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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소민 Nov 11. 2022

독일 소도시 마울브론

헤세와 한스의 자취를 따라간 마울브론 수도원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슈투트가르트로 가는 기차를 탔다. 이번 여행을 발동시킨 주요한 여행지인 독일의 소도시 마울브론으로 가기 위해서다.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다가, 문득 헤세가 다녔고 소설 속 자전적 인물인 ‘한스 기벤라트’가 다녔던 마울브론 수도원의 모습과 분위기가 궁금했다. 구글 검색으로 보게 된 수도원 중정의 아름다운 사진은 더욱 내 호기심을 자극했고, 소설 속에 담긴 독일의 소도시 간 운행 열차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한스’의 시선으로 지그시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한 생각까지 미치자 왜 그동안 독일의 문학과 음악을 동경하고 사랑했으면서 정작 독일 자체에 대한 관심은 적었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런 인류사에 빛나는 문화를 만든 독일과 독일어 문화권 나라들의 숨겨진 저력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독일이 낳은 예술가들의 흔적뿐 아니라 문화의 절정을 꽃피웠던 유럽의 인근 국가도 함께 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바람을 가진 지 2달 후 나는 사진 속에서 봤던 똑같은 마울브론의 전경을 바라보며, 인간의 ‘잠재의식’과 ‘의지’가 이끄는 절묘한 결과에 대해 새삼스러운 놀라움을 가졌다.

마울브론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적잖게 당황했다. 일단 그 역에 내린 사람이 나를 포함해서 1명이었는데, 작은 마을이니 걸어가도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과 만약 거리가 있더라도 어련히 역무원이 있을 것이며, 그에게 가는 차편을 물어야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역무원은 없었고, 너무나 무서우리만치 조용한 시골역에 당황해 주춤거리며 밖으로 나오니 1시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는 멀리 떠나는 중이었다.

걸으면 45분 정도 거리라는 구글맵을 믿고 걸어보았다. 흙길이 아니고 포장된 길이어서, ‘그래도 걸을 만한 길이 있음에 참 감사하다’라는 생각으로 한 500미터쯤 걸었을 때 코너가 나왔다. 여기서부터는 아찔하게도 인도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 옆의 잔디 위로 걸어야 했던 것이다. 발이 푹푹 빠지며 통기성이 좋은 운동화는 이내 축축해졌다. 걷다 보니 마울브론으로 가는 길을 확인할 수 있는 표지판이 나타나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내 옆을 달리는 그 성능 좋은 유명한 독일 차들의 스피드에 어질 했고, 찰나에 눈을 마주친 운전자마다 어째서 저런 길 위를 걷고 있는 걸까 하는 눈으로 날 보고 지나가서 민망하고 무안했다.

나는 내 목숨을 위해 일단 용기를 가지고 영화에서 처럼 히치하이킹이라도 해볼까 싶었다. 하지만 히치하이커들의 비극적 말로를 다룬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인가. 내 무모한 용기가 자칫 차량들의 안전 운전에 방해가 될 수도 있고, 나도 누군지 모르는 이의 차를 덥석 타는 주사위놀이 따위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더 걸으면 마을이 나올 것이다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며 조심조심 한 걸음씩 디뎠다. 걸음걸음이 간절한 기도였다.

다행히도 한 30분 걸었더니 마을이 보였다. 육성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거기엔

 ‘살려주셔서’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무척 평온해 보이는 마을의 풍경이었다. 오래전부터 그래왔고 쉽게 깨어지지 않을 듯한 평화가 켜켜이 대기 중에 쌓인 듯한 공기에 두 번 안심했다. 그제야 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 사람이 걸을 만한 반가운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친절하게 놓여있는 의자가 있었는데 앉지 않고 그냥 바라보았다. 아직 갈길이 남아 있기에 쉽게 긴장을 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마치 순례길 걷는 여행자처럼 묵묵히 계속 걸었다.

성당이 하나 나타나서 샛길로 들어섰다. 마울브론 수도원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었지만 유치원과 함께 운영되는 아담한 성당이었다. 성당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져서 밖에 앉아 한 20분간 물을 마시며 쉬었다. 그리고 잠시 들어가서 땀을 식히고 나왔다.

마울브론 수도원은 수도원 건물 단독으로만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또 다른 마을 단위처럼 여러 개의 부속 건물들이 있었다. 요새나 성채의 느낌이었다. 약국도 있고 식당, 아이스크림 가게, 서점 등이 수도원 초입에 양팔로 휘감듯 들어서있다. 안내와 티켓 판매를 위한 건물은 따로 있었다. 그곳에서는 수도원 근처에서 본 포도밭에서 난 포도로 만든 와인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 맛이 좋다 하여 꽤 궁금했지만 만약 차를 운전해 왔다면 몇 병 샀음 직해도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갈 일을 생각하니 무리라 생각되어 내려놓았다. 티켓과 오디오 가이드를 받아서 수도원 중앙 건물로 향했다.

수도원은 세월의 흔적을 많이 껴입은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2세기 초 시토회에서 만들기 시작해 그 후 증축되면서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재되어 역사가 깊다. 다른 유럽 지역의 수도원 건축의 본보기가 되기도 하여 더 의미가 있는 곳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종교개혁 및 역사의 변화 속에서 개신교 신학교가 되었다가 지배세력에 의해 세속화되었다가 다시 시토회에게 넘어가고 다시 개신교로 바뀌는 등 역사의 굴곡이 모두 담겨있다. 그만큼 중요한 역사 유적이기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들어가는 입구 외벽에는 이곳에서 공부했던 학생들이 남긴 듯한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오래된 년도들은 손으로 살짝 쓰다듬었다. 헤세의 동급생일 수도 있는 친구들. 그를 몹시 괴롭혔을 수도 혹은 친하게 지냈을 수도 있는 아이들. 다 같이 이곳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적막한 이곳의 생활에 숨이 막혀 괴로워했을 영특한 아이들을 생각해 보았다. 시간의 벽을 넘어서 헤세가 있던 공간이자 소설 속의 실제 배경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은 그 자체로 신비했다.

입구를 통과하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지하에 진열된 전시물들이다. 이 수도원이 어떻게 건설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들과 수백 년간 지나오며 건축 양식이 변화되고 첨가된 모습을 보여주며 세월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둘러보기엔 어딘가 음침한 지하무덤 같은 습기가 감돌아서 돌아보다가 얼른 나와버렸다.

아름다운 아치 모양의 천장을 가진 회랑을 지나서 중정으로 향했다. 중정을 사이에 두고 예배당과 각종 시설들이 정방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사진에서 보던 그 전경이 눈앞에 나타나자 한동안은 믿을 수 없어서 가만히 적응이 될 때까지 바라보았다. 낙엽이 지고 있는 나무 아래에는 두 명의 여성이 행복한 미소로 서있었다. 나는 낙엽 하나를 주워 훗날 추억하기 위해 리플릿 사이에 끼웠다. 다각형 건물이 하나 돌출되어 있는데 마울브론 수도원이 생기게 된 이유인 지하수가 나오는 곳, 분수대이다. 맑은 물소리가 흐르는데 중정과 수도원 곳곳을 가득 채우며 청정한 기운을 더했다.

수도원 핵심 시설이기도 한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수도자들이 가득 차 미사를 드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성가대석을 메운 사람들을 상상하고 이제 머리가 여물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이곳의 엄숙함과 신성한 분위기에 얼마나 마음이 위축되면서도 사춘기다운 저항심이 발동했을지 생각했다. 바이올린에 영 소질이 없는 동급생의 연주와 그를 놀리던 짓궂은 소년들의 웃음소리, 사고로 죽은 친구의 장례식도 모두 여기서 이뤄졌을 것이다.

오디오 가이드에서는 이곳에서 불렸던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을 수 있게 지원했다. 성가가 더해지고 울림을 몸으로 느끼니 지극히 높은 존재에 대한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그 빛이 내 안에도 깊이 스며서 나의 소망 보다 더 큰 이끄심으로 함께 하시길 기도했다.


분수대는 초창기에는 1개의 단으로 이뤄졌다고 하나 뒤에 두 단이 추가로 설치되었다고 한다. 중정 너머 지붕 위에서 비친 햇살이 분수대로 쏟아져 경이로운 풍경을 만들었다. 분수대의 물소리가 차분하고 맑아서 한참을 듣고 서 있을 수 있었다. 천천히 주위를 돌면서 이곳에 찾아와 수심을 덜어내곤 했던 마울브론의 영재들과 헤세를 떠올려보았다.

수도사들이 회합을 열던 강당은 조형미도 있을뿐더러 웅장했다. 이곳은 학생들의 모임 장소로도 이용되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주방이나 학생감옥으로 보이는 곳도 있었으나 굳이 발을 딛진 않았다. 수도원은 장식적인 요소를 많이 배제하고 정갈한 내부를 가졌는데 세월의 흔적 속에서 새어 나오는 듯한 속삭임으로 적막 가운데 소란한 느낌이었다. 천년을 넘게 산 성스러운 고래 뱃속을 걷는 듯한 몽환적인 어지러움도 있었다.

수도원 밖에는 간단히 식사를 할 카페와 젤라또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젤라또 가게의 청년은 피스타치오가 맛있다고 추천했다. 나는 초코와 피스타치오 맛을 골랐다.

수도원 들어오는 벤치에 앉아 풍경을 한번 더 눈에 담으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것이 없었는데 많이 달지도 않고 자연의 맛에 가까운 그 젤라또는 참 그곳의 소박한 시골 풍경과도 닮았고 겸손한 맛이었다. 수도원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멀리서도 보였다. 아마 나도 같은 표정으로 걸어 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한 존재씩 잠시 수도자가 된 기분을 느끼며 해가 지는 오후의 온화한 하늘 아래 정화된 영혼이 되어 새로 태어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애증을 남기고 떠났을 헤세의 마음도 헤아리니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지만은 않았다. 기차역까지는 다행히 버스를 타고 갔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나는 열차 편을 바꿔 두 시간 일찍 슈투트가르트를 경유해 프랑크푸르트로 왔다.

쥬타의 아늑한 숙소가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다. 린넨 커버로 지난밤 고생을 해서, 내가 천식과 먼지 알레르기가 좀 있다고 말하니 이불커버를 모두 폴리에스테르로 바꿔준 쥬타의 친절에 깊이 감사했다. 덕분에 더욱 편안한 밤을 보낼 수가 있었다. 하루가 이틀은 족히 될 듯 길게 느껴졌다. 발에 심장이 달린 듯 욱신 거리기도 했다. 몸에 약간 신열이 올랐으나 차를 좀 마셨고 내일 아침이면 나아질 정도라는 것을 알았다.

누워서 생각했다. 내가 순례자의 마음이 되면 어떤 길이라도 순례길이 된다. 길이 나를 만드는 게 아니다.  내가 길의 의미를 창조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가 어떤 책이 내게 길이 되어주었듯 내가 한 경험과 한마디의 말도 누군가의 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지극한 형제애를 가지고 타인을 대한다면 사랑이 함께하는 순간들을 나눈다면.

이번 여행을 다 마친 후에 다시 복기하여도 그 많은 도시를 거쳤어도 여전히 마울브론에서의 기억은 더 특별하고 살아있다. 그곳에 신비한 이끄심과 보호하심이 존재했다. 온몸의 감각을 열고 그 오묘한 조화를 느낄 수 있었던 특별하고 영성이 가득한 하루를 나는 아마 자주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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