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 초가 안 가는 것 같아도-
‘전쟁이다!’라고 외쳤지만 이내 내가 허물어야만 하고 떠나야만 하는 때를 알리는 꿈임을 깨달았다. 급박한 때가 왔다라는 경종을 골이 흔들리도록 외치는 꿈. 그것은 어릴 때 살던 애증 가득한 아파트가 초음속 비행기들의 충돌로 인해 허물어지는 생생한 꿈이었다. 나는 그 난리 와중에 내 평생의 숙제와도 같은 엄마를 챙긴다. 그 애증의 대상. 엄마의 머리부터 먼저 견고한 바로크식 식탁 밑으로 넣어 보호했다. 그리고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용기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헌 집을 버리고 밖으로 나간다.
회의 시간에 우리팀의 어느 부장이 내게 고함을 질렀다. 그는 공기 중에 마라맛의 시뻘건 분노를 분사하고 있었다. 그가 들이받자 나도 지지 않고 말했다. “당신이 나보다 연장자고 직급이 높다고 해도 내게 이렇게 소리를 칠 권리라는 건 없다. 당신은 지금 언어폭력을 쓰고 있는 중이다. “ 그에게 결국 그 자리에서 사과를 받았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그에게 그동안 쌓였던 미움을 흘려보낼 수 있었고, 그다음 날은 또 다른 불편했던 관계도 진심을 터 놓는 대화를 통해 화해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회의 시간에 또 누군가의 절규같은 고함을 들었다. 그가 일으킨 화의 강도는 지난주에 겪은 일 보다 훨씬 컸다. 하지만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 상황 속에서 내가 해야 할 말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자기 자리 앞만 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불타오르는 분노를 그냥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눈빛에 어떤 슬픔, 놀람, 분노, 서운함, 체념이 다 담겼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에게 이 공기가 너무 숨이 막힌다. 우린 모두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더욱 격하게 화를 폭발시켰다. 나는 그가 많이 아픈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의 건강이 걱정도 되었다. 그리고 무척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는 지금 위기의 한 가운데 홀로 서 있는 듯한 위태로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런 때가 있지 않았나? 나도 마찬가지인 인간이다. 그러한 자각이 올라오는 것이 참으로 감사했다.
나는 그 공간을 가득 채운 불안과 공포의 공기를 한 톨도 마시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여기는 깊은 물 속 혹은 불 속 어딜까. 숨을 참다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면 위로 올라 숨구멍을 크게 열고 호흡하는 고래처럼.
그가 말했다. ‘지금 한숨 쉬었습니까?’ 나는 ‘네’ 라고 대답했다. ‘기분이 나쁘다는 뜻입니까?’ 그래서 나는 또 ‘네’ 라고 대답했다. 그럼 ‘우리랑 어울리는 곳에 계신 게 아니니 나가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그 말이 참말이라고 느꼈다. 일깨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나는 ‘네, 나가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새장 문이 열린 틈을 놓치지 않고 날아오르는 새처럼 민첩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노트북을 들고 회의실을 나왔다.
마치 공연을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배우처럼 나는 방금 또 내 인생에서 하나의 단막이 끝났다는 걸 알았다. 그는 단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이다. 그것이 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그가 밉긴커녕 입가에 순수한 기쁨의 미소가 일었다.
‘아, 이거구나.’ 이루어져야만 하는 일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구나. 내가 바라던 세상이 갑자기 한 순간에 펼쳐졌다. 나는 다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 자유로이 놓였다.
그 후 일사천리로 난 인사팀장을 만나고 대표님을 만나고, 우리 팀 이사님을 차례로 만났다. 그리고 실무 담당자들과 미팅을 하며 인수인계에 대한 논의를 했다. 단 몇 시간 만에 인수인계서 작성과 공유 클라우드에 올릴 파일 정리도 끝냈다.
회사를 한 시간 일찍 끝내고 차를 마시러 갔다. 마침 저녁에 명상 클래스가 있었다. 그래서 차를 마신 뒤 명상도 함께 하기로 했다. 선생님께 저 퇴사하기로 했어요...라는 이야기를 막 나누던 참에 대표님께 톡이 왔다. 점심때 오늘의 소요 사태에 대한 브리핑을 해드리면서 대표님과 1층 카페에서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항상 선한 눈매의 우리 대표님에게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저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밝아지는 분. 나는 대표님의 요새 컨디션에 대해 이야기를 듣다가 뭔가 도움이 될까 싶어 내가 큰 도움을 받은 차와 명상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피정을 위한 여행을 추천드리며 월정사와 정선에 있는 한 수목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랬는데 점심 때 그 이야기가 다시 생각나셨는지 대표님이 내가 있는 곳으로 차를 드시러 오겠다고 했다. 명상 클래스도 있다고 하니 더 좋아하셨다.
두 시간가량 결가부좌를 하고 명상을 했다. 명상이라고는 하지만 결가부좌를 한 채로 차담을 나누는 자리에 가까웠다. 나는 명상을 지도해 주시는 스님께 ‘다리가 없어질 것 같이 아파도 결가부좌를 풀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했다. ‘너무 아파서 욕이 나올 것 같아도 풀지 말고 계속.’이라고 하셨다. 그러면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차라리 욕을 하시는 게 더 낫다라고 덧붙이셨다. 욕을 하면서도 참고 생활을 위해 일을 해야만 했던 지난 9개월의 시간들이 큰 배움의 학교였고, 나에게 결가부좌의 시간이었구나.라고 잠시 놀라운 알아차림이 있었다. 스님은 수행 초기에 육체의 고통 보다 내 안에 떠오르는 정신의 고통이 더 크다면 결가부좌를 풀자 라는 마음으로 명상을 했다고 하셨다. 이날 자리에는 스님과 이혼한 전 남편도 함께 있었다. 이혼 후 더 사이가 좋아지셨다는 그들은 무척 해맑은 어조로 서로 고통을 주고받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담히 이야기했다. 하지만 결가부좌를 풀 만큼 육체의 고통보다 더 큰 정신적 고통은 없었다고 하셨다. 오늘 내가 잠시나마 미워하던 대상이 희미하게 생각났으나 점점 감각을 상실해 가는 파드마 안에서 아플수록 더 연꽃 같은 미소가 지어졌다. 씩- 그것은 참 신기한 일이었는데… 웃으면 고통이 찰나나마 덜어진다는 걸 오래전부터 체험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이 멍청이! 라고 해도 재빠르게 손을 크로스하며 무지개 반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지.
명상이 끝나고 대표님이 차를 선물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좋은 보이차를 선물 받고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선물은 내가 받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제일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기 때문에 생일 때 사려고 한 변훈 작가님의 푸른 도호요 공도배와 잔 그리고 찻잔을 세트로 대표님께 선물했다. 사실 귀한 것이라 또 얼마간 기다려야 새로 들어오는데. 지금은 내 차례라기 보단 대표님께 드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기물도 자기 주인을 알아서 찾아간다고 하니까. 내 것으로는 작고 푸른 찻 잔 하나만 가졌다. 그것만으로도 매우 흡족했다.
선물하는 기쁨이 컸고, 대표님이 차를 드시면서 건강을 되찾으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돌아오는 길 하루를 복기해 보았다. 어제까지가 어둠이었다면, 빛을 기다리는 가장 어두운 때였더라면,
오 참으로 놀라운 이 하루.
내게 또다시 자유와 새로운 선택의 기회가 왔다. 나는 그것을 정확한 신호로 받아들였다. 내가 가야 할 길 위로 선명한 빛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