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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예 Jun 20. 2024

겉절이 맛을 이제 알 것 같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지만, 언젠가는 다시 맞을지도

얼마 전에 학교 급식에 겉절이가 나왔다. 겉절이는 몇 번 씹다 보면 매콤한 양념맛 뒤에 생배추의 풋내가 느껴져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었다. 급식에 겉절이가 나왔던 그날도 남길 것 같다는 예상을 하며, 일부러 아주 조금만 배식을 받았다. 배식을 받아놓고 입도 안 대고 버리는 것은 내심 마음이 불편해서 맛은 봐야지, 하고 한 입 먹었는데 맛이 썩 나쁘지 않았다.

 

'흠, 나쁘지 않네.' 속으로 생각하고는 곧 또 한 입. 그렇게 몇 입 먹다 보니 제법 맛있다는 생각을 했다. 배추의 풋내라고 느꼈던 것이 신선함으로 다가왔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풋내가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칼국수에 겉절이는 필승 조합이지만, 진심으로 그 조합이 너무 맛있어서 먹었던 적이 없었다. 익지 않은 김치에서 나는 배추맛이 늘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겉절이가 맛있어졌다. 덕분에 앞으로 칼국수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에 먹지 않았던 음식들이 맛있어진다. 절대 좋아지지 않을 것 같았던 것들이 좋아지기도 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해되기도 하고,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마음이 변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계속 변한다. 취향, 가치관, 생각, 이상향 같은 것들이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불과 작년의 나와 지금의 나만 비교해 봐도 다르다. 다 컸다고 생각하며 결정했던 것들의 빈 틈이 이제는 보이고, 그때의 취향을 지금의 내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곤 한다.


나는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든 또 변하겠지. 그것을 알기에 언젠가부터 '절대로'라는 말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난 그런 건 절대로 못해.' , '그런 사람 절대 안 만나.', '난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절대 이해 못 해.' 같은 말들을 정말 내가 변하지 않고 지킬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아서다.


변하는 건 나뿐만은 아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관계도 변한다. 상대가 변했건, 내가 변했건, 아니면 둘을 둘러싼 상황이 변했건 간에 언제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어느 순간 둘 사이에 이전과 다른 공기가 흐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때가 오고는 한다.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고, 가까웠다가 멀어진다. 언제나 가까울 것만 같았던 관계가 멀어지면 서운하고 아쉽지만,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나. 멀어지는 관계가 생기면, 또다시 가까워지는 관계도 생기고는 한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겉절이가 맛있어지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 아닌가 싶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 때로 무섭고 불안하다. 난 불안과 아주 친한 사이라 더 자주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또 어떤 즐거움과 깨달음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지를 생각하면, 아주 기대되는 인생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떤 것도 예상할 수 없지만, 되도록 앞으로의 변화가 나를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하는 방향이면 좋겠다고 부질없이 바랄 뿐이다.



Image by xzone95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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