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j May 13. 2020

제인 시모어의 우울

Bring up the Bodies - Hilary Mantel

When the house is quiet - when all his houses are quiet - then dead people walk about on the stairs.  

- Bring up the Bodies 


아침에 일어나면 폰을 좀 확인하고, 샤워를 하고, 커피나 차를 끓이면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스트레칭을 좀 하고, 먹는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다. 사이사이에 청소를 하거나 뭔가를 먹거나, 뭔가를 읽던가 …  이것 저것 하지만, 일어나서 잘 때까지 일과 온라인 미팅이 이어진다. lockdown 이 시작되고 모든 활동이 온라인으로 일어나면서 실제적 거리 따위는 핑계가 되지 않아, 확인해야 하는 것들은 늘었다. 그러다 보면 분명 딴짓도 꽤 하는 것 같지만 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살면 당연히 지친다. 자기 전까지 뇌가 쥐어짜기는 기분이라 잠도 잘 못 자고 중간에 자주 깨게 된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죄다 일에 미친 자들 뿐이고 지구는 둥글어서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으니 하나랑 이야기가 끝나면 다른 하나가 일어나서 이메일을 보낸다. 


지난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멍하게 창밖을 보다가 결정했다. 오늘은 일 안 한다. 


일을 안 하면 뭘 하느냐… 사실 위에 열거한 흐름은 '할 게 없으니 일이나 한다'로 가속화된 거라서. 뭔가 할 것이 필요하다. 해서 사 뒀지만 저 아래로 밀려 내려갔다가 이번에 책 정리하면서 다시 위로 올린 [Bring up the Bodies]를 들었다. 


[Wolf Hall]에 비해서 속도감은 떨어지지만, 끝을 아는 우리는 앤이 예정된 몰락으로 가는 길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보게 된다. 헨리는 여전히 재활용 안 되는 쓰레기고, 크롬웰은 묘하게 쳐진 분위기인데 (BBC 드라마 Mark Rylance의 토마스 크롬웰의 비 맞은 것처럼 처진 분위기가 생각나서 그런가...) [Wolf Hall] 때 랑은 좀 다르게 헨리가 가끔 작은 반항을 시도한다. 크롬웰은 이제 컨트롤 프릭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데…!


헨리 8세를 두고 크롬웰까지 gentleman이라느니 하는 건 진짜 적응 안된다. [Wolf Hall]에서 온화하고 상냥한 왕(으엑)이라고 울지 추기경이 이야기할 때는 정철의 향기를 느꼈는데. 그리고 그때는 크롬웰도 어이없어했는데…! 정철은 그렇다 치고, 울지 추기경이나 크롬웰은 헨리의 화려한 쓰레기 짓 (예: 20년간 자기 애 임신/출산/죽음을 같이 겪었고 초반에는 사랑한다며 그렇게 정성을 다 하다가 - 그러니 캐서린이 헤어 나오지도 못하지 - 이제는 우리 결혼은 신에게 버림받았어 빼에엑하며 어떻게든 그 결혼 무효화하려고 생각나는 갖은 모욕을 캐서린에게 안겨주고 - 앤과 비교해보면 그나마 체면은 차려 준 건가...- 죽은 캐서린의 유언장을 보고는 여기 적힌 모피 괜찮은 물건이야? 나한테 넘겨를 시전함 (메리에게 주라고 되어 있음). 자기 죽고 왕위가 불안한 건 이해하지만 방법이 저 모양인 건... )을 실시간으로 보고도 gentleman…? 그 시대가 이상한 거야 아니면 ‘그래도 헨리 정도면 괜찮은 편이쟎아, 이렇게 라도 납득해야 우리도 어떻게든 충성을 다해 일 할 수 있지 안 그러면 제정신으로 할 수 있겠나?!’에서 나온 자기세뇌의 결과물인가. 하긴 신하들에겐 잘해 줬지.... 나름. 저 목을 자르라고 하기 전 까지는. 


아 그래도 새벽 4시에 크롬웰 두들겨 깨우더니 앤과 나의 결혼도 잘못된 게 아닐까 하니 크롬웰 살짝 열 받아하더라. 대화 끝나고 밤하늘이라도 올려다보면서 '쟤 한대 패면 안 될까'를 삭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슬슬 시작되는 제인 시모어에 대한 구애… 시모어 가 남자들 (+크롬웰) 대화를 읽으면 제인을 꼭 껴안고 토닥여주고 싶다. 저런 거 사이에서 자랐단 말이지… 어떻게 제인을 정부로 잘 … 그리고 헨리가 싫증 낼 때까지 거기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하며 이제 제인도 제 밥값을 한다고 말하는 뻔뻔함 (... 그래 니 놈들 사고방식으론 이건 당연하겠지). 그러면서 어째서 헨리는 저런 애랑 자고 싶어 하냐고 수근수근... 근데 그게 오빠들과 아버지. 그리고 제인의 의견이라는 건 가능성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앤이 임신했다고 알려진 직후 - 


Thomas Seymour says at once, ‘This is Jane’s chance, now. He will hesitate no more, he will want a new bedfellow. He will not touch the queen till she gives birth. He cannot. There is too much to lose.’ 
... 
‘I still don’t see it,’ says old Sir John, the adulterer. ‘I don’t see how he’d want Jane. Now if it were my daughter Bess. The king has danced with her. He liked her very well.’ 
‘Bess is married,’ Edward says. 
Tom Seymour laughs. ‘The more fit for his purpose.’
Edward is irate.
‘Don’t talk of Bess. Bess would not have him. Bess is not in question.’
‘It could turn to good,’ Sir John says, tentative.
‘For until now Jane’s never been any use to us.’
 ‘True,’ Edward says. ‘Jane is as much use as a blancmange. Now let her earn her keep. The king will need a companion. but we do not push her in his way. Let it be as Cromwell here has advised. Henry has seen her. He has formed his intent. Now she must avoid him. No, she must repel him.’
‘Oh, hoity-toity,’ old Seymour says. ‘If you can afford it.’
‘Afford what’s chaste, what’s seemly?’ Edward snaps. ‘You never could. Be quiet, you old lecher. The king pretends to forget your crimes, but no one really forgets. You are pointed at: the old goat who stole his son’s bride.’  

- Bring up the Bodies, p. 96-97 


베스 도망가…! 


그리고 헨리의 관심이 더 짙어지자 저 무리+크롬웰이 제인을 두고 회의(…)를 하는데


…  Edward Seymour says, ‘Good mistress. Write you verse. Very well. Good so far. But if he attempts anything on your person, you must scream.’
Jane says, ‘What if nobody came?’
He puts his hand on Edward’s arm. He wants to stop this scene developing any further (그래도 크롬웰에겐 양심이 있는가…!). ‘Listen, Jane. Don’t scream. Pray. Pray aloud, I mean. Mental prayer will not do it. Say a prayer with the Holy Virgin in it. Something that will appeal to His Majesty’s piety and sense of honour.’
‘I understand,’ Jane says. ‘Do you have a prayer book on your person, Master Secretary? Brothers? No matter. I will go and look for mine. I am sure I can find something that will fit the bill.’  

- Bring up the Bodies, p. 99


제인, 인류애에 대한 기대가 한 톨도 없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꿈도 희망도 없잖아요. 집에 가면 저 쓰레기 무리, 일하러 가면 남이 보면 불륜 하지만 나에겐 로맨스-라는 헛소리로 무장한 상사 남편(헨리). 그리고 상사는 앤 불린이야. 같이 일하는 시녀들까지 (네에 레이디 로치포드가 여기 있네요) 더하면 이건 대체 무슨 수렁인가 싶네. 


그러고 보면 헨리 8세도 취향이... 원래 취향은 캐서린 x2/제인 계열인데 가끔 호르몬의 부르심을 받아서 앤/캐서린 하워드 과에 휘둘리는 건가. 그리고 안 되겠다 싶으면 목을 자릅니다…? 스케일이 왜 이래. 


숨 좀 돌리고. 

After supper, if there are no messengers pounding at the door, he will often steal an hour to be among his books. He keeps them at all his properties: at Austin Friars, at the Rolls House at Chancery Lane, at Stepney, at Hackney. There are books these days on all sorts of subject. Books that advise you how to be a good prince, or a bad one. Poetry books and volumes that tell you how to keep accounts, books of phrases for use abroad, dictionaries, books that tell you how to wipe your sins cleans and books that tell you how to preserve fish. His friend Andrew Boorde, the physician, is writing a book on beards; he is against them. He thinks of what Gardiner said: you should write a book yourself, that would be something to see. 
If he did, it would be The Book Called Henry: how to read him, how to serve him, how best to preserve him.   

- Bring up the Bodies, p. 67

구텐베르크 성경 이후 100년도 안되지 않았어? how to be a good prince (or a bad one)는 군주론이겠지 (크롬웰이 읽으면서 이건 영국에는 적용 안된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how to keep accounts 같은 것도 나오는 건가. 그러고 보니 Antwerp의 Moretus (인쇄 출판사 가문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든 곳)에 갔을 때 그런 거 전시물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하긴 수염에 대한 책까지 있는 모양인데!


Tidying up after Katherine’s death, he had been moved to explore some legends of her early life. Account books form a narrative as engaging as any tale of sea monsters or cannibals. Katherine had always said that, between the death of Arthur and her marriage to the young Prince Henry, she had been miserably neglected, wretchedly poor: eaten yesterday’s fish, and so on. One had blamed the old king for it, but when you look at the books, you see he was generous enough. Katherine’s household were cheating her. Her plate and jewels were leaking on to the market; in that she must have been complicit? She was lavish, he sees, and generous; regal, in other words, with no idea of living within her means.

- Bring up the Bodies, p.160

오 저거 진짜인가... 역사소설 읽다 보면 저건 좀 확인해보고 싶다 싶은 것들이 나오는데 읽고 나면 확인 같은 거 잊는다. 


ps. Life in the UK test라는 시험이 있다. 영국에서 장기 취업(체류) 비자 (Indefinite leave to remain)를 받으려면 통과해야 하는 건데, 24개 문항/4지선다형이다. 준비하면서 샘플 시험을 몇 개 풀었는데 단골 문제(거의 늘 나왔다)가 ‘헨리 8세는 왜 종교개혁을 했는가’였다. 답은 당연히 이혼하려고. 그리고 그 시험 준비하던 외국인(=나)은 고민했다. 지금 이게 자랑스럽다고 자꾸 내는 건 아니겠지….? 너네가 그래도 0점은 받지 않게 해 주겠다는 배려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무라사키 시키부, 겐지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