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는 참 많은 고민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외에는 아이를 맡겨본 적이 없어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어떤 분인지,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꼼꼼하게 따져보았지만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은 가슴 한켠에 존재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예상 외로 빠르게 적응했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친구들과도 즐겁게 지냈다. 알림장은 칭찬으로 가득했고, 아이가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일 차로 15분 거리의 어린이집을 오가며 힘든 일상을 보내던 엄마에게, 집 앞에 새로운 어린이집이 생겼다는 소식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막 적응한 아이를 우리 편하자고 옮기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단순히 거리 때문에 고민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있었고 상황이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의 선택을 아이가 온전히 견뎌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결정이 쉽지 않았다.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나 아이들이 어떨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신중해질 수 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끝에 새로운 곳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아이에게도 충분히 설명해주었다. 아이는 “알겠어”라고 답했지만, 그 말이 진심으로 이해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무심코 한 말인지 알 수는 없었다. 아이가 예상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이별의 감정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기존 어린이집에 이별을 고하고 나니, 아내는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쌓아온 추억들을 떠올리며 아쉬움을 느꼈다. 그건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감사하게도 슬프다. 아쉽다. 보고싶을거야 등등의 이야기를 많이 했었나보다.
어느 날, 그런 우리를 보던 아이가 순수하게 물었다.
“내가 다른 어린이집으로 가는데 왜 어른들은 슬퍼하는 거야?”
아직 이별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의 말에 우리는 감정이 너무 앞선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정들었던 친구들과 선생님을 못 보는 게 아쉬운 거야”라고 답했더니,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왜 못 봐? 난 또 보러 올 거야.”
아직 이별을 모르는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는 누구보다 깊이 이별을 준비했었나보다. 그리고 이별은 단절이 아니라 잠시 헤어지는 것이고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바꿔 말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표현이 더 건강한 이별의 태도가 아닐까 싶었다.
소중한 인연과의 이별은 끝 아니라 언젠가 다시 만날 약속이기도 하다. 잠시 그걸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 맞아 언제든지 보러가면 되지”
우리는 아이가 가르쳐준 소중한 마음을 담아내려 애썼다. 이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알려줘서 오히려 고마웠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그날을 기약하며 씩씩하게 마지막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에게 또 배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