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처럼 프레젠테이션 잘 하는 비법은 없다
프레젠테이션 Presentation은 시청각 자료를 활용해 정보나 아이디어를 청중에게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줄여서 '발표' 혹은 'PT'라고 부르기도 한다.
1980~1990년대, 주산 학원과 쌍벽을 이루던 웅변 학원에서는 천편일률 千篇一律로 프레젠테이션 스킬을 가르쳤다. 평소에 말하는 방식이 아닌 책 읽는 발음으로, 약간 화난 듯이 큰 목소리로 말해야 하고, 연설 마지막에 반드시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뻗으며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를 해줘야 좋은 발표라고 가르쳤다.
https://www.youtube.com/watch?v=Jn2tCL1Nctk
2012년의 한 웅변대회 모습을 담은 이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까지도 예전 방식의 프레젠테이션은 우리 주위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어린이들이 하면 그나마 귀여운데, 만약 김철수 과장이 경영진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웅변 톤으로 발표하고, 마지막에 "이 직원 힘차게 외칩니다"를 한다면 어떨까? 아마 끝나자마자 팀장님이 조용히 회의실로 끌고 갈 것이다.
비즈니스 상황에서의 프레젠테이션이라고 하면 우리는 웅변보다는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스피치'를 떠올린다. 스티브 잡스는 여기저기에서 워낙 많이 봐서 지겨울 테니, 여기에서는 게리 해멀 Gary Hamel이라는 분의 스피치를 보여드리고자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7hBjdVGDIs8
일단 첫 장면부터 약간 거슬리기 시작한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슬렁거리면서 나타나, 그냥 걷는 것도 모자라 상체를 흔들며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필자 눈에 이 모습이 왜 거슬렸을까?
필자는 본격적으로 기업 강의를 하기에 앞서 선배 강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받은 바 있다.
호주머니에 손 넣거나 책상에 걸터앉지 마라. 건방져 보인다.
중요하지 않은 걸 말할 때에는 걸어도 되지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질 때에는 멈추어라.
청중이 보기에 화면의 왼편에 서있다면, 왼손으로 화면을 가리켜라.
오른손으로 하면 청중을 등지게 된다.
왼손으로 화면을 가리킬 때, 오른손을 신경 쓰지 않으면 청중이 보기에 불편할 수 있다.
안 쓰는 손의 위치가 애매하다면 배꼽에 손을 올려라. 겸손함과 전문성을 돋보이게 하는 자세다.
중앙의 청중에게만 시선을 주지 마라.
시간을 배분해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청중과 시선을 마주쳐라.
게리 해멀은 '산업 강사의 발표/강의 노하우'의 일부인 위의 규칙들을 모두 어기고 있다. 그런데 영상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빨려 들어간다. 그 이유는 콘텐츠, 딜리버리, 메신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콘텐츠 Contents가 좋다.
'경영의 미래', '꿀벌과 게릴라', '시대를 앞서는 미래 경쟁 전략' 등의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답게 잡다한 내용이 없다. 핵심만 콕콕 짚는다. 강력한 통찰력으로 청중에게 인사이트를 준다.
둘째, 딜리버리 Delivery가 좋다.
힙합에서 딜리버리는 '가사가 잘 들리냐'의 의미로 쓰인다. 아무리 랩을 빠르게 해도 청중이 가사를 듣기 어렵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발성, 발음, 톤, 가사 내용 등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가사가 잘 전달된다. 게리 해멀도 딜리버리가 아주 좋은데, 특히 말과 화면 움직임이 동기화되어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게리 해멀이 어떤 구절을 강조하면 그에 맞춰 화면에 글자가 뜨고 그래프가 뜬다. 프롬프터 Prompter가 있고, 게리 해멀의 말에 따라 다음 화면으로 넘겨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14분 54초 동안 단 한 번의 말 더듬도 없이 말과 화면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것은 예술에 가깝다.
셋째, 메신저 Messenger가 좋다.
월스트리트 저널 The Wall Street Journal에서는 게리 해멀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사상가'라 칭한 바 있다. 포춘지 Fortune에서는 '비즈니스 전략 분야의 세계 최고 전문가'로 부르기도 했다. 즉 게리 해멀은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사람이다. 프레젠테이션은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고,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메시지를 던지는 메신저가 누구냐에 따라 메시지의 힘이 달라진다. 이 정도 레벨의 메신저라면 호주머니에 손 좀 넣는다고 메시지가 약해지지 않는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강의하면서 비속어를 쓰든 욕을 하든 명강의인 것과 같은 원리다.
검색을 해보면 '마음을 움직이는 스피치 비법', '프레젠테이션 꿀팁', '말 잘하는 방법 총정리' 등 수많은 비법, 비결, 규칙, 법칙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내용대로 해봐도 내 프레젠테이션은 여전히 구리다는 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나일뿐 스티브 잡스가 될 수는 없다. 절대적인 비법은 없다. 무협지에서처럼 절세 은둔 고수의 비급 祕笈을 우연히 얻어 '인간이 아닌 신의 경지'라는 화경 化境의 고수가 되는 일은 프레젠테이션 세상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프레젠테이션을 잘할 수 있을까?
우리는 웅변과 게리 해멀의 스피치 사이 어느 지점에서 <나만의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웅변하듯이 딱딱하고 어색하게 할 필요도 없고, 한 시간 스피치에 수 억 원씩 받는다는 게리 해멀처럼 할 필요도 없다. 기업 교육을 하는 산업 강사들을 무조건 따라 할 필요도 없다.
이런저런 프레젠테이션 팁들을 참고하되, 그 방법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고, 내가 가진 자산(외모, 발음, 목소리, 지식, 지위, 영향력 등)을 토대로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
<나만의 프레젠테이션 스타일>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다음 글에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 직장인 업무 기본서, 업무전과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marketing.co.id/presentasi-meyakinkan-sekaligus-menghibur-1/