있는 오렌지와 포도를 위해 에트나 화산을 하얗게 칠하는 눈의 여왕...그리고 숲 속의 침대와 산딸기 모양 보석 팔찌.


물론 숲 속의 침대는 현실에서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나는 벌레가 너무너무너무 무서운 사람이라 (다리 6개 이상인 친구들은 좀 멀리하고 싶습니다) 식물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화분조차 가지지 못한다. 집 안에 벌레가 같이 들어올 거야...(흑) 올해도 수국 화분을 하나 살까 두 달간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안 샀다. 나무든 꽃이든 요즘은 그냥 공원에 나가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살기로 했다.


영국은 공원이 예뻐서 참 다행이지. 언젠가 테라리움은 가지고 싶다 (책도 샀습니다. 글로 인생을 배우는 사람이니까). 어쨌든 - 숲 속 침대를 꿈꾸던 어린이는 처음 캠핑을 갔던 날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알았습니다. 그거 안돼. 그리고 어린 나는, 나에게 결정권이 주어지면 다시는 캠핑 따위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은 여전히 지키고 있습니다. 흐흥.


하지만 숲 속의 침대 이미지는 여전히 좋아한다. 휘리님의 그림에 빠져든 것도 아마도 그래서.


그리고 딸기. 자, 산딸기 모양 보석 팔찌는 어떻게 생겼을까? 처음에는 딸기모양 보석을 엮었나 했다. 그때(6세쯤) 알고 있던 '딸기'는 한 종류뿐이어서, 이렇게 생긴 보석을 엮어? 그럼 뭔가 안 예쁜데?라고 생각했다. 그려도 봤는데 마음에 안 들더라. 그 후에 산딸기를 경험하고는 (좋아함) 이렇게 생긴 애들을 엮은 건가? 아니면 아예 통째로 이런 모양으로 보석을 깎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보석을 깎을 수 있으면 어마어마한 크기인 거 아닌가 싶은데. 그거 몇 캐럿이야...) 했었다. 그 뒤로 세상에는 다양한 '-berry'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잘 익은 라즈베리를 씻어서 햇볕에 비추면 투명한 게 붉은 보석 같다. 가끔 먹기 전에 한동안 감상한다. 블랙베리도. 블루베리는 잼으로 만들면 색이 너무 예뻐서 요거트에 섞고는 감탄한다. 북유럽 동화이니 구름 딸기는 어떨까. 그렇다면 옅은 주황색 보석인가 어머 얘도 예쁘지... 맛은 오묘하다. 좋아하지만. 잼도 맛있고… 예전에 헬싱키에 갔을 때 시장에서 쌓아서 파는 여러 종류의 베리를 보며 그 색감이 너무 예뻐서 감탄했다. 8월 북유럽의 햇빛에는 아련한 느낌이 있어서 더 (이거 지나면 너희는 이제 어둠 속에서 적어도 넉 달은 버텨야 한다!).  


가끔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숲 속 침대에서 반짝반짝하는 산딸기 보석 팔찌를 가지고 노는 이미지를 꿈꾼다.



그 산딸기는 라즈베리랍니다: 산딸기의 임금님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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