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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Oct 15. 2021

그릴 때마다 달라지는 그림

지금 이 순간에만 할 수 있는 창작이니까

20대 초반 영화에 푹 빠져 영화 평론가를 꿈꿨던 적이 있었다. 제법 그땐 진지해서 영화 평론가를 양성하는 전문기관에 가서 꼬박꼬박 수업을 듣기도 했다. 때론 전공 수업보다 열심히 들었던 영화 평론 수업은 현직 영화 평론가가 직접 어떻게 글을 쓰는지 말해주었다. 그중 몇 년이 지났음에도 잊지 못하는 건 영화 평론을 쓰기 위해서는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시간을 들여 꼼꼼히 감상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한 장면, 한 소품을 예민하고 기민하게 파악한 뒤 영화에 대한 글을 써 내려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그 외 다른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셨지만 유독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봐야 한다.'라는 말이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영화는 좋아해도 같은 걸 반복하는 건 지루해하는 성격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것, 그림을 그리는 표현은 티백을 우리는 것과 비슷하다. 티백은 한번 어렸을 때 가장 신선하고 본연의 맛이 나온다. 그 맛이 주는 감동은 예상치 못하게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때론 은은하기도 하다. 때론 너무 써 물을 섞으며 맛의 농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어쩐지 같은 영화, 같은 글, 같은 그림을 반복적으로 행하는 건 티백을 계속 우리는 느낌이다. 한번 사용한 티백을 사용하고, 또 사용하다 보면 감동도 맛도 없다. 어느 순간 물을 마시는 건지 차를 마시는 건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같은 영화를 반복한다면 처음의 감동이 희석되거나 무뎌질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든 글이든 그림이든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건 지루하고 감동이 사라지는 작업이라 터부시 하였다. 하지만 언젠가 종종 나의 그림을 평가해주시고 조언을 해주시는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림을 그릴 땐 너의 왼손을 가만히 바라봐봐. 너의 왼손을 바라보면서 늘 다른 재료로 그려보는 거야. 한 달 간만 연습을 해봐. 하지만 꼭 너의 왼손을 그리는 거야."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것을 그토록 싫어하였지만 존경하는 선생님의 숙제였고, 내가 실력으로서 인정하는 사람의 조언이기에 한 달간 반복적으로 연습을 시작하였다. 보나 마나 재미없는 작업이 될 거라 생각했다. 내게 어떻게 도움이 될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매일마다 같은 왼손을 보는대도 매일마다 보는 게 달랐다. 매일 발견하는 게 달라져 표현하는 것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어제는 중지 손가락과 엄지 손가락 사이에 있는 주름을 발견하지 못하였지만 그다음 날에는 미세하게 갈라져있는 주름을 발견하였다. 손가락을 구부리면 미세한 주름이 3겹으로 접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매일마다 보고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제대로' 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말라가의 피카소 생가


문득 거장들의 노트가 기억난다. 취재를 하기 위해 스페인 남부 도시 '말라가'에 갔던 적이 있었다. 말라가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휴양도시이기도 하지만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생가이기도 하다. 피카소를 사랑하는 팬들은 한 번쯤 피카소 생가에 들려 그의 흔적을 찾아본다. 모처럼 말라가에 왔으니 피카소 생가나 가볼까?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생가에 갔다. 피카소가 어렸을 적 입었던 옷, 피카소 가족들의 장신구, 빗까지 간직하고 꾸며놓은 생가는 충분히 흥미로웠다. 하지만 정작 오랫동안 잊지 못하는 장소는 생가가 아닌 바로 밑에 층에 있는 전시관이었다. 


피카소 전시가 진행되는 생가 1층 전시관


아래 전시관에는 피카소의 유년기 시절 주로 그렸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태 거장 피카소의 완성 작품만 봐서 그가 어떻게 그림을 그려왔고 어린 시절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작고 어두운 전시관에는 어렸을 적 끄적거린 낙서부터 노트에 그린 그림까지 한데 모아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마치 비밀 연습장을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특별한 재능이 있으니까 잘 그렸겠지.'


예술사에 길이 남을 거 장인만큼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을 테다. 선천적 재능을 넘어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후천적으로 유년시절 훈련한 결과물을 보면 그저 숙연해진다. 이런 거장도 수십 번 수백 번을 그리고 또 그리며 훈련하는데 나는 같은 그림 반복하기 싫다고 어리광만 피운 것인가..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말라가에서의 충격과 부딪히며 배운 경험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잘 보고 잘 그리려는 노력을 반복한다. 물론 계속 반복하며 보고 그린다 해도 매 순간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많다. 매일 같은 사물을 그려도 그릴 때마다 달라지기도 한다. 어쩌면 유일하게 지금 이 순간에만 할 수 있는 창작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술이 위대한 것일까. 이 순간에만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는 생각을 하고 보니 작품마다 특별하다. 


앞으로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겠고 매 그림은 저마다 다른 색깔을 지닐 것이다. 단순히 노트에 끄적거린 5분짜리 스케치라 할지라도 다음날 그 스케치와 똑같이는 그리기가 힘들 것이다. 오롯이 그 순간 내가 볼 수 있는 것을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할 뿐이다. 그래서 무언가 창작을 하고 표현을 하는 사람에겐 매 순간, 매 시간 느끼는 감정이 더욱 특별하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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