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의 INNOSPARK, 2011년 2월호
설 연휴에 친구와 함께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봤다. '글러브’는 타격음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청각장애가 심한 충주성심학교 학생들이 전국 규모의 야구대회인 봉황기에서 1승을 하는 것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가 별로라고 말하는 네티즌 리뷰에서 언급되듯이 인물과 스토리 구조가 전형적이기는 하지만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장면들이 있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라 생각된다.
필자가 특히 인상 깊게 본 것은 오랜 달리기에 지쳐 주저앉은 아이들 앞에서 코치가 고래고래 소리치는 장면이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목청이 터져라 소리 지르는 코치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울기만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묘하게 대조되면서,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어도 표현할 수 없는 아이들의 마음에 자연스레 감정이입이 되었다. 수화를 못 하는 코치와 야구를 못 하는 아이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눈빛과 몸짓만으로도 서로 통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최근 기업들에서는 ‘조직 내 소통’이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원활한 소통이 조직을 건강하게 만든다. 상호 간에 정보를 공유하고 이기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소통을 해야 하며, 소통을 하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 삼성생명 박근희 사장 [4]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CEO의 C는 ‘Chief(최고)’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CEO의 C는 다르다. 바로 ‘Communication(커뮤니케이션)’이다. 왕처럼 군림하는 CEO보다 소통하는 CEO의 성공 확률이 높다. 조직관리의 핵심에는 소통이라는 키워드가 담겨 있다.” - 나우콤 문용식 대표 [5]
“사람의 몸에는 피가 흐르고, 피가 흐르지 않으면 결국 몸이 병들고 죽고 말듯이 조직은 소통이 안 되는 순간 정체되고 단절된 조직문화를 만들게 된다” - CJ제일제당 김홍창 대표 [6]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리고 포스코에서 가장 필요한 달인은 소통의 달인이 아닌가 싶다” - 포스코 정준양 회장 [7]
위에서 인용한 문장들을 무심코 읽으면 별 느낌이 없지만, 이전에는 없던 환상적인 소통 도구들이 우리 주위에 급격히 많아졌음을 상기하고 다시 읽으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소통 도구가 강력해지고 그 수가 늘수록 소통의 문제가 커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은 예능인으로 더욱 유명한 윤종신이 015B의 객원가수로 데뷔하면서 부른 ‘텅 빈 거리에서’에는 이런 노랫말이 등장한다.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 눈물을 흘리며 말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 이 노래가 발표된 1990년에는 10원짜리 동전 두 개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공중전화가 중요한 소통 수단이었다.
이제 우리는 동전 두 개가 없어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일이 없다. 그 당시에는 없던 스마트폰, 메일, 트위터, 페이스북, 영상회의 시스템, 기업 내부 인트라넷 등의 소통 도구를 활용하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서로 소통하기 어려운 것일까?
이어폰의 사용이 늘면서 소음성 난청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소통이 어려운 까닭은 난청 때문일까? 그것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듣고 싶은 소리에만 집중하고, 듣고 싶지 않은 말에는 아예 신경 쓰지 않는 성향이 강해진 탓일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외면하면 내가 하는 말도 무시당할 수 있음을 유념하는 것이 좋겠다.
아무리 좋은 소통 도구가 있을지라도 열심히 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귀찮더라도 손가락을 펴 한 번이라도 더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터치해야 한다.
지금의 귀찮음이 누적되면 소통의 편찮음을 만들지도 모른다.
기업에서는 구성원들의 소통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과 문서작성 그리고 프레젠테이션 교육 등을 실행하곤 한다. 이는 협업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소통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사내의 온갖 동향과 소문을 수집해 온 사방에 퍼뜨리는 빅마우스 Bigmouth가 문제의 중심에 있다면 교육의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조건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소통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절히 침묵하는 것이 소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요즈음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을 만큼 다들 말을 잘 한다. 또한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도구들이 많아져 그 빈도도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이렇듯 소통의 스킬과 툴이 모두 좋아졌지만 소통에 대한 어려움은 점점 커져만 간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위에서 기술한 바대로 ‘안들려요’, ‘귀찮아요’, ‘말할래요’와 같은 불통의 원인들 때문인데,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면 최근 소통의 껍데기는 화려해졌지만 알맹이가 부실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소통의 알맹이가 부실해졌음은 다음과 같은 모습들에서 찾을 수 있다.
경청 스킬을 배워 적극적으로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수시로 고개를 끄덕이지만 진심으로 공감하지는 않는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이 움직이지 않아 열정을 쏟지는 않는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기보다 서로를 차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어느 정도까지 소통해보고 잘 통하지 않으면 포기한다.
소통은 말로 하면 입과 귀가 통하고, 글로 하면 손과 눈이 통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소통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가슴과 가슴이 통하는 소통이 필요하다.
인순이는 우리나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노래를 잘 하는 가수이다. 이렇게 노래를 잘 하는 분이 2절 마지막 부분에서 음이 심하게 떨리고, 후렴구를 끝까지 부르지 않고 객석에 인사를 하고, 반주가 끝나기 전에 무대 뒤로 퇴장한 적이 있다.
2005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를 처음으로 부른 무대였는데 필자는 열창을 하던 앞부분보다 눈물을 흘리느라 제대로 부르지 못한 뒷부분에서 크게 감동했었다.
영화 ‘글러브’에서 말없는 아이들을 보며 가슴이 움직인 것처럼 그 순간만큼은 인순이와 필자가 소리가 아닌 가슴으로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관객들이 처음에 친 환영의 박수와 비교해 노래가 끝난 후 보낸 환호의 박수가 훨씬 뜨거운 것을 보면 관객들도 필자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이렇게 소리 없는 노래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뒤흔든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심통 부리기보다 진심을 담은 소통으로 심통 心通하려 노력해야 하겠다.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통했던 그 무대를 영상으로 보내드리며 글을 마친다.
[1] http://www.glove2011.co.kr/
[2]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3477
[3] http://cafe.naver.com/glove2011
[4] 삼성생명, '소통'으로 통한다, 한국보험신문, 2011. 1.26
http://www.insnews.co.kr/design_php/news_view.php?num=33022&firstsec=1&secondsec=12
[5] IT업계 이단아의 세마디 "한우물-정직-소통", 아시아경제, 2011. 1. 20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11710361322997
[6] 김홍창 CJ제일제당 대표 "소통으로 승부수 띄우겠다", 이데일리, 2010. 11. 5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DC14&newsid=02036886593162768&DCD=A00204&OutLnkChk=Y
[7] 소통•창조 경영 달인 ‘보고 싶어요’, 한국경제매거진, 2011. 1.12
http://magazine.hankyung.com/business/apps/news?popup=0&nid=01&c1=1001&nkey=2011010400788000231&mode=sub_view
[8] http://walyou.com/creative-samsung-mp3-player-ads/
[9] http://maloneyonmarketing.com/2010/06/11/so-what-if-your-creatives-arent-so-creative/
[10] http://www.lolhome.com/funny-picture-9979523886.html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www.businessnorthumberland.co.uk/index.php/business-programmes/marketing-and-commun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