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의 발걸음엔 밀도가 담겨있다
만남엔 중력이 있고 그래서 무게가 서려 있다
하지만 떠남에는 무게가 아닌 밀도, 중력을 초월한 섬세한 밀도가 있다
많은 선택과 결과의 종착지에 도달한 밀도 높은 열차는
승객을 내려주기 위해 마지막 문을 연다
열차는 모든 이를 내려주고 차고로 돌아가려 하지만
놀랍게도 종착지에 발을 디딘 승객은 없다
열차는 애초 비어있던 걸까
혹은 승객들이 발 빠르게 제 내릴 곳 알고 사라졌던 걸까
그 조차 아니면,
그저 내릴 수 없는 승객들을 태웠던 걸까
공허한 몸 속, 하지만 꽉 차있는 느낌을 받으며
열차는 떠나는 이의 발걸음을 대변한다
쓸쓸하지만 당차게, 조용하지만 소란스럽게, '나'인 동시에 '나'가 아닌 채
그 역설적인 밀도를 누구나 경험했으리라
태어남은 부모와 세상을 만나는 일이고
떠남은 그 태초의 만남에 대한 숱한 응분의 대가다
집에서, 학교에서, 조직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인간의 시간은 어딘가를 떠나기 위해 흘러간다
부모에게, 형제에게, 친구에게, 동료에게, 그리고 연인에게,
인간의 시간은 누군가를 떠나기 위해 흘러간다
떠남을 포괄하는 만남은 몇 없지만
모든 떠남은 만남을, 시간을 초월한 어떠한 종류의 만남을 반드시 점하고 있다
떠나는 이의 발걸음엔 밀도가 담겨있다
기억과 망각, 과정과 순간, '0'이라는 주관과 '1'이라는 객관
모든 게 들어찬 조화와 부조화
사람을, 조직을, 그 무언가 그 누군가를
떠나고자 하는 사람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
떠날 순간만을 기다리는 사람
떠나고 있는 사람
떠내려가는 사람
, 떠난 사람
이 글이 만든 당신과 나의 만남
이 글이 끝나 만들어진 당신의 떠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