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꾸역꾸역 운동하고 있는 사람 이야기
집에 체중계가 있어도 잘 올라가지 않았다. 평소 몸무게의 변화가 크지 않은 편이라 체중 관리에 신경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 번씩 호기심으로 올라가 보던 체중계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숫자가 찍힌 날의 충격은 신선했다. 본래 마른 체형의 사람도 나잇살을 피해 가기란 어렵다는 사실을 내 몸이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체중계에 찍힌 숫자가 낯설었다. 깜빡이고 있는 저 숫자가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거울 앞에 서서 입고 있던 티셔츠를 들어 올리고는 찬찬히 내 몸을 살펴보았다. 청바지 위로 옆구리 군살이 삐죽 귀엽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제야 '아, 저 숫자가 다 내 것이 맞구나.' 생각했다.
브런치에 '아주 오랜만에 숨이 찼다 (brunch.co.kr)'라는 글을 적고 며칠간 계단 오르기를 하다가 곧 그만두고 운동과는 또! 거리를 둔 채 살아가던 때였다. 분명 운동의 의지가 강하게 타올랐던 것 같은데, 잠깐 타고 사라지는 불꽃같은 것일 줄이야. 운동에 의지박약인 내 모습이 영 민망해서 브런치에 썼던 글을 지울까 잠깐 고민하기도 했지만, 글을 지우는 게 어쩐지 더 부끄러워 그냥 두기로 했다.
옆구리 군살을 보고 다시 운동의 당위성을 되새기며, 유튜브에서 따라 할 만한 운동 영상이 있는지 검색했다. 1일 차부터 100일 차까지 영상 하나당 운동시간이 평균적으로 40분 이상인 운동 영상을 발견했다. 얼마나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DAY 1> 영상을 따라 했다. 그렇게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도 내가 <DAY 100>까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은 하지 않았다. 이전의 수많은 실패들이 이미 결과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 <DAY 51> 영상을 끝냈으니, 벌써 절반을 지났다. 가시적인 목표가 있다는 것은 동기를 끌어올리는 데 효과가 있었다. 영상 하나를 끝내고 나면 달력에 표시를 해두었는데, 그게 어린 시절 포도알 모양의 칭찬스티커를 모을 때처럼 뿌듯한 느낌을 북돋웠다. 100일이라는 미션을 하나씩 달성해 나가는 맛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체중계에 찍히는 숫자가 달라졌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으니 운동을 완전히 놔버리기가 아쉬웠다. 삼일천하로 끝났던 지난날 운동의 역사가 흐름을 바꾼 것이다. 아, 운동 안 하고 이대로 살다가는 체중계에 찍힌 숫자가 신고점을 찍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한몫했다.
최근에는 팔 굽혀 펴기에 성공했다. 팔 굽혀 펴기 성공이 뭐 큰 일인가 하겠지만, 나에게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몸에 근육이 워낙 없다 보니 내가 하는 팔 굽혀 펴기는 늘 무릎을 대고 하는 자세였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에 무릎을 대고 하는 자세가 조금 수월해져서 정자세로 시도를 했는데, 성공했다.
내 팔로 내 몸을 온전히 들어 올렸다. 뭐랄까, 하늘을 날 것 같다는 표현은 과장이고 몸이 제법 가볍게 뜨는 느낌이 어색하면서도 홀가분했다고 할까.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나서 기뻤던 적은 없었는데, 이 날은 기뻤다. 비록 하기 싫은 운동을 꾸역꾸역 이어온 것일지라도, 그날들이 쌓여서 비로소 내 몸을 스스로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의 근육은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보람찼다.
그렇다고 운동이 재밌어진 건 아니다. 여전히 운동을 미루고 미루다가, 할까 말까 여러 번 고민한 끝에 어쩔 수 없이 시작할 때가 많다. 안 되던 자세가 되고, 들지 못했던 무게를 들고, 힘들었던 루틴이 수월해지는 순간들이 더 쌓이면 운동이 재밌어질까? <DAY 100>을 완성하는 날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운동매트를 깔고 덤벨을 들어 올리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일단 오늘 <DAY 52> 영상을 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딱 하루만 미루고 내일 하는 걸로 방금 결정했다. 진짜 내일은 한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