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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예 Dec 16. 2023

그대로 있어줘서 고마워, 튀르키예

10년 만에 튀르키예를 다시 다녀와서

그때는 터키고, 지금은 튀르키예인 나라가 나의 첫 해외여행지였다. 그때는 비행기를 탄 경험이라고 해봤자 제주도 가는 길에 타본 50분의 짧은 비행이 전부였다. 이제는 10시간 남짓한 비행시간이 고역이지만 그때는 모든 게 다 처음이었으니 친절한 승무원, 기내식, 창밖에서 변하는 낮과 밤, 난기류로 인한 흔들림 모든 경험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10시간 비행시간이 힘든 줄 모르고 지나갔다.


일주일이 조금 넘게 주요 도시 몇 군데를 돌아다녔는데, 첫 여행이지만 꽤 야무지게 잘 다녔다. 그때는 지금처럼 여행정보가 넘치는 시기는 아니어서 여행책을 자주 봤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책만 가지고 그 계획들을 다 짜고, 돌아다녔는지 대단하다. 파워 J 성향의 인간인 데다가 K-장녀로서 동생과 함께 가는 여행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첫 여행은 뚝딱뚝딱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공항에서 핸드폰을 분실해서 경찰서도 다녀와보고, 여권을 숙소에 놓고 다른 도시로 떠난 적도 있었다. 평소에 뭘 그렇게 빠뜨리고 다니는 성격이 아닌데 여행 중에 핸드폰만 3번을 잃어버리고, 여권을 한 번 잃어버렸다. 기적적으로 모두 다 찾기는 했지만 말이다.


지하철 성추행과 다짜고짜 식 구걸(돈 안주자 내 엉덩이 때리고 도망감;;), 길거리에서의 담배연기 테러, 그때는 모르고 당했던 캣콜링, 소소한 사기 등 불쾌한 경험도 많았지만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핸드폰과 여권을 찾아준 사람들은 물론이고 "메르하바" 한 마디에 환하게 웃어주던 사람들, 대체로 여행자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10년 전 튀르키예에서 보고, 듣고, 먹고, 마신 것들 중에 가장 내 기억에 강렬하게 남은 것은 새벽에 들리던 코란 소리다. 새벽녘에 들려오던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코란 경전을 외는 소리가 해가 뜨기 전 어스름한 새벽의 분위기를 더 신비롭게 만들었다. 여행 첫날을 보내고 숙소에서 자다가 코란소리를 듣고 새벽에 깼는데, 그때 비로소 '터키에 와있구나' 느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그날의 새벽을 꼽을 것이다.


10년 전엔 겨울이었고, 이번 여행은 여름이었다. 10년 전의 겨울은 춥지 않았는데, 이번에 경험한 튀르키예의 여름은 말도 못 하게 뜨거웠다. 그때는 나와 동생 단 둘의 여행이었고, 이번에는 남편과 엄마도 함께 했다. 튀르키예가 오래전부터 엄마의 버킷 여행지이기도 했고, 나도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오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이라 모두의 니즈가 잘 맞는 타이밍이 이번 여름이었다.  


이번 여행 첫날 밤이 지나던 새벽에도 창밖으로 코란 소리가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속으로 쿡쿡 웃음이 났다. 10년 만에 방문한 튀르키예는 여전히 아름답고 신비로운 나라였다. 이스탄불의 사원들과 보스포루스 해협, 바자르, 카파도피아의 기암괴석과 열기구, 파묵칼레의 석회봉. 하나하나 잊을 수 없는 경광이었다. 자잘한 사기와 친절한 사람들을 모두 만나게 된 것도 여전했고, 예상치 못하게 벌어진 사건들조차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튀르키예 여행의 한 조각을 완성해 준 것 같았다. 


10년 전의 나를 떠올려보며 추억에 잠기고, 여전히 매력적인 이곳을 변함없이 감탄하며 감상하고 있다는 것에 괜스레 안도하게 되는 여행이었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있다가 한 번씩 고개를 돌려 가족들을 봤다.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아름다운 장소는 배경이 되고 그것을 반짝이는 눈으로 보고 있는 가족들이 전경이 되어 눈에 들어오면, 흐뭇하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뭉클해지기도 하면서 말 그대로 그 순간은 꿈같아지곤 했다. 

 

튀르키예는 첫 여행지라서 그런지 이상한 향수 같은 게 있다. 이번 여행이 끝나고 '튀르키예 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요즘도 터키에서 사 온 비누를 쓰면서 다시 한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가보지 못한 튀르키예의 도시들이 있기도 하니 그 핑계로 한 번 더 가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여전한 모습으로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떠올리며, 10년 만에 다녀온 튀르키예 여행의 짧은 감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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