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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팍 Aug 10. 2018

한 권의 책, 세 가지 맛

박상훈의 INNOSPARK, 2010년 12월호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읽지 못해 반성하는 마음으로 퇴근길에 강남 교보문고에 들렀다. 한 시간 정도 인파 속에서 부유하듯 배회하며 이 책 저 책 훑어보다 결국 세 권의 책을 골랐다.



첫 번째 책은 세계적인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Stephen Hawking과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Leonard Mlodinow가 쓴 ‘위대한 설계 THE GRAND DESIGN’이다.

이 책은 무신론이냐 유신론이냐를 떠나 통찰력을 주는 내용들이 많이 담겨있다. 특히 아래에 인용한 자유의지에 대한 질문은 필자에게 묘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을까?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진화의 역사에서 언제 자유의지가 발생했을까? 
남조류나 박테리아에게 자유의지가 있을까, 
아니면 그것들의 행동은 자동적이고 과학법칙의 유효 범위 안에 있을까? 
다세포 생물만, 또는 포유류만 자유의지가 있을까? 
침팬지가 바나나를 먹을 때, 또는 고양이가 소파를 물어뜯을 때, 
우리는 그 동물들이 자유의지를 행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겨우 959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단순한 선형동물인 예쁜꼬마선충[1]이 
먹이를 먹는 것도 자유의지의 행사일까? 
아마 그 녀석은 “저건 내가 저 뒤에서 잡아먹은 엄청 맛있는 박테리아야” 하고 
생각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녀석도 먹이에 대한 취향이 확실하므로 
최근 경험이 어떠했느냐에 따라서 구미가 당기지 않는 먹이를 참고 먹든지 
아니면 더 나은 먹이를 찾으러 갈 것이다. 
이것은 자유의지의 행사일까?"


스티븐 호킹 박사가 일반인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들에 대해 쉽게 썼기 때문에 지루함을 날려줄 <흥미>가 있을 듯하다.  



두 번째 책은 표지의 파란 코끼리가 인상적인 ‘블루 엘리펀트 SELLING BLUE ELEPHANTS’이다.

이 책에 눈길이 간 까닭은 표지 제목 위에 적힌 ‘블루오션을 창조하는 실행 전략’이라는 한 줄의 카피 때문이다. 

‘블루오션’하면 떠오르는 김위찬 교수와 인시아드 INSEAD가 아닌 하워드 모스코비츠 Howard Moskowitz, 알렉스 고프먼 Alex Gofman과 워튼스쿨 Wharton Business School이라는 낯선 조합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책을 펴 몇 장 훑어보니 블루오션과 직접 관련된 책이라기보다 ‘규칙 개발 실험 (RDE: Rule Developing Experimentation)’이라는 비즈니스 실험 방법론에 관한 책이었다. 

고객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없을 때 고객에게 어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하니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재미>가 있을 듯하다.  



세 번째 책은 리처드 포스터 Richard Foster와 사라 캐플런 Sarah Kaplan이 쓴 ‘창조적 파괴 CREATIVE DESTRUCTION’이다.
 
기업 혁신에 대해 문외한이던 필자에게 20세기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로 꼽히는 조지프 슘페터 Joseph A. Schumpeter를 알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15개 산업의 1,000개 기업이 약 40년 동안 이룩한 성과를 맥킨지 컨설팅에서 10여 년에 걸쳐 정리한 ‘기업 성과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하고 있어 구성이 탄탄하다. 혹시 혁신 이론을 알고자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입문서로 권하고 싶은 책이다. 

몇 해 전 필자가 ‘창조리더십’ 과정을 만들면서 여러 차례 읽어 이미 내용은 익숙하지만 훗날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아 소장할 목적으로 구매했다. 책장에 잘 꽂아두었다가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 내용을 되새기면 <의미>가 있을 듯하다.



흥미, 재미, 의미


여러분은 어떤 이유로 책을 사서 읽는가? 

앞에서 세 권의 책에 대해 
‘위대한 설계’에서 과학이라는 낯선 영역에 대한 <흥미>를, 
‘블루 엘리펀트’에서 새로운 방법을 알아가는 <재미>를, 
‘창조적 파괴’에서 되새겨볼 만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는 필자가 임의로 연결한 것이고 사실 책을 읽기 전에 <흥미>를, 읽는 중에 <재미>를, 읽고 나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강렬한 자극을 제공하는 영화, 드라마, 게임, 인터넷 등에 집중되면서 언제부터인가 책은 찬밥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책 보다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져 책에서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이번 글에서는 '책'에 다시 관심을 가져보자는 취지에서 책을 소재로 한 그림 몇 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책 읽는 킹콩 [2]


킹콩이 거대한 손가락으로 조그만 책을 붙들고 열심히 읽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확대해서 자세히 보면 VISITING NEW YORK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는데, 혹시 자신이 나중에 오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대해 읽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3D 책 [3]

영화 아바타가 3D로 개봉된 이후 웬만한 영화들은 3D 상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만약 위의 그림들처럼 주요 장면이 입체적으로 재현된다면 책의 인기가 다시 높아지지 않을까?
 


팝업북 [4]

 

보다 즐거운 독서를 위해 책에 입체 효과를 가미한 것이 바로 팝업북이다. 요즈음 출시되는 팝업북은 워낙 정교하게 만들어져 책을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영화를 책으로 [5]


활자를 입체로 구현하는 것이 어렵다면, 방식을 거꾸로 뒤집어 입체적인 사물에 활자를 입히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 아이디어를 빌려 인물과 배경에 적혀있는 글자를 읽으면 스토리가 이해되는 그림책을 발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패드 나라의 앨리스 [6]

 

음악을 즐기는 도구가 축음기에서 워크맨과 CD 플레이어를 거쳐 MP3로 진화한 것처럼 몇 년 후에는 종이 책을 읽으면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손때 묻혀가며 책 읽는 재미는 사라지겠지만 책을 제작하는 데 드는 종이와 잉크를 절약할 수 있고, 배송하는 데 드는 물류비용을 아낄 수 있으니 좋은 변화라 할 수 있겠다. 

 

구워서 보는 책 [7]


은박지에 싸인 작은 책을 오븐에 구우면 레시피와 요리 그림이 나타나는 재미있는 책이다.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너무 센 불로 구우면 몽땅 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책, 다시 태어나다 [8]


너무 오래되어 버려야 할 책들이 있다면 위의 그림에서처럼 오리고 붙여 작품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졸면 안 돼 [9]


누워서 대충 책을 읽다 보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왕이면 바른 자세로 집중해서 책을 보자. 



그땐 미처? 그땐 미쳐!


앞에서 말한 흥미, 재미, 의미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있어서도 적용할 만하다. 

그 사람을 알기 전에 흥미(설렘)가 생기는지, 그 사람을 만나면 재미(기쁨) 있는지, 헤어지고 나서 의미(추억)가 남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준 가치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 뒤늦게 인기를 끌고 있는 ‘하늘을 달리다’와 함께 이적의 2집 앨범에 실린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에서는 철없는 어린 시절 소중한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 것에 대해 깊이 후회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그땐 아주 오랜 옛날이었지
난 작고 어리석은 아이였고
열병처럼 사랑에 취해 버리고
심술궂게 그 마음 내팽개쳤지

내가 버린 건 어떠한 사랑인지
생애 한번 뜨거운 설렘인지
두 번 다시 또 오지 않는 건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이 노래를 듣다 보면 ‘그땐 미처’라는 가사가 ‘그땐 미쳐’로 들리기도 한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미처(아직) 알지 못한 것일까, 그때는 다른 것에 미쳐(정신이 팔려) 알지 못한 것일까? 심술궂게 그 마음 내팽개친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대개 후자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바쁜 일상에 미쳐, 자신의 욕심에 미쳐, 더 매력적인 이성에 미쳐, 나중에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미쳐, 당시에는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고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하곤 한다. 가슴을 치며 후회해봤자 돌이킬 수 없는 시간만 야속할 뿐이다. 


책도 이와 같다. 

당장에는 책 몇 권 더 읽는다고 티가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읽은 책이 쌓여갈수록 낭중지추 囊中之錐처럼 내가 티 내지 않아도 세상이 알아줄 만큼의 내공이 쌓이게 된다. 1주일에 한 권씩만 읽어도 10년이 쌓이면 무려 520권의 책을 보게 된다. 당장에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들에 미쳐 책 읽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는 한 달에 한 번 주말에 시간을 내 이곳에 올릴 글을 쓰곤 한다. 

그리 길지도 않고 난해한 글도 아니지만 막상 글을 쓰다 보면 콘셉트를 잡고,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고, 사진과 동영상을 선택하는 일들이 그리 녹록지 않음을 느낀다. 책 읽기를 조금만 소홀히 해도 매월 하는 글쓰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을 잘 알기에 필자는 억지로라도 책을 가까이하려 애쓰고 있다. 

책 읽기는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만큼 우리에게 많은 가치를 준다.

책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선물인 흥미, 재미, 의미를 맛
으로 나타내면 
달콤한 흥미(興味, 어떤 대상에 마음이 끌린다는 감정을 수반하는 관심), 
고소한 재미(어원: 滋味,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 
담백한 의미(意味, 사물이나 현상의 가치)로 표현할 수 있겠다. 

이제 2010년도 다 지나가고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새해에는 ‘책이 그렇게 중요한 줄은 그땐 미처/미쳐 알지 못했지’라는 말을 하지 않도록 책의 맛을 음미하는 시간을 좀 더 늘려야 하겠다. 
 
한 해 동안 여러 모로 부족한 필자의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모든 분들이 책과 함께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의미 있는 새해가 되시기를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의 뮤직비디오를 보내 드리며 글을 마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iKotyDES1k






[1]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은 예쁘게 생긴 선충이 아니라 흙 속에서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선충류의 공식 학명이다. 3~4일 만에 1mm 크기의 성충으로 완전히 성장하기 때문에 실험재료로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2] http://www.mymodernmet.com/profiles/blogs/whats-king-kong-reading
[3] http://www.mymodernmet.com/profiles/blogs/creative-ads-words-create
[4] http://babyology.com.au/sunday-arts/red-riding-hood-a-pop-up-book.html
[5] http://www.mymodernmet.com/profiles/blogs/creative-ads-movies-for
[6] http://www.mymodernmet.com/profiles/blogs/must-see-alice-for-ipad-video
[7] http://www.notcot.com/archives/2007/11/well-done-annua.php
[8] http://www.toxel.com/inspiration/2009/06/30/beautiful-and-creative-book-sculptures/
[9] http://pixdaus.com/single.php?id=100774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ined21.com/libros-de-text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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