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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예 Sep 26. 2023

어... 이거 공황증상인데

어디에라도 써야 할 것 같아서 쓰는 이야기

월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아니 일요일부터 이어진 일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처음 학교에서 일하던 그때부터 이어졌다고 해야 맞을까.


일요일 오전 11시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를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곧 수신 버튼을 눌렀다. 학교 선생님이었다. 주말 오전에 무슨 일일까. 잘 쉬고 계시냐는 안부 몇 마디 뒤에는 얼마 전에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학부모가 나를 고소하겠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2학기가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머리가 지끈했다.


고소하겠다는 이유가 뭔지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상담교사인 내가 아이 상담을 했다는 이유, 상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경찰에 협조했다는 이유였다.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고소가 되는 걸까 싶고, 설령 고소를 한다 쳐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결단코 없기 때문에 고소가 무섭지는 않았다. 다만 애석하게도 이 일이 내가 월요일 오후에 겪은 일의 트리거가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월요일 오후에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서 사례회의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다른 선생님 사례를 듣고 있는데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조용히 심호흡을 해보았지만 달래 지지 않았다. 심장이 어찌나 세게 쿵쾅댔는지 그 진동이 티셔츠 밖으로 보일 정도였다.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속은 매스꺼워지고 어지러웠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순간 머릿속에서는 '어... 이거 공황증상인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심호흡을 해가며 정신줄을 붙잡고 있으니, 곧 내가 가져온 사례를 발표할 차례가 다가왔다. 발표 시작 전에 전문의 선생님께 내가 지금 이런 증상을 겪는 중인데 정신의학과에 가보는 것이 좋겠냐고 물었다. 정신과 의사도 우울증에 걸린다며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거라면 가보기를 권한다는 답을 들었다. 발표를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해야 할 과제에 집중하니까 심장박동이 안정을 찾아서 다행히 발표는 잘 마칠 수 있었다.


한 번의 공황증상으로 진단까지 받지는 않겠지만, 처음 겪어보는 공황증상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스트레스에 취약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으로 나타나는 편이긴 하지만, 공황증상까지 겪으리란 생각은 못했다. 몸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더 손에 잡히지 않고, 그래서 더 무섭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왔기에 두려웠다. 정말 나에게 마음의 병이라도 찾아온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학교에서 상담교사로 혼자 일하면서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만 겪는 일이 아니다, 이 정도는 이겨낼 수 있다, 어쩌면 내가 문제일지도 모른다, 내 일 내가 떳떳하게 열심히 하면 그걸로 됐다, 하면서 그냥 버텼다. 내 자리가 더 힘드니, 네 자리가 더 힘드니 하는 불행 경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조직의 누군가를 싸잡아 욕하는 일도 하고 싶지 않았고, 나 힘들다고 앓는 소리를 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열심히 해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알아줄 거라는 동화같은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인정해야겠다. 그동안 혼자서 아등바등하느라 참 고달팠다는 것을 말이다. 분야가 다른 조직에서 혼자 일하는 상담자로서 내 일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동료의 부재, 연달아 터진 위기사안,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들, 악의는 없길 바라는 상처 주는 말들, 윤리적 딜레마,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평가절하, 소수자로 살아가면서 겪는 서러운 일들이 나를 고달프게 했다.

  

이런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이 글을 읽고 누군가 나의 처지를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별거 아닌 일로 나약하게 군다고 비난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공존한다.


감사하게도 긴 연휴가 다가오고 있다. 연휴가 고달픔의 원인들을 없애주지는 않겠지만, 연휴 동안 잘 쉬고 회복해서 얼마 전 경험한 공황증상은 단지 하루짜리 해프닝으로 기록되기를 희망한다. 글을 마치며, 나와는 다른 상황일지라도 나와 같이 혼자 아등바등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연대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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