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선택과 집중, 그리고 꾸준함.
브런치를 통해 책쓰기의 준비 운동을 시작했다. 첫 번째 발행한 글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어찌어찌 한 꼭지를 다 쓰는데에 성공했다. 이후의 글쓰기는 비교적 순조로울 것 같았다. 책의 주제와 이야기의 전개 방향까지 다 정해놓았고 각각의 에피소드를 어떻게 이어 나갈지에 대한 구상도 마친 상태라, 난 그저 쓰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문제는 선택과 집중, 그리고 꾸준함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년간의 이야기들을 책 한 권 안에 다 녹여내야했다. 누군가는 2년이라는 시간을 직장에 몸 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냐고 반문하겠지만, 한 번 생각해보라. 우리 주변에선 매일 같이 크고 작은 일이 일어나고, 그 횟수를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봐도 365*2=730회. 무려 730회나 되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주말이나 공휴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날을 빼야하지 않냐는 질문은 생략하자.) 현실적으로 그 일들을 모두 글로 쓸 수는 없으니, 한 달에 한 번 있을 법한 중요한 이야기를 쓴다해도 24회에 달했다. 사족이 길었는데, 어쨌든 책쓰기에는 선택과 집중이 먼저 필요했다.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 더 재미있는 혹은 독자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솎아내고, 솎아낸 이야기들에 집중하여 한 꼭지로 담아내야 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선택과 집중을 위해, 먼저 내 직장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거나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정리해봤다. 다행인 건 퇴사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고, 업무일지를 개인적으로 다이어리나 블로그에 써놨어서 매일 어떤 일이 있었는지와 그때마다 감정이 어떠했는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책에 쓸 이야기들을 간단히 목록화하고, 더 보기 편하게 도식화해서 하나하나 써보기로 했다. 이 작업은 나중에 목차를 쓸 때나 글과 이야기의 방향성을 잃었을 때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다음으로는, 꾸준함이 필요했다. 신이 내게 글쓰기와 책쓰기에 가장 필요한 능력 한 가지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꾸준함'을 택할 것 같다. 아무리 좋은 글감과 뛰어난 필력이 있다해도 꾸준함이 없으면 결코 책으로 엮어낼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기사나 칼럼과 같은 비교적 짧은 글을 쓰는 일이야 꾸준함이 없더라도 한 자리에 오래 앉다면 글 한 꼭지를 써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도전하는 책쓰기는 달랐다. 최소 24개의 이야기를, 단 하루 만에 뚝딱 엮어내어 한 권의 단행본으로 내놓을 수 없었다. 한 꼭지를 쓰는 데만도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일이 걸렸는데, 책쓰기는 이 작업을 꾸준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루틴과 제약 없이 무작정 써보았다. 컨디션 좋은 날에는 오전에도 써보고, 잠이 오지 않아 말똥말똥 깨어있는 날에는 새벽에도 써보기도 했다. 그냥 평일에 쓰는 날도 있었고 주말에 쓰는 날도 있었고. 장소도 별다른 구애 없이 집 거실, 침실, 카페, 도서관 등 그냥 쓰고 싶을 때는 어디서든 썼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가장 큰 문제는, 나는 게을렀고 꾸준하지 못했다는 것. 글을 쓰는 데에 장소와 시간 등 제약이 없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마음 내킬 때만 글을 쓰다보니 어떤 주에는 아무 글도 쓰지 않을 때도 있었다. '써야지, 써야지' 생각만 하다가 하루 이틀 시간은 흘러만 갔고, 어느덧 몇 주 째 한 꼭지도 쓰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이어리에 써둔 짧은 메모 한 줄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꾸준하게, 일주일에 최소 두 꼭지'. 퇴사한 날 써둔 메모였다. 앞으로 글을 쓴다면 어떤 글을 쓸지, 어떤 각오로 쓸지를 써놓았는데, 그 메모에 이런 글을 써둔 것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꾸준하게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꾸준함을 위해 브런치 작가가 되었으니 이 브런치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하고, 더 나아가 연재하고 있는 글을 네이버 블로그에도 포스팅하기 시작했다. 독자들이 많아질수록 강제성과 책임감은 더 커지는 법이라고 생각했으니. 글 쓰는 주기는 처음에 정한 것처럼 일주일에 최소 두 번. 이 꾸준함을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 꾸준함 덕분에 마지막 이야기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글쓰기와 책쓰기에는 참 많은 역량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앞서 말한 선택과 집중 그리고 꾸준함이 가장 필요하지 않나라고 다시금 생각한다. 앞으로도 선택, 집중, 꾸준함으로 오래오래 글을 써나갈 수 있기를. 그리고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