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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이파파 Oct 16. 2024

아버지의 찬물 샤워

어린 시절 우리 집은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특이한 집 구조였는데 방은 한칸 짜리였고 밖에는 주방과 욕조가 함께 붙어있었다.

씻기 위해서는 이 공간을 쓸 수 밖에 없었는데 누군가 씻는다는 건 가족끼리라도 지켜줘야 할 비밀이었기에 문을 닫아두고 있었다.


한 번은 우연히 열려있던 틈으로 아버지가 씻는 걸 본적이 있다. 뜨거운 물이 부족했는지 추운 겨울임에도 찬물로 씻고 계셨다.

물을 끼얹을 때마다 놀란 토끼처럼 껑충 뛰는데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관객의 반응이 좋으면 무대의 주인공은 앵콜을 하는 법 아버지는 몇 번이고 찬물을 끼얹으셨다.

나는 웃다 지쳐 넉다운이 되있었고, 아버지는 그렇게 재밌었냐며 옅은 미소를 띄고 지나가셨다.


집은 정말 작고 형편은 어려웠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의 희생에는 행복이 묻어있었다.

나이가 찬 지금에도 그날의 기억이 선명한 걸 보니 꽤나 재밌었나보다.


추운 날에도 기꺼이 찬물을 끼얹던 행동에는 나를 웃게 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 행복한 웃음소리에 누구보다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요즘 우리 아이도 부쩍 놀래키는 데 관심이 많아졌다.

장난감 피리를 들고 살금 살금 오는데 너무 티가 나지만 모른척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피리가 울렸을 때 누구보다 놀란 표정과 액션이 필요하다.

그 과장된 몸짓에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신나한다.

별거 아닌데 저렇게 재밌을까? 라고 생각하며 지난날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아이에게는 지금의 순간이 훗날 내가 느꼈던 아버지의 찬물 샤워처럼 느껴질까?

그 행복한 순간이 주는 따뜻함이라면 나는 기꺼이 광대라도 될 것 같았다.


그냥 살다가 문득 문득 떠오르는 인생의 한 장면처럼

아빠가 그랬었지 눈물나게 재밌었지를 떠올리며 행복하게 추억하는 한 장면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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