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노스팍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팍 Aug 10. 2018

흑묘백묘

박상훈의 INNOSPARK, 2010년 9월호

MBC 창사 49주년 특별기획드라마 '동이' *출처: www.imbc.com


MBC 드라마 ‘동이’를 보면 숙종의 마음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주인공 숙빈 최씨(淑嬪崔氏)와 그녀의 라이벌 희빈 장씨(禧嬪張氏)의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서인들이 모시는 인현왕후(仁顯王后)가 남인 세력의 중심에 있는 희빈과 정치적 적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드라마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하는 중요한 갈등은 대개 숙빈과 희빈, 두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동일한 역사를 배경으로 한 KBS 드라마 ‘장희빈’에서는 희빈(김혜수)과 인현왕후(박선영)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 드라마에서도 숙빈(박예진)이 인현왕후의 복위와 장희빈의 몰락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100회까지 방영된 드라마의 87회에서 인현왕후가 승하하기까지 희빈의 가장 큰 적은 숙빈이 아닌 인현왕후였다. [1]


2002년까지의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갈등의 두 축이 희빈과 인현왕후이었지만, 2010년에 새롭게 숙빈과 희빈을 중심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으니 몇 년 후 방영될 드라마에서는 어떤 식으로 숙종을 둘러싼 세 여자의 이야기를 펼쳐나갈지 기대가 된다. [2]


드라마 ‘동이’가 어떻게 끝이 날지 알 수는 없으나, 숙빈과 희빈이 다투지 않고 둘 다 숙종의 사랑을 받으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보다는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둘 중에 하나’가 사약을 마셔야 결말이 보일 듯하다.


이처럼 우리가 즐겨보는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소설에서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 상황이 자주 나타난다. 햄릿은 제3의 대안 없이 죽느냐 사느냐의 두 가지만 고민하고, 악당들은 꼭 주인공에게 ‘둘 중에 하나’만 살릴 수 있다고 말하며, 이 사람을 붙잡으면 저 사람과 헤어져야 하고, 어렵게 손에 넣은 거액의 돈과 사랑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차라리 ‘셋 중에 하나’ 혹은 ‘넷 중에 하나’라면 선택의 폭이 넓어 긴장감이 덜 할 텐데 꼭 ‘둘 중에 하나’ 구도로 흘러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둘 다 가질 수는 없을까? 둘의 중간쯤에 위치하면 둘 다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아래에서 대비되는 두 단어 사이의 □에 들어갈 수 있는 중간 개념의 단어는 무엇일지 떠올려보자.



‘좋은 놈’과 ‘나쁜 놈’ 사이에는 어떤 단어가 좋을까?


만약 ‘이상한 놈’이 떠올랐다면 영화 제목의 영향을 받은 탓일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몇 개의 단어를 제외하고는 □에 적절한 단어를 넣기가 쉽지가 않다.


이렇듯 중간의 의미를 가지는 단어를 찾기는 어렵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극단에 서지 말고 적당히 ‘균형’을 이루며 중간에 서있으라 요구한다.

‘일’과 ‘삶’의 중간에는 어떤 단어가 적합한가?

우리는 평소에 ‘일’과 ‘삶’의 한 복판에서 무수히 많은 고민을 한다.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면 삶이 윤택해질 것 같은데 오히려 일이 늘수록 삶은 건조해지고, 삶의 질을 높이면 행복할 것 같지만 일자리를 잃고 불행해질까 두려워 과감하게 일을 줄이지도 못 한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일과 삶의 조화’라고 말하며 ‘일’과 ‘삶’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하게 된다.

우리는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다가 마지막에 단 하나만을 선택하는 가상의 스토리에서 짜릿함을 느끼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일’과 ‘삶’의 경우와 같이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선택하지 못하고 둘의 중간 정도 위치에 자리매김하곤 한다.



둘 다 갖고 싶은 욕심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고 둘 다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 상충(Trade off; 어느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하는 양자 간의 경제적 관계)되는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싶어 하는 욕심을 재미있게 표현한 광고와 그림을 살펴보자.


가상 □ 현실 *출처: www.creativeadawards.com


3D TV 속의 공룡이 뛰쳐나와 못된 강아지처럼 집에 있는 화분, 컵, 액자를 깨뜨린다면 어떨까? 그림에서처럼 당장 화면 안으로 들어가라고 호되게 꾸짖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이렇게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를 허물 수 있다면 멋지고 예쁜 아이돌 그룹이 춤추며 노래하는 음악 방송이 시청률 1위를 기록할지도 모르겠다.


앞 □ 뒤 *출처: www.behance.net


주차에 자신 없는 분이라면 뒤쪽에 운전대가 달린 폭스바겐 골프는 어떨까? 후진할 때마다 뒤쪽으로 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는 하지만 긁힘 없이 완벽하게 주차할 수 있다.


수평 □ 수직 *출처: www.romain-laurent.com


수평과 수직 모두를 갖고 싶은 분은 이런 포즈를 추천한다. 영화 ‘인셉션(Inception)’ 느낌이 나는 멋진 자세이지만 발목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너무 오래 서있지는 않기를 바란다.


여름 □ 겨울 *출처: 9gag.com


멘토스 큐브를 먹으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정육면체 세상이 펼쳐진다. 사계절을 느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맛이 네 가지는 아니다.


콜라 □ 빨대 *출처: www.frederiksamuel.com

 

펩시 라이트를 마시면 콜라를 즐기면서도 빨대처럼 날씬한 몸을 가질 수 있다. 다만 이 광고를 촬영한 모델이 평소에 얼마나 자주 콜라를 마시는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자연 □ 사람 *출처: theinspirationroom.com

 

WWF(World Wildlife Fund; 세계야생동물기금협회)의 포스터들은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다. 위의 그림은 나무를 마구 베면 지구 대기가 안 좋아지니 결국 사람의 폐도 병들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전달하고 있다.


시간 □ 생존 *출처: www.laughitout.com

 

WWF의 광고를 하나 더 보자. 시계의 숫자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동물들이 사라져 10시에 4마리, 11시에 1마리, 그리고 마지막 12시에는 모든 동물이 사라지게 된다. 아직은 2시 15분이라 다소 여유가 있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멸종의 속도는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WWF의 표어처럼 ‘너무 늦기 전에 Before it’s too late’ 위험에 처한 야생 동물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주인 □ 하인 *출처: www.creativeadawards.com

 

애완동물을 키우다 보면 누가 주인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 고양이는 집 밖에 있는 야생 동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기특하게도 자기가 흘린 털을 스스로 치우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도 자기 뒷정리는 알아서 할 줄 아는 개념 찬 애완동물이 필요하다.



회색 고양이

 

검은 고양이 □ 하얀 고양이


흑묘백묘(黑猫白猫)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으로 덩샤오핑(鄧小平)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이러한 실용주의적 경제 정책을 바탕으로 이후 중국은 고속 성장을 하게 된다.

혹시 우리는 어정쩡하게 중간쯤 서서 고양이의 털 색깔이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인지 ‘흰색에 가까운 회색’인지 마냥 고민하고 있지는 않은가?

여름을 대표했던 혼성그룹 쿨이 부른 ‘운명’의 가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고민만 하는 상황이 잘 나타난다.

운명 같은 여잘 만나서
이제 나를 떠나가라고
그 애에게 말해버리면
보나 마나 망가질 텐데
그렇다고 그 애 때문에
그녈 다시 볼 수 없게 돼 버리면
나도 역시 망가질 건 뻔한데

정말 답답해 짜증이 나 어떡해야 해
둘 다 내 곁에 있을 수는 없는 거잖아
정말 화가 나 그 누구도 버릴 수 없어
차라리 이럴 땐 남자가 되고 싶어 [3]



운명을 찾아서


흑묘와 백묘 가운데 어떤 것이 ‘운명’ 일지는 어느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다. 오로지 분명한 것은 회색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둘 중 하나’를 명확하게 선택하는 게 낫다는 사실이다. 선택을 가로막는 두려움을 뛰어넘어야 운명을 찾을 수 있다.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자신이 선택한 목적지 Destination에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자신의 운명 Destiny을 결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추억의 노래, 쿨의 ‘운명’을 들으며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어디인지 생각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tEpLqkMRY6k


 



[1] KBS 특별기획 드라마 ‘장희빈’ 홈페이지
     http://royalstory.kbs.co.kr/
[2] 아래 블로그에 역대 희빈 장씨, 인현왕후, 숙종, 숙빈 최씨 역할이 어떤 배우였는지 잘 정리되어 있다.

     http://blog.naver.com/mouse7284?Redirect=Log&logNo=10091117848

[3]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의 상황이 계속되다가 뜬금없이 마지막 가사에서 “차라리 이럴 땐 남자가 되고 싶어”로 끝나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 가사를 여성 멤버인 유리 씨가 넘겨받기 때문에 그 가사만 남성이 아닌 여성 입장에서 부른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원래 가사인 “차라리 이럴 땐 나 혼자가 되고 싶어”가 왜곡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tantramore.tumblr.com/post/114262016040

매거진의 이전글 스타가 되는 기술, 스타 크래프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