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저녁.
한동안 잊고 지냈던 브런치에서 메일이 왔다. 브런치를 통한 제안 메일이었는데, 메일을 열어보니 제안이라기보다는 질문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질문 내용은 짧은 편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내게 질문을 해오기까지 그 사람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메일을 받고 동질감이랄까, 그런 게 느껴졌다. 나 역시 퇴사를 한창 생각할 당시 브런치를 비롯해 많은 퇴사 관련 글을 접하면서 궁금증이 생겼는데, 이 분도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이 글을 쓴 사람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고, 그때의, 그토록 힘들었던 내 자신이 떠오르기도 해서 최대한 성심성의껏 답변 메일을 작성했다.
안녕하세요!
예전에 브런치에 <퇴사가 실패는 아니잖아요>를 연재했었고, 현재는 웹디자이너로 일하는 '본본쓰'라고 합니다!
우선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제가 예전에 가졌던 궁금증을 다른 분으로부터 질문으로 받게 될 줄은 몰랐네요 ㅎㅎ 저도 한창 고민하고 힘들어할 때 퇴사 관련 글을 읽으면서, '과연 이 분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궁금해 했었거든요.
질문에 먼저 답변드리자면, 저는 예전 일이나 경력과는 전-혀 관련 없는 부산 서면에 위치한 한 성형외과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퇴사가 실패는 아니잖아요>를 쓸 당시에는, 이미 구미에 있는 반도체 회사를 퇴사한 상황이었고 제 경험을 책으로 내고 싶어서 꾸준히 글을 썼었는데요. 아쉽게도 긍정적인 결과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네요. ㅠㅠ
그 뒤로 미래를 고민하다가, 생계는 유지해야할 것 같아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웹디자인이 제 성격이나 적성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국민취업지원제도를 통해 6개월 간 포토샵/일러스트/인디자인을 다루는 교육과정을 수료했고, 운 좋게도 한 병원에서 불러주셔서 1달째 일하고 있네요.
가끔도 예전 직장생활이 문득 떠올라 제 글을 읽어보곤 하는데요. 너무 우울하고 분위기가 어두워서, 읽는 다른 분들도 그렇게 느끼시진 않을까 걱정했었네요. 하지만 그때의 감정과 상황을 덤덤히 써내려갈 목적으로 쓴 글이라 후회는 없네요.
그때는 정말 너무 힘들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는데, 지금은 다행히도 정말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연봉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출근하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과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고, 퇴근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이, 제게는 너무 행복하더군요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하신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 제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은 그때의 저처럼 힘드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쁜 생각도 하실 수 있겠고요. 하지만 인생은 길고,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단 걸 퇴사 후에 경험했습니다.
그렇다고 퇴사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고민해보시고 하고 싶으신 일이 있으시면 더 늦기 전에 도전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힘내시길 바라고! 제 일상이 궁금하시다면, 제 블로그에 오셔서 보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짧게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습니다. 좋은 밤 되시고, 항상 힘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답변이 충분치 않았을 수도 있다. 퇴사 후 약 1년반 동안의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고 그간 많은 일이 있었기에 글로 다 담아내기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냉정히 말하자면 퇴사 후의 삶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업무적으로는 스트레스가 없어져서 좋긴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불안감, 작가가 되지 못했다는 좌절감,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감 등등 나름의 스트레스는 지속되었으니까.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내가 퇴사하면서 4천만원에 가까운 돈을 모으지 못했다면, 나 역시 퇴사를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뭐 어찌했든 난 그 회사를 나왔고 인생의 방황기를 거쳐, 다시 회사를 다니며 어느정도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다.
답변 메일에 쓴 것처럼 인생은 길고,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단 걸 퇴사 후에 경험했다.
지금도 내 블로그에 유입되는 많은 분들은 '퇴사'를 검색하여 유입되었다. 그분들께 짧게나마 경험한 이야기를 하자면: 퇴사 후에 펼쳐질 삶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고 준비되지 않은 퇴사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 물론 직장생활이 죽을만큼 힘들고 당장 내가 죽겠다면. 그때의 나처럼 탈출하는 것도 방법이고.
나도 언젠가 지금 다니는 회사를 나올 수도 있다. 인생은 어찌될지 모르니. 이 글은 미래의 내가 읽었을 때 부끄럽지 않은 글이 되었으면 한다.
모든 직장인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