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벌레를 참 무서워한다.
잘 놀다가도 눈앞에 뭔가가 스치기만 하면 깜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벌레! 벌레! 아빠, 잡아줘!” 하고 외친다. 문제는 나 역시 벌레가 무섭다는 것.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 집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은 나니까 눈 딱 감고 벌레를 잡는다.
손끝에 닿는 그 꺼림칙한 느낌을 피하려고 휴지를 두껍게 겹쳐 사용하지만, 그 후에 아이가 나를 대단한 영웅처럼 바라볼 때면 묘한 뿌듯함이 인다. 그 두려운 벌레를 아빠가 잡아냈으니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사람은 바로 나인 것이다.
어느 날은 악몽을 꿨는지 아이가 침대에서 울며 나왔다. 꿈에서 벌레가 나왔다고, 무서워서 못 자겠다는 것이다.
작은 손으로 벌레가 나왔던 곳을 가리키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달래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놀란 가슴을 쓰다듬으며 불을 켜고 벌레가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지만, 아이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같이 눕자, 아빠가 재워줄게.”
“손잡아 줄 수 있어?”
“그럼, 얼마든지.”
침대에 누운 아이는 내 손을 꼭 잡고 다시 잠에 들었다. 스르르 잠들었다가도 중간에 깨어나 내 손을 다시 한번 꼭 쥐어본다. "괜찮다" 며 달래주고 나서야 깊은 잠에 빠져든 아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깨닫는다.
누군가가 나를 온전히 의지하고 있다는 이 기분이 얼마나 묘한지. 마치 내가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감정은 내가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준다.
이게 바로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보려는 다짐, 그리고 나를 믿고 의지하는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 그것이야말로 부모로서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는 가장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쓸모있는 존재라는 것은 참으로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인다.
‘걱정 마, 아빠가 널 지켜줄게.’ 그것은 단지 벌레로부터 지켜주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세상의 온갖 풍파로부터 너를 지키고, 네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자라도록 곁에서 언제나 지켜주겠다는 다짐이다.
나를 의지하며 잠든 아이지만, 결국 나는 아이로부터 더 큰 위로와 힘을 얻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