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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Jan 29. 2016

산딸기의 임금님, 봄날 한때


훈풍과 꽃들, 사르륵 나풀거리는 옷자락, 느리게 걸으며 나누는 미소, 매번 되풀이돼도 기분 좋은 설레임.

모든 계절에는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봄의 사랑스러움은 짧고도 눈부시다. <산딸기의 임금님>은 그런 봄날 한순간 살풋한 낮잠 속 백일몽 같은 동화이다.

북구의 풍광을 사랑하고 즐겨 묘사한 토펠리우스는 이 작품에서도 자연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낸다. 소녀들의 숲 속 탐험을 통해 묘사되는 풍경들은 온전한 아름다움은 자연에서 기원되는 것임을 각인시킨다. 극 중 딸기 임금님이 받는 벌 또한 자연에서 온 존재들이 자연으로 회기 되는 모습을 은유한다.

‘나무에서 자라는 검붉은 산딸기’는 라즈베리 Raspberry이다. 검색해 본 원제는 Hallonkung이 아닌 Hallonmasken으로 Raspberry Mask라는 뜻이라고 한다.

<Lilac Fairy Book; The Raspberry Worm, 1910>
<Hallonmasken, 1953>, <계몽사 북유럽 동화집, 1973>, <木いちごの王さま, 2011>




텔레즈와 아이나는 동시에 비명을 지른다. 먹던 딸기에 벌레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무심히 벌레를 죽이려는 로렌조의 장난을 두 소녀가 말린다. 참새의 눈에 띄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소녀들은 딸기 잎에 얹은 벌레를 숲에 놓아준다.

설탕과 밀크를 친 딸기를 다 먹자 텔레즈와 아이나는 잼으로 만들 딸기를 따기 위해 숲으로 향한다. 언제 와도 아름답고 상쾌한 숲 속, 색색의 바구니를 들고 오래된 그루터기를 지나 깊은 곳까지 들어가게 된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딸기밭에서 즐겁게 딸기를 따던 둘은 날이 저물어서야 길을 잃었음을 깨닫는다.

잼을 만들 딸기를 찾아 숲 속 깊은 곳까지 들어온 텔레즈와 아이나


숲 속의 밤, 두려움에 빠진 둘은 울먹인다.


“아이 배고파.. 고기를 넣은 두꺼운 빵이 있었으면..”

달콤한 밀크가 있었으면..”


그 순간 두 소녀의 소원대로 빵과 밀크, 포근한 침대까지 나타나 무사히 밤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에도 코오피와 크림, 설탕과 빵의 멋진 아침이 은쟁반 위에 차려져 있다. 둘은 이런 친절을 베푼 이가 궁금해진다.

그때 소녀들 앞에 한 난쟁이 할아버지가 나타난다. 자신을 딸기의 임금님이라 소개한 그는 일 년 중 꼭 하루는 딸기 벌레로 변해있어야 한다. 교만해진 그에게 내린 신의 벌이다. 이번에도 그 하루를 보내던 중 로렌조의 장난과 새떼로부터 목숨을 위협받을 때 텔레즈와 아이나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다. 벌레의 모습에서 풀려난 임금님이 둘에게 보답한 것이다.

벌레로 변한 자신을 구해준 소녀들에게 보답하는 '딸기의 임금님'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둘은 딸기 임금님이 보낸 선물을 풀러 보며 즐거워한다. 검붉은 보석으로 된 나무딸기 모양의 보석이 박힌 팔찌 외에도 로렌조에게 보내는 넥타이 핀에는 이런 문구가 씌어있다.


‘로렌조에게. 약한 것을 절대 죽이지 말도록.’


자신의 나쁜 장난을 관대히 용서해준 딸기의 임금님의 메시지에 로렌조는 부끄러워한다.

그나저나 이제부터가 큰일이다. 딸기의 임금님이 보낸 열두 바구니의 딸기들을 잼으로 만드느라 집안은 온통 법석이 된다.

Cicely Mary Barker, 1913 / Henriette Willebeek le Mair, 1940 (두 이미지 모두 원작과는 무관함)



충실하게 수집된 작품들이 실려있던 계몽사 전집, 북유럽 편

이 동화를 기억한다면 아마도 깨알 같은 글씨에 삽화조차 변변치 않은 주황색 표지의 계몽사 전집을 떠올릴 것이다. <산딸기의 임금님>은 특별히 독특한 동화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대부분 미소 짓는 동화가 아닐까 싶다. 환상적인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평이한 교훈의 단촐한 이 동화는 왜 그렇게 인기 있는 걸까? 아마도 이 동화가 가지고 있는 ‘소녀감성’ 때문일 것이다.


봄날.. 무한정 펼쳐진 딸기밭으로의 탐험, 신비하고 귀여운 요정왕이 차려준 코오피와 밀크, 베이커리. 약간의 깨달음을 얻은 좋은 사람들이 예쁜 보석을 풀어보고 함께 잼을 만드는 에필로그까지. 즐거운 봄날 한 때가 물씬 묻어있는 이 분위기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겠는가!

‘임금님’ ‘코오피’와 같은 옛날 맞춤법은 크림을 듬뿍 친 딸기를 상상하며 이 동화를 읽던 어린 시절을 곧바로 소환한다.


개인적으로 소녀감성을 -더 정확히는 소녀감성으로 포장된 인공적인 자의식 과잉을 무척 싫어하는데 <산딸기의 임금님>은 자칫 교훈만 따지다 잊기 쉬운 서정적 도취를 돌려준다.

세상에는 교훈뿐 아니라 아름다움 자체가 주는 공감이 있는 법이다. 그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진짜 소녀들의 봄날 한때처럼 사랑스러운 동화이다.





@출처/ 딸기의 임금님, 사카리우스 토펠리우스 (Hallonmasken, Zacharius Topelius, 1854)

Lilac Fairy Book; The Raspberry Worm (Longman, 1910, Edited by Andrew Lang, Illustration Henry Justice Ford)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32권 북유럽 동화, 산딸기의 임금님 (계몽사, 1973, 번역 이규직, 일러스트 송훈, 김광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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