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를 위한 걱정이 부담스러울 때
"제 생각은요 임신을 하셨으니 일을 좀 쉬시고 몸을 챙기셔야 할 것 같아요."
"너무 이것저것 하지 마시고 이젠 포기할 줄 아셔야 할 것 같아요."
임신을 하고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푹 쉬어라.'는 이야기다. 노산에 힘들게 임신을 한 까닭에 처음엔 '쉬어라'라는 이야기가 반갑게 느껴졌다. 대학교 3학년부터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약 10여 년간 단 한 번도 커리어적으로 쉬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엔 힘들게 한 임신이니 '내 아이'의 건강이 우선이라 일부러 누워만 있으며 아름다운 동화책을 읽었다. 초기에는 워낙 입덧이 심해 자주 쉬는 것이 크게 도움 되었다. 시간이 지나 입덧 시기를 지나고 보니 이제 누워있는 것도 지겹고, 동화책은 더더욱 지겨웠다. 딱 2개월, 입덧 시기가 지나니 모든 컨디션은 이전과 동일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피곤하지도 않았다. 이전과 비슷하거나 약간 피곤한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업무를 하는데 지장을 줄 정도까진 아니었다. 몸이 이전과 비슷해지니 아이를 위한 태교대신 내가 당장 필요한 자격증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임신을 하는 동안 업무에 필요한 자격증을 2개 취득하고 일도 이전과 동일하게 하고 있다. 이동 시간이 길지만 않다면 매일의 컨디션은 좋은 편이다. 일을 하는 이유는 내가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을 원래 사랑했고, 난 일로 맺어진 신뢰를 중요하게 여긴다. 내가 만드는 창작품에 대한 애정이 크고, 그 창작품을 보며 사람들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피드백을 해주는 것이 좋다. 물론 칭찬이면 더 날아갈 것 같지만, 쓴소리라도 내가 사회에서 뭔가 기여하고 있다는 그 소속감이 좋다.
내가 임산부이든 임산부가 아니든 육아맘이든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아마도 일을 계속할 것 같다. 하루에 천 원만 버는 일이라 할지라도 내 능력이 재화로 환산될 수 있으면 꾸준히 손을 놓지 않고 할 생각이다. 그런데 주변이나 사회는 임산부라면 무조건 쉬어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임신을 했으니 이제 좀 휴식을 해야 한다.', '이 일은 포기를 해야 한다.'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한다. 이런 말들은 왕성하게 일을 하고 싶은 임산부 입장에선 때론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상황이 우려가 되어 나는 임신 사실을 꽤 늦게 사람들에게 알렸다. 중기가 훨씬 지나 출산하기 2~3개월 전에 알렸던 것 같다. 3개월 전에 알려도 이 정도인데 임신 초기에 알렸으면 정말 피곤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을 하기 싫은 사람에게 일을 억지로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으로 생각하면서, 일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일을 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정작 본인은 괜찮은데 '임산부이니까', '임신 상태이니'라는 단서로 피곤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건 뭐랄까 심리적 부담감만 부추기게 된다. 정말 배려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내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의 말을 모두 들을 필요도 없고, 나는 나의 길을 묵묵히 가면 된다고 토닥이고 있다. '쉬라고, 이제 포기하라고'하는 사람들 치곤, 진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사람들이 별로 없기도 하다. 그냥 어디서 '임산부는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대충 하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본인의 컨디션은 본인이 가장 잘 알기에 본인의 스타일대로 임신 과정을 겪으면 되는 것이다. 쉬고 싶으면 쉬고,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면 되는 거 아닌가. 임신을 한 사람들도 저마다 환경이 다른데 모조리 '쉬어라'라고 하는 건 아쉽다.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덜 읽어주면서 태교 하면, 집에서 육아를 덜하면 이를 '모성애'와 연결시키는 것도 어찌 보면 폭력이다. 각 가정은 가정마다 사랑을 주는 방식과 훈육 방식이 모두 다르다고 생각한다. 비록 임신 기간 태교 동화책이나 조용한 클래식은 거의 읽고 듣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댄스음악을 들어 기분이 늘 좋았다. 종종 커피도 한잔씩 마시곤 하였는데 먹는 걸로 스트레스받느니 한잔 마시는 게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고 내가 모성애가 없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닌데 보이는 것으로 이러쿵저러쿵 판단하는 것이 그저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약 10개월간 아이를 만나기 위한 과정은 낯설지만 삶의 스펙트럼을 확실히 넓혀 주었다. 아이도 내 뱃속에서 자라느냐 고생하였지만, 나 역시도 10개월 간의 터널을 지나가며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가장 크게 배운 점은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예전에는 은퇴를 하시는 분들께 "우와 축하드려요. 정말 속 시원하실 것 같아요."라는 축하 인사를 건네었던 것 같다. 사실 별생각 없이 하는 말이었다. 내가 겪어보니 모든 말은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다면 차라리 말을 아끼는 게 나을 수 있겠다.
내 방식대로 임신을 하고, 육아를 해야겠다. 육아는 적어도 20년간 긴 안목의 장기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다.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여러 이야기를 듣고 흔들리겠지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는 믿음을 좀 더 확실히 가지며 이 시기를 견뎌야겠다. 내 아이에게는 너를 사랑한 만큼 나의 삶도 소중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임산부의 욕망을 '임산부' 무게로 짓누르지 않도록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