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있었던 일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계단 오르기 운동을 하겠다고 저녁을 먹고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유튜브를 켜서 25분짜리 예능 동영상을 틀고 귀에는 이어폰을 끼운 채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무슨 패기로 25분이나 되는 영상을 틀고 간 건지 모르겠다.
나름 자기 객관화를 하고 1시간 운동은 아무래도 무리다, 싶어서
25분짜리 영상을 다 볼 때까지만 계단 운동을 하자고 생각했는데
그것조차 욕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18층을 두 번 올랐다. 날이 덥기는 했지만 이렇게나 땀이 쏟아지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마지막 두어 층을 남겨두고는 어지럽고 눈앞이 약간 아득해졌던 것도 같다.
다시 말하지만, 어디 에베레스트 같은 높은 산을 오른 것도 아니고 18층 계단을 열댓 번 오른 것도 아니다.
18층 계단을 두 번 올랐을 뿐이다.
창피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죽겠다, 싶어서 얼른 집에 들어가 물 한잔을 들이켰다.
호흡을 좀 고르고, 어지러움이 좀 가시고 나서 개운하게 샤워를 했다.
어이없게도 샤워를 마친 후에도 숨이 여전히 고르게 쉬어지지 않았다.
물론 헥헥거리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10분남짓 계단 오르기를 하고 그 여파가 1시간은 족히 갔다.
체력이 안 좋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라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동네 산책, 걷기 이런 거 말고 숨이 찬다 싶은 유산소 운동을 한 게 언제였던가 기억도 안 난다. 출퇴근도 차를 이용하다 보니 평소에 걸을 일도 거의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0분 운동하고 1시간 동안 숨을 고를 일이냐고...
이 정도면 어딘가 아픈 게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을 하다가 작년 건강검진 결과를 생각하면, 다른 게 아니라 '운동부족'이 진단명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운동해야지 말만 하면서 보낸 세월이 도대체 얼만가... 이번에 한 시간 동안 숨 고르면서 어이없음, 당황스러움, 위기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엄마랑 여름에 여행 가는데 엄마가 나보다 더 잘 걸을 것 같다고 웃으며 농담을 했더랬다. 농담할 일이 아니었다. 진지하다...
그래서 어제도 똑같이 18층 계단을 두 번 올랐다. 다를 바 없이 어지럽고 숨이 가빴다. 운동하고 땀 흘리고 나서 샤워하면 기분 좋다는데 그런 거 모르겠고, 그냥 힘들었다.
살기 위해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이백퍼센트 진심을 담아 들었다. 숨차게 운동하는 거 진짜 너무 싫은데 건강하게 살려면 평소에 좀 숨이 차야 되나 보다...
오늘도 저녁 먹고 비상계단에 가봐야지. 그동안 운동에 마땅한 동기가 없었어서 의지가 생기지를 않았다. 근데 생존이라는 동기가 생겨버렸네. 일단 18층 두 번 올라도 안 어지러운걸 작은 목표로 해보는 걸로...ㅎ...
사진출처: tvn <유퀴즈 온더 블록> 김연아 선수 편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