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후 다섯 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한낮의 분주함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에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일은 그 자체로 나에게 작은 특별함을 준다.
영화관의 어둠 속으로 오후의 빛이 조금씩 기울어가는 그때, 영화의 첫 장면이 시작될 때면 왠지 모를 설렘이 스며든다. 남은 하루의 길게 이어질 저녁 시간 앞에서, 마치 하루를 두 번 사는 기분이랄까.
내게 그 시간대에 영화를 보는 것을 즐긴다는 것은 단순히 스크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대는 나에게 하루를 이성과 감성으로 구분하여 살게 해주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보통 오후 다섯 시 즈음에 시작하는 영화는 길어도 두 시간 남짓이기에 영화 상영이 끝나고 나면 다양한 선택지가 열린다. 아직 완전히 해가 진 것도 아니어서, 영화관 문을 나서면 노을을 보러 가거나, 가까운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영화의 여운을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근처 맛집에서 느긋한 저녁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평일이라면 오전 내내 바쁘게 일하고도, 남아 있는 저녁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 시간을 통해 하루를 마감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느낌을 즐길 수 있다. 그것이 주말이라면 영화가 끝난 후 집으로 일찍 돌아갈 수도 있고, 여운을 따라 한 번 더 영화를 보기에도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가 있으며, 영화로 고양된 감성으로 즉흥적인 가벼운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그렇게 자연스레 평소보다 조금 더 열려 있는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일상의 뻔한 장면에서 벗어나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삶에도 이런 오후 다섯 시의 영화 같은 여유가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을까?
너무 늦지도, 그렇다고 너무 이르지도 않은 적당한 때에,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며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 말이다. 꼭 모든 게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보이는 영화의 엔딩처럼 처음부터 끝이 보이지 않아도 과정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면 된다.
그리고 스크린에 띄워지는 내 인생의 한 장면을 즐기다 보면 언젠가 나만의 이야기를 완성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오늘도 나는 하나의 시퀀스를 이어가고 있다.
나는 오후 다섯 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멋진 노을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